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콜린반스씨와 쉘든씨가 강의를 하는 곳은 리츠메이칸대학 대학원첨단종합학술연구과이다. 우리 대학원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대학원이다. 2003년도에 개설되었고 학부가 없는 독립된 대학원이다. 5년간의 박사과정 일관제 대학원(최근에는 다른 곳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후기과정 즉 박사과정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1년에 입학 정원은 30명 정도 이며, 우리 대학원의 웹사이트에 한글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을 참고해주시면([Japanese]/[English]/[Chinese]/[Korean])감사하겠다.
우리 대학원은 2003년에 개설되었으며, 장애나 병등 신체의 차이나 변용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유는 정확히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한가지 이유라고 생각되는 것은 교직원들 중에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몇 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교직원들과 점점 늘어나는 대학원생들이 해온 일들이 일본에서 알려지게 되면서 더욱 많은 대학원생들이 입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끔까지 시각장애인 대학원생이 7명, 휠체어 탄 학생 4명을 포함하여 신체장애인이 6명 등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입학해 왔다.(정신장애, 발달 장애등을 가진 /가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지 모르겠다.이것에 대해서는 「인페어먼트」/「디셔빌리티」라고 하는 도식이 얼마만큼 유효하는 지에 대한 의문으로도 연결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공간에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그 비율은 일본의 대학들 중에서는 특이하게 높다.
앞으로 서술할 내용이겠지만 우리들은 우리의 대학원생들에 대해서는 시행착오를 해 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지원을 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도전자체가 연구활동의 일부가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대학원 생들은 사회인으로서 사회복지나 간호 의료의 영역에서 직업을 가진 현장활동과 연구를 병행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해온 일들을 정리하고, 그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본인들이 하는 일을 현장에서 묵묵하게 일만 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다.
그사람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간호사, 재활관련, 사회복지현장에서 일을 하거나, 학생들을 가르키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있으며, 일본은 이런 사람들이 대학원에 공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곳들이 최근에 증가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그런 곳에서 배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곳에서 배우는 내용이나 자신의 관심분야가 맞지 않은 사람, 또는 기존의 학문이나 공부하고 있는 것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학문들 중에는 오히려 좋다고 주장해왔던 것이나, 배워왔던 것에 의문을 가지고, 그것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학원에는 그런 사람들이 입학해왔고 앞으로도 해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대학원은 인문사회학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넓게 열어두고 있지만, 학생들 수를 생각해 보면 주로 신체(장애, 다름, 변용)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들과의 연구 축적을 인정받아 우리들은 문부과학성이 선정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글로벌 COE프로그램에 응모하여 채택되었다. 거점의 명칭을 〈「생존학」창성거점――장노병이(障老病異)와 함께하는 세계의 창조)로 했다.
이것에 대한 취지는 이곳을 참고 해 주시길 바란다.([Japanese]/[English]/[Korean])。
또한 팜플렛도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
([Japanese]/[Korean])。
이 자금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지원 받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우리 대학에서는 이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생존학 연구센터]를 설치했다. 생존학 연구센터의 조직•명칭에 대해서는 사실 특별한 의미가 없다. 또한 어떤 [학문이나 학]의 이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적어도 나는). 오히려 곤란한 것은 [생존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이다. 필요해서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특별하게 학이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연구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생존학센터에 대한
주제에 대한 입장이나 주장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그것으로 상관없으며, 그런 경우에는 그것을 환영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은 위에 있는 취지문에 있는 그대로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그 첫 대목만을 이곳에 조금만 재 기록 하기로 하겠다.
「 사람은 누구나 각자 다른 신체와 다른 환경 속에서 조금씩 다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연대나 증여의 계기이기도 하며 사람들로부터 적대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개인의 고난이며, 현재와 미래 사회위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람과 사회를 형성하고 변화 시키고 있는 크나큰 본질인 셈이다. 본 연구거점은 이것과사회와의 관계를 해석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구상하고, 사회와 세계를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 대학원의 교직원이나 대학원생들 중에는 장애학에 관심이 있거나 학회 회원이기도 하며, 학회대회에서 발표를 하는 사람도 있다. (2009년의제6회 대회는 리츠메이칸대학이 학회 장소였다는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예외적이기도 하지만 총 보고자의 79명중 우리대학원의 학생이나 관계자가 42명을 넘었다). 다만 중복된 것은 아니지만 장애학을 대상으로 하는 범위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애」와「병」을 [장애]등이 자주 대치되어 장애는 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장애이기도 하면 병이기도한 상태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도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책을 냈다『ALS――부동의 신체와 호흡하는 기계』(다테이와(岩[2004])라는 책이 있다――ALS[Korean]의 사람들은 중증의 장애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리고 본인들은 대부분 병자이기도 하며, 그 생각에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은 환자가 아니라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ALS인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이것 자체가 고찰의 대상 즉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이것에 대해 나는 글을 쓰기도 했다 ★01). 그리고 또한 병/늙음에 대해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나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누구나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은 연구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렇게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총괄한 명칭이 쉽게 생각나지 않은 것이 솔직한 것이기도 하다.
어찌하든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함 속에는 곤란도 있으며 생각해야 할 것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은 다양한 기술을 고민해왔고 생각하면서 실천해 왔다. 또한 그런 것을 계속 이어 받아 우리들도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하든 짧은 명칭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한문을 생각했고 그것이 [생존학]이다
「생(生)」을 영어로 하면「life」겠지만「life studies」로 번역하면 조금 다르게도 생각된다. 또한「생존(seizon)」은「survial」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survial studies」이라고 하면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영어 번역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라틴어를 사용하게 되었다.「Ars Vivendi」로 하여 그것에「Forms of Human Life and Survival」를 붙혔다.「Ars」는「art」로 연결되는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좁은 의미의 예술이 아니다. 그리고「technic」과도 다르다.「vivendi」는「art」를 변용하는 단어이지만
프랑스어의 동사로는「vivre」가 된다. 생체(生体)로서 살아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신체성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도 아니다.
조금더 덧붙히자면 나도 공동저자로 참가했던 1990년의『생의기법(sei no gihou)』([Japanese]/[English]/[Korean])이라는 책을 출판했을당시(증보개정판은 1995년)표지에 사용했던 단어가 이「ars vivendi」였다. 게이오대학의 교수이며 공동저자였던岡原正幸([Japanese])가 게이오대학의 라틴어 교수에게 확인해 주었다.
■Ⅰ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매우 다양하며그 성과의 대부분이 일본어로만 쓰여 있지만, 주제나 논문 학회발표의 제목들에 대해서는 점점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지고 있다. 그곳을 참고 해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을 몇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위에서 소개한 [취지문]에서는 3개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로는 알려져도 좋은데 알려지지 않은 것, 기록되어도 좋은데 기록되지 않은 것을 기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 에서 조금 다룬 것 처럼 각국가나 지역의 정치세력의 배치가 언론 본연의 자세에 영향을 준다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사하고 알아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장애인운동을 보더라도 그곳에는 굉장히 넓고 강한 공통성과 함께 몇 가지의 다름이 있다. 그러한 차이들에 대해서 생각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조사하고 생각하면서 없었던 것을 좋게 만들 낼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가 이론적으로- 철학적, 윤리학적으로 말해도 좋을 것이다-연구하고 고찰해야 할 과제가 몇 가지들은 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은 다른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지만 소위「Bioethics」라고 불리 우는 영역의 주제에 대해서도
그리고 거기에서 「주류」라고 여겨온 사고방식들에 대해서도 대학원 학생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사회의 가치들이 강하게 연결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가치나 도덕의 보편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있지만, 사실은 주류라고 생각해왔던 인식들에 대한 또 다른 생각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그것들도 나름대로 적당한 이론도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도가 통해서 이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는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면 Bioethics과 장애인들의 운동과 주장의 관계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장애학은 이러한 부분을 문제로 하고 있다. 다만 그곳에서 배우면서 더욱 생각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Ⅱ
다음으로 우리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 중에는 장애와 병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시할 수 가 있다. 예를 들면 그 성과의 하나로서『시각장애학생지원기법』의 간행판이 있다. 이것에는한국어판(책자+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와 일부의영어판(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이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현재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대학원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실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교육/연구에
관계하고 있으며, 관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이 의심받지 않고 필요하기 위해서는 어떤 학문의 명칭을 가지고 있더라도,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것들은 장애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일본의 장애학회의2007년 대회와2009년 대회는 리츠메이칸대학에서 개최했지만, 2009년의 심포지움의 하나는 우리 대학원의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기획을 담당한 것이 [장애학생지원을 이야기하다]였다. 이미 신체장애인이나
시각/청각장애 학생지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발표되었으며, 몇몇 곳에서 실시되기도 했다. 당시의 심포지움에서는 내부장애, 정신장애, 발달장애가 있는 대학생을 초대하여 발표하도록 했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교육/연구의 장에서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그리고 신체장애로 인해 발표가 곤란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의 교신(交信)――실천을 위한 시스템과 사상」이라고 하는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과학기술의 역할이 때론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그 연구자체에는 자연과학의 연구자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한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전제로 하면서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제도적인 시스템이나 사회의
방법에 대해서 검토하고 가능한 방향으로 제안하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서적등의 문자정보를 컴퓨터를 사용해서 확대문자 했을 때 정보제공의 시스템 만들기나 저작권법상 문제의 해결방법을 검토하려고 하는 과제가 있다.
■Ⅲ
그리고 이미 위에서 열거한 2개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회의 커다란 구성부분에서 자세하고 구체적인 장치로 만들어 질 때 까지 사람과 사람사이의 작은 관계로부터 국경을 초월한 지구규모로 생각하는 쪽이 좋은 것 까지, 시스템이나 제도를 구상하고 그 실현을 위해 방법을 생각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3]에 조금 기록한 실천이 있어, 만들어내 시스템이 있다. 그 흐름을 쫒아 기록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고 앞에서 기록했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남겨진 과제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일의 대부분이 이러한 작업이다. 이번과 같은 이런 문장 중에도 [4]그 일부이지만 2009년에 출판된 『세(税)를 고치다』([Japanese]/[English]), 200년에 출판된『베이식인컴――분배하는
최소국가의 가능성』([Japanese]/[English])도 이러한 활동들 중에서 만들어 낸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현재 우리 대학원의 학생과 대학원을 졸업한 박사들이 함께 했다. 또한 보다 기본적인 고찰은 1997년의『사적소유론』([Japanese]/[English]),『자유의 평등』([Japanese]/[English])등을 출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