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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함 없는 전진/신중한 전진-장애학의 관점에서 본 특수교육-

타테이와 신야 (立岩真也) 2010/01/19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교 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교수

Special Education and Multi-Knowledge Convergence
대구대학교 http://jpn.daegu.ac.kr/
[Japanese page]


■자기소개
  일본의 교토(京都)에 위치한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온 타데이와신야(立岩真也)라고 합니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우선 제가 장애인과 교육이라는 주제의 전문적인 연구자가 아닌 점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유감스럽게도 특수교육 분야는 문외한이며, 전공은 사회학입니다. 실증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고 규범적인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서로는 재산이나 노동의 소유와 분배를 논한 『사적소유론』、『자유의 평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의 공저로는 『세금을 시정하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생명윤리로 불리는 영역에 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좋은 죽음?』・『오직 삶』과 같은 책을 펴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이 주제에 관해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그곳에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장애(dis-ability), 능력(ability)에 관한 것입니다. 한편 비교적 기술적인 저서(공저)로 1990년에 초판이 출판된 『생의 기법――가정과 시설을 나와 생활하는 장애인의 사회학』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 자립생활운동의 전개와 그 의미를 고찰한 것입니다. 증보개정판의 한국어 번역 출판 준비가 진행 중이라 들었습니다. 또한 2004년의 저작으로는 『ALS――부동(不動)의 신체와 숨쉬는 기계』가 있습니다. 최중도 지체장애인이라 할 수 있는 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환자들이 직접 쓴 문장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 생활을 묘사하고, 거기에 드러난 문제에 대해 썼습니다.

■ 명백하게 필요한 활동
  이런 연구를 하면서, 리츠메이칸 대학교의 대학원 첨단총합학술연구과(先端総合学術研究科)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문부과학성이 선정하여 자금지원을 하는 세계화 COE 프로그램의 하나인 〈「생존학」創成拠点――障老病異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의 창조〉프로그램의 리더로 일하고도 있습니다. 연구과에는 현재 시각장애 대학원생이 6명, 휠체어 이용자가 3명 등 장애인 당사자 또는 관계자가 많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COE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장애나 병을 가진 당사자가 연구를 담당하며, 이를 위한 체계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성과의 하나로 『시각장애학생지원기법』이라는 책을 간행했습니다. 이 책은 한국어판(책자+웹에 게재)과 일부 영어판(웹에 게재)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실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교육․연구라는 주제에 관계하고 있고, 관계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학문의 명칭 하에서든지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연구의 장에만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장애, 청각장애, 신체장애로 인한 발화곤란자의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둔,「다른 신체 하에서의 교신――진정한 실용을 위한 구조와 사상」이라는 명칭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은 「학제적 접근」을 주제로 하는 것입니다만, 이러한 우리들의 연구는 문부과학성에서 「신학술영역연구(연구과제제안형)」라는 범주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연구에는 철학, 사회학, 경제학 등 인문사회 제반 과학의 연구자,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연구에서는 과학기술의 역할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만, 이 연구 자체에는 자연과학의 연구자는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제도적인 구조나 사회의 존재방식에 관해 검토하고, 가능한 방향을 제안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서적 등의 문자정보를 컴퓨터를 사용하여 듣거나 확대문자로 변경할 경우의 정보제공방식을 체계화하거나 저작권법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반복이 됩니다만 필요한 것은 특히 무슨 학(學)이라는 명칭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진행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활동의 명칭으로서의 「생존학」도 사람이 연명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조사하고 생각해 가려는 취지의 것입니다. 그리고「장애학」이라고 불리는 것도 또한 거시적으로는 실천적인 것이며 사회 개혁·변혁을 지향하는 학문입니다. 장애인이 교육을 받거나 연구를 하거나 하는 것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곤란을 지적해, 그 개혁을 제언해 온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장애 학회는 2003년에 발족해, 저도 그 회원·이사로서 다소간 참여해 왔습니다. 작년 2009년의 학술대회는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개최되었는데, 우리 연구과의 대학원생이 「장애 학생 지원을 말한다」라는 심포지엄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담당하였습니다. 이미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청각 장애 학생의 지원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실천도 어느 정도는 이루어지고 있기도 해서, 이 심포지엄에서는 내부장애, 정신장애, 발달장애 대학생을 초청해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 그러나 갈등이 존재
  이렇듯 장애인의 교육·연구에의 참가를 보다 활발하게 하고 용이하게 한다고 하는 목적은 확실할 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도 명백한 것이며, 이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하고,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한다고 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고, 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논쟁이 있어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통합 교육·특수 교육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이 주제를 둘러싸고 최근 40년 정도,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을 말씀드리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도 한정되어 있고, 또 저의 지식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극히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만, 일본의 역사를 간단하게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일본에서는 제2차 대전 후 비교적 빨리 맹학교·농아학교는 의무 교육 대상으로 자리 매김되어 왔습니다만, 지체장애나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양호학교는 의미교육 대상으로 자리 매김되지 못한 시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일반학교·일반학급에 다니는 장애아도 있고,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다니는 장애아도 있었습니다만, 특히 중증 장애아는, 「취학 유예」「취학 면제」로 인해, 애당초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1930년대부터 1940년대 태생의 장애인운동의 지도자 중에도, 학교에 전혀 가지 않고(가지 못하고) 독학으로 문자를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다. ★01. 그런 중에 1971년부터 73년에 걸쳐 양호학교의 정비 방향이 제시되어, 양호학교를 의무 교육 안에 포함시키는 시행 기일이 1979년 4월 1일로 결정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 1979년의 「양호학교 의무화」를 둘러싸고, 관계자·당사자는, 거기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측과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측으로 2분되게 됩니다. 즉 그것을 장애아교육의 발전이라고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그것을 장애아・인의 격리라며 비판해, 어디까지나 일반학교·일반학급에서의 교육을 요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립은 양호학교 의무화를 추진하는 정부와 반대하는 측과의 대립이기도 했습니다만, 동시에 당사자·관계자 내부에서의 갈등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 작은 「정치」의 얽힘
  여기에는 일본 고유의 「정치적」사정도 다소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학회 등에서는 아마 별로 이야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굳이 조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계의 여러 지역·나라에서도 일어난 것입니다만, 일본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얼마동안 베트남 반전 운동, 대학의 관리·연구·교육 체제 등을 둘러싸고, 전국의 대학 등을 그 場으로 하는 「대학 투쟁」또는「대학분쟁」이라 불리는 상당히 격렬한 사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이런 운동을 주도한 것은 「신좌익」등이라고도 불리는 제반 당파, 또는 「全共闘」라는 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은 다양하고, 통일성도 없고, 내부 대립도 심해, 그것이 그 후 운동을 퇴조시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일본 공산당을 적대시하는 것에서는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과 일본공산당 및 이들에 관련되는 학생조직 측이 대립하게 됩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과 미국의 관계나 제국주의의 이해를 둘러싼 대립이라는 측면도 있었습니다만, 학문이나 교육, 의료나 복지라는 영역에 있어서는 전자(「 신」좌익) 가 종래의 학문 등에 대해 보다 회의적·비판적이었고, 「개량」에 미온적이라고 하여, 때로는「해체」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스스로가 전문가이면서도) 전문가 지배를 반성하거나 공격하곤 했습니다. 심리학, 정신의학 등의 학회에 한 때 존재한「학회 개혁」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 이들 「좌익」은 사회 전체로 볼 때 모두 소수파였습니다. 단 복지나 교육의 영역에서는 혁신정당과 그 일부인 일본 공산당 측의 세력이 일정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장애인 복지·교육 영역에서는 대학의 연구자, 교육자, 그리고 복지나 의료 관계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 가족 등이 관계하는 전국적인 조직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측은 1979년의 양호학교 의무화 때, 정권 측의 보수 정당과 기본적으로 같은, 찬성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당시의 장애아 교육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할 때 그 개선을 얼마간이라도 전망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겠지요.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분에도 포함되어 있는 인간·사회의 진보에 대한 신뢰와도 관계되는「전면 발달(全面発達)」이라는 인식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당사자에게 맞는 환경을 준비하고 전문가의 과학적이고 적절한 조력에 의해서 잠재적인 능력을 가능한 한 개화시켜 향상시키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다른 분야에서도 이 당이나 그 관련 조직과 대립하고 있던 사람들, 또 정치적인 싸움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이나 처음부터 정치적 싸움을 싫어한 사람들, 또는 정치적인 싸움에는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은 양호학교 의무화가 장애인을 정상인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차별하는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자 하는 운동은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967년에 당시 26세의 뇌성마비인이 지역의 초등학교로의 취학을 요구하는 운동을 해 1970년에 실현시켰습니다. 각지에서 일반학교·일반학급으로의 취학을 목표로 하는 작은 모임이 나타나는 것은 1971년 경부터입니다. 거기에는 전술한 학회 개혁에 관계하고 있던 대학교원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1976년에 결성된 장애인 전국조직인 「전국 장애인 해방운동 연락 회의(전장련)」라는 조직이 의무화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의무화 후의 1981년에는 「장애아를 일반학교에·전국 연락회」가 결성되어 각지의 취학 운동을 잇는 역할을 담당하게도 되었으며, 이 조직은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그 1979년이라는 해였습니다. 대학의 학생 자치회의 대회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아직 상당수의 대학 자치회에서는 크게는 상술한 2개의 세력 간에 주도권 싸움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가 대회의 의안의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덧붙여서 저는 그 때 「격리 반대」의 입장에 서기로 하였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의 발표에 다소 편견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 어떤 것을 주장하였는가
  그런데, 왜, 특별히 한 나라의, 그 나라의 당사자의 상당수는 몰랐고, 현재는 한층 더 적은 사람 밖에 기억하지 않고 또 모르는 이야기를 여기서 했는가입니다. 대립, 특히 정치적인 대립은 경우에 따라 대립을 위한 대립이라는 상황도 발생하곤 하여 자주 소모적이 됩니다. 한편 그러한 대립은 때로는 주장을 심화시켜, 문제의 전체를 읽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양쪽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이 답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즉 격리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올바른 것이며 바람직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개개인의 능력·학력을 향상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므로 양쪽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양자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답이 아닐까라고. 저 자신도 거의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론(異論)은 없습니다.
  다만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각각을, 왜, 어느 정도 중요시하는 것인가? 그러한 물음은 남습니다. 그렇다면 실은 상대가 말하는 것도 이해하면서 「굳이」다른 한쪽의 극단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들, 그 입장을 관철한 사람들이 말했던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는 상당히 많은 서적이 간행되고 있습니다(일본어여서 죄송합니다만, 우리 사이트에 그 일부의 리스트나 연표 등이 있습니다). 또한 양호학교 의무화(반대 운동)를 중요한 계기로 1978년에 발간되어, 이 주제를 1년에 1회는 계속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계간 복지 노동」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기관지 등도 많이 있습니다. 거기서 무엇이 말해지고 있을까요?
  「어떤 아동이라도 지역의 학교에서」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습니다. 「함께 배운다」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共生・共育」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일본어에서는「教育」의「教」라는 글자와「共生・共育」의「共」이라는 글자는 발음이 같습니다. 학교를 생활의 場이라고 파악해,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것보다, 거기서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만나, 살아가는 쪽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반발달론(反発達論)』(1977년), 『지능 신화』(1980년), 『「조기 발견·치료」는 왜 문제인가』(1987년), 『치료라고 하는 환상』(1988년)과 같은 제목의 책이 심리학의 연구자나 학회가 편찬한 책으로, 또는 의사가 쓴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들의 상당 부분에서는, 논적(論敵)으로 지금 기술해 온 「찬성파」의 학자들--그들은 또한 특수 교육이나 장애인 복지 학회의 중심적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의 설에 대해 상당히 심도 깊은 검토·비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86년과 1989년에는 「0점이라도 고등학교에」라는 부제의 책이 1권씩 나왔습니다. 이것들은 장애아의 부모가 쓴 책입니다. 지체장애인들이 일반학교에 가는 것이 점점 받아들여지고, 양호학교의 초등부·중등부에, 그리고 일반 초등학교·중학교에 가는 사람도 증가해 왔습니다. 그러한 때에 고등학교에 가고자, 그리고 입학시험은 0점이라도 고등학교에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여기에서는 알맞은 지원이 있으면 이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혹은 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의 설정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잘 할 수 있게 되지 않아도, 고등학교에라는 주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장애학과의 관계
  장애학회라는 학회에 관계하는 사람 중에서 실제로 그 운동에 얼마만큼 관여하는가는 다양하고 인식의 차도 다양할 것입니다. 또한 학회원 중에는 지금 기술한 것을 거의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만, 그래도 「共生・共学」의 인식에 찬동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대표적인 저작으로서는 이 학회의 이사로도 일하고 계신 堀正嗣의 대저(大著) 『장애아교육의 패러다임전환――통합교육에 대한 이론연구』(1994年)가 있습니다.
  우선 장애학은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특히 영국에 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만――장애인의 사회운동과 강하게 관련되어 발전해온 학문이고, 기본적으로는 반차별, 반격리 운동과 연관이 있습니다. 격리에 대해 통합을 대치(対置)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장을 구분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반대하는 것이 됩니다. 단지 언어적・문화적 소수자로서 파악할 수 있는 장애인, 특히 농인, 그 학교・커뮤니티로서의 농학교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 주장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장애학은 전문가 지배를 비판해, 본인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족, 특히 부모, 그리고 의료나 복지, 교육의 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활동을 진행시키는 것은, 앞서 기술한「의무화 찬성파」의 단체에 한정됨 없이, 종래의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는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이에 대해 1970년대 이후 본인을 중심에 둔 운동·조직이 출현하게 됩니다. 앞서 예를 든 전장련(全障連) 그리고 뇌성마비인들의 조직인 푸른 잔디 회(會)라는 조직이 그러한 조직이었습니다. 실제로는「의무화 반대파」에게도 교육자나 의사 등 비장애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도 우선 본인들의 주장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이 장애인운동・장애학의 중심에는 문제를 자신의 문제, 자신의 신체(물론 지적능력을 포함합니다)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의 문제로 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또한 할 수 있는 것이 실제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이 사회에 있어서 「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장애」를 갖는 사람이 곤란을 안게 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 기본적인 주장은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스스로 하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거리를 개축(改築)한다고 해도, 기계를 사용한다고 해도, 혹은 타인의 손을 빌린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공육·공생(共育・共生)」의 주장에 한층 가까워집니다.

■ 무엇을 묻게 되는가+사견(私見)
  그러나 교육이라고 하는 장소는 보통 기본적으로 그러한 장은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중학교 교사로 오래 일하였고 「장애아를 일반학교에·전국 연락회」간사도 맡았으며, 많은 저서의 편자이기도 한 北村小夜는 시각 장애인의 점자에 의한 시험이 정당한 것이라면 지적 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려 시험을 보는 것은 왜 안 되는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이 에피소드는 졸저『사적소유론』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물론 시험이라는 것이 그 당사자의 지적능력을 측정하는 것인 이상 다른 사람의 지적능력을 빌려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다만 그렇다면 왜 그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이 측정되어지고, 그 결과가 무언가의 가부로 연결되는가,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이 이어집니다. 일본에서의 사고·주장은 모두 체제에 비판적이면서 ( 「올바른」의미에서) 발달과 교육을 주장하는 측과 그 진지함과 선의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회의적으로 보는 측 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에 의해, 능력에 대해, 비능력으로서의 장애에 대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대해, 지금부터 우리들이 생각해 가기 위한 단서--답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는 그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이야기가 길어지게 됩니다. 다만 그 근거를 생략하고 몇 가지에 대해 간략하게 열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분명히 이 사회는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본인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사실상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본인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것에 원리적인 정당성은 없다.
  2)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사회에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1)의 사회의 현상을 벗어나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본인에게는 우리가 금방 떠올리는 것만큼 당연하게 또한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히 할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좋은 것이라 해도 그 때문에 본인이 치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양쪽의 균형을 생각하면 어떤지,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02.
  3)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여 생활하고 있는 것을 단순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경험하고 있는 것은 때로는 다른 것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누구와 교육을 받는가(누구와는 받지 않는가)를 선택하는 선택의 권리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 점으로 「공육·공생(共育・共生)」파가 주장했던 것에는 설득력이 있다.
  4) 교육은 부정되지 않고, 본인에 맞춘 교육도 부정되지 않는다. 필요하며 유효할 때가 있고,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그것은 전술한 1)〜3)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육이라는 장치는 1)과 2)를 보이지 않게 하는 장치로써 기능해 온 경향이 있다. 또한 본인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번거롭게 여기는 사람들이 그들을 멀리해 다른 장소로 물리치는 일이 행해져 왔다--이것은 3)에 위반된다. 적어도 이러한 점에 대해 더욱 자각할 필요가 있다.

■주(注) ★01 이는 나라에 따라 사정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에드 로버츠와 같은 사람은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교의 학생이었던 까닭에 거기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소아마비 등 비교적 경도인 사람--에드 로버츠도 소아마비였지만 그의 장애는 꽤 무거웠음--이 대학까지 진학하여 당시의 학생 운동의 주장이나 방법을 도입하였던 경과도 존재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대졸의 운동가가 일정 비율을 점유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경도 장애인은 다수파의 사회에 동조하려는 경향이 크기에(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가능하기에), 운동의 전면에 서는 것은 오히려 드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중도 장애인이 아직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또한 학생운동이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서 그 능력과 지혜를 얻은 사람이 우선 활동의 전선(前線)에서 투쟁했다는 것이 한국에서 발생한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02 이에 대해서는 타테이와(立岩)「ないにこしたことはない、か・1(없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는가?)」(石川准・倉本智明編『障害学の主張(장애학의 주장)』、明石書店、2002에 수록)등.



UP:20100128 REV:20100205
立岩 真也(日本語)  ◇立岩 真也(한국어)  ◇Shin'ya Tate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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