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경제(학)에 대해 조사하거나 쓰거나, 그것을 간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나라면 이 책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라고 쓰고 말았지만, 이전에는 왜 그러한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왔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소박하게 장애인과 경제(소득・경제…)에 대한 조사・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장애학」책이나 잡지 – 장애학회라는 잡지가 있고『장애학 연구』라는 잡지가 있다(명석明石)서점 간행)――에 그러한 논문이 좀처럼 (이랄까 거의) 실리지 않는 이유 – 의 하나는 왠지 (를 설명할 수 있지만 생략한다) 「궁합」이 맞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이지만――의 하나는 단순하다.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간 노력이 필요하며, 몇 명 정도 사람이 필요하며 돈도 필요하다. 하지만 장애학이라는 학부나 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연구자는 자영업하는 듯한 사람이 많으며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서 조사할 수 있는 범위에서, 청취조사를 하거나, 자료를 찾아 조사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그러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한 경우 조직이나 어느 정도 목돈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물론 조사・실증연구는 경제학의 일부이며, 다른 점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문부과학성 과학연구비의 학술창생부문에 채택되어 발족한 연구 프로젝트「종합사회과학으로서의 사회・경제에서의 장애 연구」(약칭:READ)의 성과라 할 수 있다.
2007년부터 2012년 5년간의 프로젝트였다. 사실은 이 「학술창생부문」은 – 평론자가 같은 시기에 관여했었던 COE와 마찬가지로(「사업분류」에서 분류되어 제도자체가 없어졌다)– 이미 없어졌다. 다른 연구비와 다르게, 저명한 연구자의 추천으로 채택되었다(이 제도의 폐지에 대해서 이 추천이라는 구조의 타당성이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READ의 추천자는 아오키 마사히코(青木昌彦)로, 말할 필요도 없이 저명한 연구자이다. 이미 종료되었으므로 쓴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외부」사람의 평가가 필요하게 되어 나에게 그 역할이 돌아왔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연구의 조직화에는 의의가 있으며(매우 소박한 의미에서의) 경제도(또는 그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기대한다고 썼다. 대표는 『습관과 규범의 경제학 – 게임 이론의 메시지』(2002, 동양경제신문사)등으로 알려진 마츠이 아키히코. 누구라도 아는 바와 같이 게임 이름 전문가로서 그 일인자이다. 그 프로젝트는 마츠이가 소속한 도쿄대학대학원 경제학연구과에 주어졌고 상기한 장애학회의 발족에도 관련되어 초대 사무국장이기도 한 나가세 오사무(長瀬修)가 특임 준교수라는 형태로 들어갔다. 또한 본서의 편저의 한 사람인 가와시마 사토시(川島聡)나 저자인 우스이 쿠미코(臼井久実子)세야마 노리코(瀬山紀子)등이 연구원이라는 형태로 합류하였으며, 그리고 경제학 연구과의 대학원생 등도 관계하였다고 생각한다. (관련하여 마츠이와 나가세는 도쿄대학 장애인 고용・지원 일로 서로 알게 되었다. 나가세는 본서 종장 「맹농자와 장애학」을 담당하고 있는후쿠시마 사토시(福島智)의 연구공간에서 역시 특임교수로 있으며, 마츠이는 부학장으로 장애인 고용・지원을 담당하였으므로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나가세는 올해년도까지 평론자가 관계하는 「생존학연구센터」-COE와 동시에 창립 또는 COE의 후속연구기관이기도 한 학내 연구조직 – 의 (거의 경제적으로는 어떠한 답례도 없다)특별초빙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READ 5년이 끝났다(그 기간 중 나도, 동료인 고토 레이코(後藤玲子)도 연구회에 참석하여 이야기한 적도 있으며, 대강의 상태를 들은 적도 있다). 본서는 「그 성과」(p.v)이다.
전술한 바대로 나는 기대하고 있다고 서류에 썼지만, 몇 가지 꽤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도 있었다. 그 소이는 역시 설명하지 않지만 만약 이것이 성과라면 몇 가지 그것은 맞아 떨어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지금 쓴, 이제 베테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편자들(카와시마는 그런 나이는 아니지만)이나 후쿠시마가 쓴 장(후쿠시마는 강연의 기록이지만) – 각각 유익하다 – 이 아닌 (아마) 「젊은 사람」의, 이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것임에 틀림없는 장에 대해서.
단순하게 말하자면 단순한 구조・절이지만, 그러나 먼저 제2장 「장애여성의 빈곤에서 보이는 것」
(우스이 쿠미코(臼井久実子)・세야마 노리코(瀬山紀子))은 정리해서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다. 조사자체는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기반을 둔 팀」(p.58)에 의한 조사 등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그리고 결국에는 장애가 있으며 동시에 여성인 사람들은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만이라 말한다면 그것만이며, 특히 의표를 찌르는 것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작업은 그 자체로도 제대로 해 두지 않으면 안되며, 제대로 되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제1장 「얼굴의 이형(異形)은「장애」― 장애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하여」(니시쿠라 미키(西倉実季))의 주장은 명쾌하다. 장애차별금지법의 장애에 「이형(異形)」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예상되는 세 가지 반론에 재반론을 하고 있다. 그것은 거의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그 첫번째는 「파이의 서로 뺏기」가 될 것이라는 걱정에 대해 차별금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급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괜찮을 것이라는 것이다. 단지 논리적으로는 「서로 뺏기」의 가능성은 끝까지 부정할 수 없다는 반론은 또한 가능하며, 그렇다면 서로 뺏기가 있어도 괜찮다라고 태도를 바꾸거나, 그리고/또는 현실에 발생할 수 있는 서로 뺏기는 무시할 수 있는 정도로 경미하다고 말할 것인가 이다. 그 이전에 이형으로 인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증명이 요구되고 있다고 한다면) 증명할 수 있는 가 – 장애에 의한 차별의 증명이 곤란하며 따라서 ADA(장애가 있는 미국인법)가 잘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보고는 우리 COE PD를 한 경제학 전공 연구자 (오카모토 노리히코(坂本徳仁))에 의해 수행되었다. – 그리고 어디까지를 (그리고 어떤 경우에) 차별금지의 대상인 이형으로 할 것인가. 필자는 당연히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그 프로젝트에서 어디까지 논의되고 그 결과가 여기에 활용되어 있는 가이다.
다른 점에서, 예를 들어 심사조건부 잡지라면 어떠했을까라고 생각되는 점이 많다.
제3장「형제 – 문화와 장애」(가와무라 마치코(河村真千子))는, 역시 (부모자식 관계와는 다르게)이러한 관계이군 (라고 할만한 점도 있지만), 이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사람 ◇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이나 정책 생산을 해 나간다. 그리고 상호 지원할 수 있는 마음의 관계가 만들어짐으로써 형제 관계에도 진정한 조화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pp.125-126)라 끝낸다면 대개 지도교원은 「이것으로 괜찮을까? 」라고 무심코 말해 버릴 것이라 생각한다.
각각 장에서 중요한 질문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그러나 도중에 끝난다. 또는 시작할 즈음에 끝난다. 제7장 「장애인은 「완전한 시민」이 될 수 있을까?」(호시카 료지(星加良司)).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호혜적」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인간을
「완전한 시민」이라 일컫지만 (별 수 없이) 그 조건을 면제받는 것으로 「이류시민」이 될 수 밖에없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장애란 무엇인가 – 디스어빌리티의 사회이론을 향하여』(생활서원(生活書院), 2007)의 저자인 저자라면, 이러한 질문은 처음부터 있었음에 틀림없으며, 그것에 답하려 해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장은 「끈질기게 지적 탐구가 요구되고 있다. 우리들이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러한 곤란하고 야심적인 질문인 것이다」(p.254)라 끝낸다.
제6장 「지적 장애의 역사 – 영국과 일본의 사례」(오오타니 마코토(大谷誠)・야마시타 마이(山下麻衣)). 물론 주제는 중요한 주제이다. 그러나 서장・종장을 포함하면 13장이나 되는 책으로 이 주제에 대해 본래 뭘 쓸 수 있을 까 라고 생각하고 말게 되기 마련이다. 그 예상은 그렇게 어긋나지 않는다. 「보조학급은 저능아학급이 아니다. […]특수적이지만 특수하지 않다. […]가능한한 보통학급과 연락을 유지하면서 일반 아동과 함께 지도해 나아가고자 바라고 있는 것이다. 」(p.220에 인용)등의 언설이 1930년에 이미 (일본에)있었다고 – 즉 줄곧 사람들은 똑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군 – 안 것은 이 영역에서는 전혀 초보자인 평론자가 본서에서 얻은 많지 않은 하나였다.
제8장 「디스어빌리티 경험과 공/사의 구분」(리노 유키코(飯野由里子))주제의 설정은 매우 정당하다. 올리버가 그렇게 단순한 것을 정말 말하고 있는 것일까 – 평가는 「원전」을 확인한 상태가 아니다 – 라던가 필게르슈타인의 걱정은 지당하다고 생각한다, 등이라 「장애학」 업계를 다소간 알고 있는 사람은 읽어 간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공/사」의 경계를 새롭게 또는 처음으로 문제시 했다는 것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적어도 그것을 배운 사람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것을 장애라는 주제에 가지고 올 때에 무엇을 말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그것이 써져 있지 않다. 덧붙이자면 (보통의 언어 용법에서) 사적인 장의 (또는 놓여진) 차별이 일본에서 (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얼마든지 문제시되어 왔음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무엇인가 라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에서는 대표이며 편자의 한 사람인 마츠이(松井)(가 집필한 것은 서장「사회 속의 장애인 – 왜, 「장애」를 다시 묻지 않으면 안되는가?」와 제5장「「보통」사람의 국가의 장애인 취로」)를 별도로 한다면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편자인 가와시마의 전공은 법학이며 담당하고 있는 것은 제9장 「차별금지법에서의 장애의 정의 – 왜 사회모델에 근거해야 하는 가」. 그리고 나가세의 담당은 제4장「장애인 제도개혁의 구조 – 일본의 장애인 제도의 과제」.)후쿠시마의 종장 전의 두 장이 「경제학과 장애학의 대화에서」(띠)로 되어 있다.
제10장 「장애등급을 결정하는 것의 곤란성」(세키구치 요헤이(関口洋平 )). 아로의 불가능성 정리를 가져와서 「불가능성」이 언급된다. 그것은 - 설정되고 있는 주지의 사람에게는 주지의 조건 하에서 – 당연하다. 증명되고 있는 것이므로, 그 다음 도오킨의 보상과 책임 어프로치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동일 책임에 대한 동일복리」라는 공리1과 「동일장애에 대한 동일이전」이라는 공리2를 세우고, 이 두가지 조건・공리를 충족하는 룰이 매우 특수하며 비현실적인 가정을 세우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절은 「어떤든지 간에, 평등한 장애인 보장을 생각하는 것은 번거로운 문제이며, 더욱 더 규범적 분석이 필요하게 된다」 (p.346)라 결론내린다. 예를 들어 도오킨의 예에 대해. 상세한 해설은 없으므로, 뭐라 말할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책임을 가진, 가지지 않은(적어도)것은 장애ㅢ 없음 있음(적어도)에 대응한다 언급된다. 그것은 그러한 모델 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 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동일 장애에 대해 동일 「복리」와「이전」(=「소득보상」)을 양립시키려 해도 무리라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그러나 당연하게도, 「자원주의」와「후생주의」(「복리주의」)가 떨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11장 「「장애를 정의한다」는 것」(사카하라 키리(坂原樹麗)・사토 다카시(佐藤崇))「우리들이[…]나타낸 것은, 한가지 언어사용자로서의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장애인이나 장애를 인식하고 있는 가에 대한 이해에 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어떻게 장애가 「사회적으로」인식되는 가,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꽤 먼 거리가 있다. […]원래, 생각해보면, 무엇인가가「사회적으로」인식된다는 것일까 라는 것조차 잘 모르므로, 실은 종착점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길에 있다고 말해도 좋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지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필자들은 생각되었던 것이다. 」(pp.379-38)이렇게 끝나는 이 장에서 유감스럽지만 나는 거의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학에 존재하는 문제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 따위는 아니다. 필자들은 「장애라는 개념을 정의한다는 「행위」를 묻는다는 관점」(p.379)에서 논했다(정확하게는 「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필자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가와시마(川島)의 제9장「차별금지법에서의 장애의 정의 – 왜 사회모델에 근거해야 하는가」- 나는 그 주장의 일부(미국류의 정의를 괜찮다라는 주장의 일부)에 대해 전면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의의가 있는 장이라 생각했다 – 에 대한 언급이 이 장에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과연 거기에서 「대화」와 같은 것이 이루어졌는가. 나는 그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려운 이야기」는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한 것이 혐오되는 경향이 있다면, 나는 그것은 유감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유감스러운 것은 「현장」에 가까운 곳에 다수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역으로 그것이 「학」이라 불리게 되든지 하면, 별것 아닌 이론도 아닌 이론을 받든다던가 하는 일도 있으며, 그것도 또한 유감스럽게 생각된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가를 자신이 아는 것,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것이든 아니든 공부하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지 그를 위해서 또는 – 함께 이야기하면 잘 될 것이라던지 라는 것은 나는 전혀 생각지 않으므로 –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도, 먼저 론(論)과 론(論)을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에 관련된 것이므로 장애학을 「기본」에 기본이 된 것, 기본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 겸허하게 알아가는 것이 더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 생각한다.
cf.
◇아로의 불가능성정리 http://ja.wikipedia.org/wiki/%E3%82%A2%E3%83%AD%E3%83%BC%E3%81%AE%E4%B8%8D%E5%8F%AF%E8%83%BD%E6%80%A7%E5%AE%9A%E7%90%86
◇핀켈스타인=Vic Finkelstein(조만간 사람 페이지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http://www.arsvi.com/b1990/9801hc.htm etc.
・다테이와(立岩)[2012],아사카(安積) 외[2012](제11장)
「☆05 체제 중에 다이아나 왕비가 사망했다. 빅 핑클슈테인(Vic Finkelstein, 남아프리카 공화국출신, 반 아파르트 헤이트 투쟁으로 투옥, 영국으로. 오픈 유니버시티 교원, 초대 영국 DPI대표, 전 DPI 세계평의원, 영국 장애학 창시자의 한 사람)의 이야기도(나카니시 유키코(中西由起子)씨의 통역을 통해) 들었다(이 때 강의개요는 휴먼케어 협회 케어메니지먼트 연구위원회[98]수록). 동행한 다카하시 오사무(高橋修)(○페이지)와「(일본에서도)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다. [98D]에도 그 보고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하에 한 각주
「개호보험에서 결국 결정된 것은 요개호인정 구조이며, 케어메니저에는 공급량 결정의 권한은 없으며, 그 일은 결정된 총액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 되었지만, 당초, 메니지먼트에 위기감을 가진 사람들은 매니저에 의해 강한 권한이 부여되고, 양도, 생활 방식도 결정되어 버릴 것이라 걱정했다. 그래서 (나도 동행했지만), 1997년 가을, 영국에 가서 거기에서의 「커뮤니티 케어」를 보고 오기로 되었다. (진지한) 메니저는 예산을 내주고 싶지 않아 하는 측과 이용자 사이에 끼어 곤혹스런 입장에 있는 것 같았다([98A])☆05. 그 구조는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영국 보고와 대안을 합친 책자(휴먼 케어협회 케어메니지먼트 연구 위원회[98])에서, 나카니시 쇼지(中西正司)등의 안을 내가 문장으로 하는 형태로 「케어 컨설턴트 모델」을 제안한 적도 있었다(나카니시(中西)・다테이와(立岩)[98]).」
◇다테이와 신야(立岩 真也) 2008/04/26 「유한성이라는 상투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보고),학술창성연구비「종합사회과학으로서의 사회・경제에서의 장애연구」월례연구회 장소:도쿄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