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경씨는 한국・일본의 양국에서 학생으로서의 경험과 양국의 장애인복지/장애인운동의 현장에 깊이 관련하여 활동 해 왔다. 또한 일본에서는 활동보조인의 경험을 통해서 자립생활센터의 사업의 조직과 운영을 배워 왔다. 그로 인해 양국의 사람들을 잘 알고, 양국 사이에서 통역을 하는 등 이미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또한 上野千鶴子・中西正司 『당사자주권(当事者主権)』(이와나미신서、2003년)를 번역하였으며, 출판이 진행중에 있다.
일본의 장애인단체는 비교적 일찍 한국의 단체와 사람들과의 교류를 하였으며, 그로 인해서 한국의 장애인운동은 활동이나 조직운영등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왔다. 또한 일본에서는 아직 제정되지 않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한국에서는 2007년에 제정되었다. 일본은 한국에서 배워야 할것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운동과 정책의 역사와 현재를 정리하여 일본에 소개함과 동시에 한국에는 일본의 정보를 소개하는 정희경씨의 연구는 굉장히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정희경씨는 입학 1년째(본 연구과는 박사과정5년의 일괄제)에 장애학대회에서
학회보고「한국의 장애인운동사(1950年~2007年)」를 실시하였으며(http://www.arsvi.com/2000/0709jh.htm), 또한 「한국
과 일본의 장애인당사자운동의 연표」를 작성、홈페이지에 개재하고 있다.(http://www.arsvi.com/d/d00h-kor.htm).
우리들의「생존학창성거점」은, 2007년도 부터 문부과학성이 선정하는 글로벌COE(탁월한 연
구거점)의 한곳으로 선정되었다. 당사자의 활동/운동에 초점을 두어 정보를 세계로부터 모집하고 또한 발신하는 국제적인 거점을 형성하려고 하고 있다. 정희경씨의 연구는 이 기획의 중요한 부분을 실행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다(이하생략)
■한국과 일본의 통역을 하면서(2007년6월 일본의 마네기통신에 실린글)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10년을 넘고 있다. 공동련(차별과 차우는 장애인 공동연합체)과 한국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의 교류가 95년부터, 일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한국의 정립회관의 교류는 98년부터, 그리고 양국의 DPI교류는 2002년부터 였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단체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교류를 깊히 해왔다.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멋진 말로, 장애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모여, 자기나라의 정책과 제도를 이야기 했으며, 운동의 방식과 공공기관과의 대응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왔다. 한국의 진로 소주와 김치, 일본의 기린 맥주와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체험을 하면서 깊은 우정도 키워 왔다.
이러한 교류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였을까? 몇년 전부터 한국 사회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외출하는 중증장애인의 수가 늘었고, 전동휠체어와 노란색 장애인 콜 택시가 서울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 에레베이터가 역에 설치되었으며, 장애인 옆에는 가족 이외의 사람이 활동보조를 하고 있다. 또한 목숨을 걸고 운동을 하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국가와 지방정부 기관앞에서 천막농성을 매일처럼 하고 있다.
이 모습은 일본의 30년전 푸른잔디회가 보여준 운동처럼 당연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권리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한국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되었고,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어, 4월 부터는 전국적으로 활동보조서비스가 실시되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한국은 많이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올해 6월2일-3일까지 한국에서 장향숙국회의원이 일본에서 장애인의 정치화에 대한 강연을 했다. 많은 일본사람들로 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언제나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장향숙국회의원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울려고 하는 일본사람들을 열의를 보면서 [교류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함께 배워가는것 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더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단체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정보를 교환해 가면서 성장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소에서 유학생인 내가 나의 후배들이 통역상으로서교류의코디네이터라는 역할을 통해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그 만큼 기쁜것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