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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유일한 생!

다테이와 신야 2010/**/**
일본종교연맹 제4회 종교와 생명윤리심포지움『「존엄사법제화」의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
일본종교연맹제4회종교와 생명윤리심포지움보고서(예정)
http://www.jaoro.or.jp/


 일본종교연맹 제4회 종교와 생명윤리심포지움『「존엄사법제화」의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의 기록
 *2009年12月18日(金)13:30~16:30 그랜드힐 이치가야3階「유리」

◇패널리스트
 다테이와 신야・리츠메이칸 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교수
 井形 昭弘이가타아키히로・일본존엄사협회이사장
 加藤 眞三・게이오기숙대학 간호의료학부교수
 마스이토오루光石 忠敬・변호사
 코디네이터:  시마조노스스무島薗 進 ・동경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교수

자료로 보낸자료(보고서에 게재예정)

 *아래는、당일 심포지움의 기록중에 시마조노상의 개회인사부분과 다테이와의 발언부분을 제외한 것입니다.(아직 수정중인 문서입니다.)。이 심푀움의 기록은 일본종교연맹에서 보고서로 간행될예정입니다. 부디 봐주시기 바랍니다.

◆시마조노: 여러분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시마조노입니다. 종교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은 사생학도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의료가 점점 더 발달해가면서 커다란 혜택을 받음과 동시에 새롭고 어려운 문제들에 얽힐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종교학과 사생학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생명윤리의 문제로서 다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이와 같은 영역의 의논이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종교연맹의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일본종교연맹은 일본의 신도, 불교, 기독교, 신흥종교, 교파신도와 같은 주된 종교단체가 소속되어있는 연합조직입니다. 종교의 사회적 책임으로서도 또, 종교가 각각의 신앙의 방식을 깊게 하는 면에서도 생명윤리의 문제에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제까지도 몇 번 생명윤리문제를 다뤄 공개토론을 추진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다뤄져 왔던 것은 뇌사, 장기이식문제였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관심도 무척 커서, 종교계도 높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왔습니다. 그 의논을 진행시켜가는 동안에 뇌사, 장기이식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제3회 심포지엄에서는 존엄사 문제를 함께 다뤘습니다. 그 때는 이곳에 계신 마스이선생님과 다테이와 교수님께서도 참여해 주셨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이번은 존엄사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강사발제

◆다테이와 : 소개받은 다테이와입니다. 지금 소개해주신생존학이라는 연구거점의 홈페이지「좋은 죽음?」이라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여전히 불충분한 부분도 있지만 안락사, 존엄사를 둘러싸고 일본 및 세계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떠한 논의가 있어왔는지 와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으니 부디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작년과 올해에 두 권,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하나는『좋은 죽음』이란 책입니다. 그리고 올해, 『유일한 생』이란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지쿠마서적(筑摩書房)에서 나왔습니다. 전부 800페이지정도인 책으로 상당히 많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보시면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본격적인 의논은 그와 같은 부분에서 해가려고 합니다.
저는이가타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제가 나중에 말하게 돼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기서 논점을 몇 개 열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우선 첫째,이가타씨는 존엄사라는 것이 인정되는 지역, 또는 사회는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의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되는 지역이나 그곳에 있는 가치관에 어떤 종류의 편견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 영국, 스위스, 네델란드 등 종교적으로도 약간의 편견이 있지만 개인의 자필, 개인의 일은 자신이 쓴다, 자신과 관련된 일은 스스로 모두 컨트롤한다는 것이 옳다라고, 반대로 말하자면 그와 같은 것이 불가능하면 좋지 않다는 가치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그러한 사회에서 치료의 중지나 존엄사또는 안락사라는 것이 허용되는 사실은 분명 있습니다. 단지 예를 들면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유럽에서도 남쪽, 동쪽을 생각해 봤을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 조금 전에 거론한 지역에서도 당연히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가치판단에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치를 표명해야 하지만 저는 사회학자라는 점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사실을 몇 개 열거하려고 합니다. 우선 비율이 어떻다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와 같은 것을 허용해서 허용해도 상관없다라는 사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도 있다는 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은 한가지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영미형의 사회와, 무척 거칠게 말하지만 그 사회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30%정도의 사람이 호흡기를 끼고 여생을 살고 계신 사회와 비교해서 스스로 의료비를 지불하는 극소수의 사람 이외에 90몇%의 사람은 호흡기를 끼기 전 시점에 사망하게 되는 사회도 있습니다. 그 중 두 개의 사회를 비교해봤을 때 어느 쪽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생각해볼 점이라는 것이 하나의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제2로 안락사와 존엄사는 구별 가능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직감적으로는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입니다. 약을 과다복용 한다던가 주사를 놓는다던가 이것은 안락사, 아니면 자살방조가 됩니다. 그것에 비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 혹은 무언가를 그만둔다라는 것은 다르겠죠. 저도 그 차이가 있다는 것에 관하여 전면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면 심장박동조절기(페이스메이커)를 넣어서 생명을 유지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멈추면 그 사람은 죽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죠. 그 심박조절기를 멈추는 것은 살인이 아닐까요? 아니면 본인은 스스로 그것을 멈출 수 없어 누군가에게 의뢰해서 시행하는 것은 자살방조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언뜻 보면 살인이나 자살방조라는 것과 질적으로 구별된 것처럼 여겨지는 약간의 정지, 뭔가의 시작하지 않음이 윤리적으로 보다 문제가 적다는 것은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 그렇게 나뉘어 질까요? 마스이씨도 언급하셨습니다만 이가타씨가 말씀하신 「자연스러운 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플러스알파 된 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우니까 좋다라고 하는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예를 들면 심장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면 심박조절기를 사용하고 호흡기가 잘 안 움직이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며, 눈이 보이지 않으면 안경을 쓰듯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 전부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요?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락사, 존엄사라는 것을 둘러싼 경계선이란 것은 고려할만한, 꽤 미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단순한 이론적인 문제가 아닌 현실적인 문제로서 인권이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 나라들에서 그만두는 것은 당연한 듯이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부터 점점 의사에 의한 자살방조라는 것도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같기에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가치판단을 제외한 현실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은 두 번째입니다.

  다음 세 번째로 왜 죽음을 향하고 싶어지는가 라는 점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막연하게 이야기해도 결말이 안 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하나 생각해서 하나하나 검토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적어도 5개 정도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육체적인 고통입니다일본존엄사학회의 분들도 고통을 없앤다는 것에 최선을 다해 합시다.라는 것은 매번 말씀하고 있다.고전적인 안락사라는 것은 고통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컸던 것입니다만 지금은 그와 같은 시대도 아니고 그러한 시대가 되지 않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에 의해서 죽는다라는 이야기는 좀처럼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유로부터 대체적으로 벗어났다는 말이 됩니다.
  두 번째 예를 들면 치매와 같은 지적 능력이 변하는 상황입니다. 치매가 발병하기 전에 치매가 되면 날 죽여달라 라고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할까 아닌가에 관해서는 전 여기서 의논하지 않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고로 일본존엄사협회는 일시적으로 치매에 관해서도 존엄사를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의견이 나와서 、「의식이 흐릿한 노인을 껴안은 가족회」(현 치매환자와 가족회」)로부터 비판이 일어나 철회한적이 있었습니다. 철회도 했으니까 이것은 이 이상 말하지 안겠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의식의 상태가 바뀌는 것이라면 3번째는 의식의 상태가 없어지는 천연성(시일이 연장되는)의식장애, 또는 식물인간상태라고 일컬어지는 상태입니다. 이것에 관해서도 몇 개의 논점이 있습니다.
 우선 정말 의식이 없는가 라는 점을 보면 본인에게도 말씀은 하시지만 본인의 의식은 거기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그 상태는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플러스마이너스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제 앞의 두 방향이 강조된 것입니다만 본인에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 알 수 있나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혹은 그 상태가 변함없이 지속되는지 아닌지 하는 점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무척 괴이한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도 숫자가 나왔습니다만 꽤 최근의 조사결과도 포함해서 의식이 없다고 들은 30~40%의 사람이 실은 그렇지 않았다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조사결과자체를 어디까지 믿어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와 같은 결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인간상태라는 것을 근거로 해서 혹은 식물인간상태의 경우에 그것이 인정된다는 것은 충분한 검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됩니다.
  네 번째는 불치, 낫지 않는다라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낫지 않는 병을 잔뜩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기본적으로는 낫지 않는 것을 장애라고 합니다. 그럼 그것은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라고 하면 안됩니다.물론 오래오래 생각해서 말씀 드려야 하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좋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5번째 말기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말기라는 것이 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은 조금 전 마츠이씨의 말씀에도 있었습니다. 말기라는 것이 2시간, 3시간,반나절,하루라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평범한 인간이기에 말기라고 하면 그와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수시간, 하루,상황에 따라서는 며칠을 미묘한 판단은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말기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몇 시간이 아니다, 조금 전에도 이가타씨의 이야기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확실히 빨리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무언가 하게 되면 5년도 10년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그런 설 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체 무슨 말일까요? 무언가를 하면 5년 10년을 살 수 있다는 말은 말기라는 것일까요 5년, 10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통 말기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줄로 압니다만 적어도 「말기」라는 말은 그와 같은 애매함이 단순한 애매함이 아닌 위험한 애매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처치를 하게 되면 몇 년 정도 삶이 지속된다는 것이 어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의 적극적인 근거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반대로 앞으로 몇 시간 안에 이 사람은 죽게 된다라는 것이 밝혀졌다면 그 시점에서 그만둘지 그만두지 않을지 하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윽고 그 사람은 죽어간다고 하면 말기라는 시점에서 약간의 정지, 존엄사라는 것을 안내하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생각하기 쉬운 것과 가깝기도 하지만 대충 들으면 잘 알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셨을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우리는 지금 자연스러운「존엄 있는 죽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향하고 있나 하는 점입니다. 이것도 사실만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 이른바 과잉의 의료라고 하는 것이 한편의 현실이라고 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필요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존엄사협회의 주장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의 절반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천연성(시일이 길어짐)의식장애라는 것 일수도 있고 신체적, 지적으로 다양한 사정이 있어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가족에게,아니면 사회에 경제적인 사정상 무척 힘들다는 점도 있습니다.이가타상은 훌륭하게「댄디」라는 단어를 쓰셨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것 왠지 체면을 구기는, 댄디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할지 빨리 정해두세요 라고 말합니다. 빨리 정해두라고 하게 되면 그럼 여차저차해서 즉, 빨리 죽기로 정하게 됩니다. 몇 번의 경우도 현장을 본다면 그와 같은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을우리들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에 의해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라고(삶을 빨리 포기하려고) 하고 있나 하는 점입니다. 그 중에는 하나가 아닌 여러 사정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부분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가치판단이 아닌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조금 전에 이가타씨가 말씀하신 일본존엄사협회에 행해지는 타당하지 않은 비난과 각종비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겠습니다.
  존엄사 법안을 만들자 라는 주장은 약자에게 압력을 주는 것이며 또는 의료비삭감을 위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젖는 옷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이라고 인정합시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니까 이가타씨,아니면 일본존엄사협회는 그와 같은 것은 일체 생각하지 않으실 거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추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의도는 없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하고 싶다는 것이기에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에 그 사람이 정해야만 하는 경제적, 사회적인 사정,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치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존엄사를 추진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돈의 부담을 위해 추진하려는 계획은 아니라는 점과 실제로 그 사람들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 그와 같은 부담이 든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지금 말씀 드린 후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사람이 죽음에 다가가는 것을 둘러싼 사정을 하나하나 보면서 제가 극히 간단히 예를 든 중에서 사람을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이유가 좀처럼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말씀하신다면, 본인이 (빨리 생을 마감하려는 의도를)말하고 있다면 그걸로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 하나하나 어떤 의미로 그것이 정당화되는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닌지를 자세히 조사하고 그와 같은 것을 의논할 필요가 있고 그 이후에 이 심포지엄에서 그 의논에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면 큰 의의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박수)

■토론

◆다테이와 이가타씨의 이야기를 듣고 세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는 저는 지금의 상태에 관해서 말하자면、현행의 법제의 적정한 해석으로 대부분의 경우은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임종이라는 때에 、무익한、때에 따라서는 가학적인 늑골이 부러지는 듯한 심폐소생、전기쇼크가 행해지는 일 등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가까이서 봐온 사람이 이것의 옭고그름을 생각해서 연명조치의 중지를 신청하는 사례도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지금 들었던 구체적인 실행에 대해서는 무익으로,때로는 유익한 실행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법을 기초로、그건 안하는 편이 좋다는 의견은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토에 있습니다만 그곳에 있는 병원의 윤리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한적이 있습니다만 심폐소생술에 관해서는 상당히 고민했습니다만、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방향의 가이드라인을 두고있습니다.
  그리고、저자신의 생명은 길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수명은 조금 짧아지겠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기분좋은 시간을 갖는 편이 우선한다라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도 지금의 우리들의 윤리관, 그리고 법률상으로도 인정되고 있습니다.그 이외의 것을 새로운 룰을 만들어서 어떻게 해서든 인정하지않으면 안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자살도 아닌, 안락사도 아닌, 중지나 정지등 소용없는 것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용없는 것이라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안 하기로 정한다면 그것은 옳다고 우리는 분명 생각합니다. 단지 자살이라는 것과 중지라는 것의 구별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렇게 해서 살아있다’에서 「이렇게 해서」를 뺀다면、그 사람은 확실히 죽음에 이르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공 심박 조절기일지도 모르고 호흡기 일지도모르고 인공투석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 혹은 그것을 돕는다는 것은 자살방조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것을 정리한 후 라야 이 문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재차 강조해두겠습니다.
 그 뒤에 세번째로 당신은 자살의 권리를 인정합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인정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종교자의 분들의 어떤 부분과 다른 점이 있을거라 생각하고、저도 그렇게 자신이 있지도 않습니다. 실정법을 근거로 한다면 자살방조자에게 죄를 묻는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궁극적으로、사람은 살고 죽는 것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을 멈출 수 있냐 라고 한다면 역시,잘 모르겠지만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말한 이렇다, 저렇다라는 다양한 조건을 없애고、말해보자면 자유롭게, 아무런 거림낌 없이、살고 죽음은 자유라고 할 때에 당신은 그래도 인정하지 않을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사람에 따라 꽤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렇다면 좋다라고 말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 제가 지금까지 서술한 것의 모든 것이 타당성을 잃지는 않습니다. 이상이 보충이었습니다.

◆다테이와 한가지、사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아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영국이나 미국등은 호흡기를 빼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뺐으니까 이제는 끼울까라고 해서 모두가 끼울까 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않고, 인공호흡기를 착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3%、4%라고 합니다. 그도 그런것이 일본은 착용하면 빼지않는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저는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곳의 지역에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환자는 전체의 30%정도 입니다. 뺄 수 있으니까 부착하는 게 좋다라는 점이 부착하는 쪽으로 결론짓게 하는지 어떤지라는 문제라면 다른 요인이 여러가지 관련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실제는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다테이와  ALS는、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일명 루게릭병)이란 신경성난치병입니다.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발병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중장년이며, 남녀차이도 없습니다. 몸의 근육이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병으로, 구음장애, 대화의 장애로부터 손발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병이 점점 전신을 묶어갑니다.
  폐 자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폐를 움직이는 것도 근육이기에 근육을 움직일 근력이 적어지면 어느 시점에서 호흡이 어려워집니다. 그때 호흡기를 껴서 생명을 지속시킬까? 시키지않을까? 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길고 짧음은 있습니다만 진행이 비교적 빠른 사람은 2년이나 1년반이나 발병하고 그정도 기간중에 이러한 선택을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저 자신은 생각합니다만.
  저는 소수파의 의견이 될지도 모릅니다만、착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는 식으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의료는 생명을 위해서 행해지며 사회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면 착용해주세요, 착용합시다 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책에 써왔습니다. 그와 같은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때부터가 또 길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10년、20년、그중에는 、지금60세로 인생30년을 그렇게 살아온 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병입니다.

◆다테이와  손발은 움직이지않기 때문에 전동 휠체어나 간병인을 동행하게 됩니다만 여러 곳에 가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한 사람이 다수파는 아닙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계십니다.

◆다테이와  지연성(遷延性)의식장애가 계속되어 더 이상 이 상태에서 회복하지않을것이라고 생각되는 포인트가 있어서, 그것은 의료의 실천가의 경험에 의한 지식으로서 이해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죽음에 직면한 상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 사람은 3~4년이 지나서 연명조치를 한 결과 살아있곘지만 그 뒤로 회목하지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이제 몇 년정도 이어질수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서 언급된 죽음에 직면한 상태라는 것은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동시에 죽음의 시기가 가까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의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말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러한 어긋남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때문입니다. 대체 무엇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의 시기가 가까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볍게 읽으면 여기서 말하는 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식물인간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연성 의식장애에 따라서 이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한번 더 반복합니다.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병은 무척 많습니다. 그 것 자체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어쩔 수 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겨진 포인트는 죽음의 시기가 가까워 졌다는 것뿐입니다. 죽음의 시기가 가까워졌을 때 일부터 죽음을 앞당기거나 앞당기지 않는 초치를 행할 필요가 있을지 없을지도 솔직히 비전문가로서는 모르겠습니다.이 글에 무엇이 담겨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무척 이상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재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테이와  죽음을 응시한다는 것은 어떤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비교적 이시기인 최근20년、30년、「바라본다」라던가「응시한다」라는 단어를 습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근거로서 좋습니다만 지금의 우리들이 살아있는 상태가,쳐해있는 사회가 좋지 않다는 타당한 이해로부터 온 것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바라본다」라던지 「응시한다」라는 것은 어떤것인가 생각해 봤을 때 그것은 자명하지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형식적인 말처럼 쓰이는 듯한 상황이 꽤 있어서 그점이 신경쓰입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며 그것을 아는 분이 좋은 점이있다는 것은 인정하기로 합니다. 그렇다면「바라본다」라는 것은 그 이외의, 이상의 무엇을 말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죽음과 삶을 바라보면、「점잖은 죽음」、「명예있게 물러남」과 같은 개념이 도출될것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를 거절당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그러나 관련된 점을 한가지 들어 좀 전부터 신경쓰였던 점이 있어 이야기하겠습니다.지연성 의식장애환자가 있고 괴롭다고 하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지연성의식장애의 정의가 안 되어있다는 이야기와 정의가 되어있다고 해도 외부에서 모른다는 문제는 무척 큰문제입니다만 가령 정의상 의식이 없다고 한다면 본인이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괴로운건 타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은 무엇을 괴로워하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을「바라보고있다」라고 하는것인가? 입니다. 그와 같은 것까지 생각한 후에 지연성 의식장애환자에 대해 운운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다테이와  죽음은 안락한 편이 좋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편이 좋으며, 너무 힘내고 싶지도 않다는 것의 하나하나는 그말이 맞다고 저 자신도 생각하며 제가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것도 그와 같은 의도입니다. 그런 이상, 이가타씨의 이야기는 이해가 됩니다. 단지 지금 주장하신것과 같은 방법이 실현적인가? 그렇게 생각하지않는다는 이야기를 오늘은 하고싶었습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이가타시가 계속 말슴하신 것은 즉,「본인이 좋다고 말했으니까 그걸로 된것아닌가」라는 그 점이었습니다. 저도 상당한 정도, 타인과 비교해도「본인이 좋다고 말한 것 같다고 말하자」라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저 조차도 、「역시 이부분은 간단하지 않다. 생명의 있고 없음에 관련된 결정이란 것은 본인이 좋다고 말했으니까 좋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것은「자살과는 다르다」라고 말씀하셔도 자살과「어떻게 다른가?」라는 문제가 이어집니다.
  이야기가 반복됩니다만「당연하지. 그것 그와 같은 게 아닌가? 」라고 들어서「그렇네」라고 저자신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시한 개인개인의 논점에 대해서 남득할만한 이야기를 하지않으면 이야기는 진전되지않습니다. 그건 확실히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정할 일이다.」라는 의견에 대해 저 자신이 어떤 것을 생각해왔는가는 얼마전에 쓴 2권의 책중에 첫번째인『良い死 좋은 죽음』의 제 1장 「저의 죽음」에서 길게 써져있습니다. 조금 지루한 야이기를 보시고 싶으시다면 그 책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보고「역시 당신은 잘 모르는군」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비판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상입니다.


*번역:안효숙
UP:20100809 REV:20100907
안락사・존엄사(일본어)  ◇안락사・존엄사2010(일본어)  ◇다테이와 신야  ◇Shin'ya Tate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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