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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히로시(長岡 紘司)

ながおか・ひろし
[Japanese Page]




일본ALS협회 가나가와현지부・부지부장

・1978? 발병
・1984? 호흡기 장착

◆長岡 紘司(나가오까 히로시) 「죽음의 안락에 대해서」
◆長岡 紘司(나가오까 히로시) 19870415 「針の息穴(바늘구멍 만한 구멍으로의 호흡)」
 일본ALS협회편[1987:056-080]*
*일본ALS협회편 19870415 『いのち燃やさん』,静山社,278p. 1200 ※

 ・기관절개하는 날
 1984년?「2월15일, 식사 후 또 쉼쉬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긴의자에 누워있었는데 다른날과 다르게 쉽게 숨이 쉬어 지지 않았다. 심호흡을 할 수가 없다.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져, 몸이 비비꼬였고(p.57)다리가 버둥거려지고 오그라 들었다. 숨을 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야가 좁아졌다. 전등이 켜져 있는 데도 굉장히 어두웠다. 귀도 이상했다. 동굴에서 소리를 듣는 듯 했다.사고력도 떨어졌다. 들리는 목소리가 누구의 말소리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바늘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 처럼 숨이 막히는 것이 계속되었다.
들것에 실려 시부야의 T의대 병원으로」(pp.57-58)
 挿管(삽관-관을 끼우다)
 「갑자기 숨쉬기가 편안해 졌다. 조금전 까지의 바늘 구멍으로 숨 쉬는 것 같은 힘겨움은 없어지고, 가슴이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장시간 숨쉬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체력이 소모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옆에서 의사들이 목을 절개(기관절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목을 절개!? 나의 목을 절개하는 건가。
 ”그러지 마, 멈춰!이젠 편안하게 숨을 쉴수가 있어! 절개하지 마!”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나의 목은 절개되어 버렸다.」(p.58)
 기관절개、인공호흡기장착。

 「밤중에 숨쉬기가 곤란해 졌다. 눈이 떠졌다.[…](p.76)
 종을 울려 아내를 깨울려고 했다. 그러나 언제나 바로 일어나준 아내가 몇번이나 종을 울려도 일어나지 않아.[…]
 심장은 고동치고, 신체가 공포로 몸이 차가워 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내는 아직도 기척도 없다. 왼쪽 다리로 종을 처서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의사를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을 빼앗겨 버렸다고 생각하자 마자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심장이 터질것 처럼 고동치고, 몸의 떨림이 점점 심해졌다. 폭풍같은 고독감이 엄습해 왔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방안에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왔다.
 쿵쿵하고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일어났다. 종을 발로 차서 도움을 청했다.」(pp.76-77)

◆1988年? 외출
 長岡 明美(나가오까 아케미씨 가나가와현・에비나시ALS 환자가족) 20010601
 「기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난치병과 재택케어』07-03(2001-06):29-30
 남편=長岡紘司(나가오까 히로시)씨

 「남편은 ALS을 발병한지 24년이 되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지는 18년이 되었으며, 10개월 입원생활을 했으며, 재택요양을 시작한지 17년째입니다.」(p.29)
 「재택요양 4년째 되던날 처음으로 가까운 초등학교에 꽃구경을 갔습니다.
 ……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환자가 외출한것이 처음이여서,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그 후에 텔레비젼에도 방영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의사들이 호흡기를 착용하고도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병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ALS의 입원 환자들에게 병원 뜰에서 산책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p.29)



◆「「벌써」라는 것」
 『JALSA』021号(1991/04/28):10-11

 「살아있는 주검. 누구라도 이런 모습으로는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이며,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어떤 모습을 갖고라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것도 당연하지 않을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태어 날때 그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난 것 처럼 죽어가는 것도 그 사람의 의사와 상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갈 권리가 있다면, 죽을 권리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야 말로, 세상의 모든 만물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우주의 섭리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요。」(p.10)
 「「앞으로 2-3년의 목숨입니다. 연극을 해서라도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도록....」ALS라고 선고를 받았을때 아내의 머리속은 하얗게 되었고, 집에 가는 길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절망속에서 겨우 집에 왔다고 합니다.」(p.10)
 「의료 관계자들이 아직도 ALS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ALS환자가 있는 가정은 붕괴합니다」「환자가 인공호흡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착용시키지는 않을 것 입니다」「이 병은 3-5년이 여명입니다」「인공호흡기의 움직임에 숨쉬는 것을 마추세요」「예를 들어 내장(위나 장)에 이상이 있더라도 저희 병원에서는 믹서로 간 죽은 제공하지 않습니다」「와상 환자는 담이 목에 걸려서 질식사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옆으로 눕는 자세를 취해 주세요」[기시로가인 제리를 많이 주입할때는 핀센트를 사용합니다」「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기 때문에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케어를 해도 된다」「영양분을 공급하는 튜브가 잘 몸속으로 들어 가지 안는 것은 환자가 서툴러서 꿀꺽하고 목으로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지 우리가 잘못해서인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했고 이러한 고비들을 이미 잘 넘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아직도 그렇치 못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하든 어떤 저명한 병원장 조차 목소리를 잃어버린 ALS환자와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의사소통조차 할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p.11)

 

◆「특별기고」
 『JALSA』044号(1998/07/28):39

 「선고 받고 20년、인공호흡기를 착용한지 14년째가 되는 나는 보통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보통사람 처럼 눈을 뜨고 보통 음식을 먹고, 외출하고, 일상적으로 말을 하고, 평범하게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마쯔야마라고 하는 곳에 사는 어느 환자분이 말씀하셨습니다.「당신은 특별합니다. 같은 환자들 중에는 초라한 모습으로 바닥을 치면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사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특별해서는 안됩니다.」
◆長岡 明美(나가오까 아케미) 가나가와현(神奈川県)・에비나(海老名)시 ALS환자가족) 20010601 「기계에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것」,『난치병과 재택 케어』07-03(2001-06):29-30
 「지금도 인공적 연명을 반대하는 환자가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모유가 나오지 않은 엄마가 아이에게 우유를 주는 것도 인공적연명이지는 않을까요. 병에 걸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것도 인공적 연명이지 않을 까요.
 인공호흡기가 없었던 시대의 환자들은 살아가고 싶어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합시다. 이렇게 멋진 기계를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다.인공호흡기를 착용하기 전에는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호흡기를 착용한 어떤 환자는 [이렇게 편안한 줄 알았다면 좀더 빨리 착용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정상적으로 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뇌나 내장, 피부나 감정 그리고 자율신경에 실례되는 것이다. 즉 세포를 죽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치아가 빠지면 의치를 넣은것 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p.30)

 

다테이와 문장에 언급

 [4]1978년 [앞으로 2-3년 여명입니다.」(아내에게。나가오까(長岡)[1991:10])  [32]1978년 아내가[앞으로 2-3년 여명입니다.」[4]라는 말을 듣는 長岡紘司(神奈川県)。「남편은 ALS가 발병된지 24년이 되었습니다. 인공호흡기을 착용한지는 18년이 되었으며, 10개월 입원생활을 했던 시간을 빼면, 재택요양은 17년째를 맞이했습니다.」(長岡[2001:29])。
 [123]長岡紘司[32]는 1978년경에 아내는 내가 ALS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앞으로 2-3년 여명입니다.연극을 해서라도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도록...] ALS라고 이야기를은 아내의 머리속은 하해 졌으며, 집으로 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절망속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長岡[1991:10])  [167]長岡紘司는、아내가1978년에 선고 받았다.[32][123]。83년「2월15일, 식사후, 또다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긴의자에서 누워있었는데, 다른 날과는 다르게바로 좋아지지가 않았다. 심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숨쉬기가 곤란해 졌고 몸이 비툴어지고, 다리가 버둥거렸고 오그라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숨을 쉬고, 목소리를 낼려고 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야가 좁아졌다. 전등이 켜져 있는데도 굉장히 어두웠다. 귀도 이상하다. 꼭 동굴에서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사고력도 떨어졌다. 들리는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가 판단할 수 가 없었다. 바늘 구멍만한 곳으로 숨 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들것에 실려 시부야에 있는 T의대 병원로..」(長岡[1987:57-58])
 [230]남편・히로시(紘司)[167]가 호흡기를 착용한지 17년째의 나가오까 아케미(長岡明美)의 문장。「지금도 인공적연명을 싫어하는 환자가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모유가 나오지 않은 엄마가 아이에게 분유를 주는 것도 인공적연명이 아닐련지요. 병이 생겨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것도, 인공적연명이지는 않을까요/[…]/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살아가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치아가 빠져서 의치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長岡[2001:30])
 [264]長岡紘司[167]。「한 밤중에 숨쉬기가 힘들어 눈을 떴다。[…]/종을 차서 아내를 깨우려고 했다. 그러나 언제나 빨리 일어나 주었던 아내가, 몇번이고 종을 울려고 일어나지 않았다. […]/심장은 고동치고, 몸이 공포로 차가워 졌다.[…]/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이 떨렸다。[…]/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아내는 아직도 깨지 않았다. 왼발로 종을 차서 깨우려고 했지만 힘이 빠졌는지, 다리가 움지이지 않았다.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을 빼앗겨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와 심장이 찢어질것 처럼 고통스러웠고, 몸의 떨림이 점점 심해졌다. 엄청남 고독감이 엄습해 왔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방안에 빛이 들어왔다./쿵쿵하고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이 일어났다. 종을 울려 도움을 청했다.」(長岡[1987:76-77])
 [287]長岡紘司(神奈川県)[264]는 88년경에 외출했습니다. 「남편은 ALS가 발병된지 24년이 되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지는 18년이 되며, 10개월 입원생활을 하였고, 재택요양은 17년째를 맞이했습니다./재택요양 4년째 되던 해에 처음으로 가까운 초등학교에 꽃구경을 갔습니다.[…]인공호흡기환자가 외출한 것은 처음이였므로 신문에 보도되었고, 그 후에 텔레비젼에도 방영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의사들은 호흡기를 착용하고도 외출할 수 있는 거 같으니까, 병실에서 한발자욱도 나가지 않았던 입원환자들에게 병원 뜰에서 산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長岡[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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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鄭 喜慶
・갱신:20100128,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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