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 사람들은 왜 존엄사를 ‘좋은 죽음’이라고 말하는가. 존엄한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 ‘좋은 죽음’인가.
이 책의 저자는 ‘자연스러운, 그리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자기가 결정하는 죽음’이라고 하는, 존엄사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내포한 문제점을 파헤친다. 그러면서 단지 인공적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것을 무의미한 삶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가 아니라 ‘살고 싶다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존엄사 법제화 이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저술이다. 즉 ‘좋은 죽음’이라는 제목은 인간이 오히려 좋은 죽음을 바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서구 일각에서 전개된 이른바 생명윤리학의 유력한 논의들을 전제로 한 것으로, 각 장은 그에 대해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검증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그것은 주체의 자율을 근거로 존엄사를 당연시하는 서구 연구자들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자기결정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 예컨대 중증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사회운동으로서 호소해왔던 것이 다름 아닌 자기결정이지만, 이들은 절대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을 쉽게 긍정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 저자가 존엄사 주장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하나의 계기가 있는 것 같다. 장애자 운동에 오랫동안 관여해왔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자다운 발상이랄까 접근법이다.
그렇지만 특이하게도 저자는 정통 사회학자면서도 통계나 수치로 근거를 제시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거부한다. 오히려 존엄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현실 문제만이 있을 뿐, 우리가 그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윤리학적으로 파고들어 깊이 생각하는 일은 소홀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저자 자신은 사회학자 나름대로 지금 이 사회가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가치와 담론이 유통되고 수용되는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한편으로 철학자·윤리학자에게 사태를 원점에 두고 성찰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촉구한다.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처치를 누가,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죽인다/죽이지 않는다’를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예를 들면 장기이식법에서 말하는 뇌사 개념, 고령자에게는 과잉의 의료가 불필요하다는 주장 등, 198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자주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말들이 있다. 그 사이에 많은 논의가 있었고 또 많은 사건이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되짚어가며 과연 그러한가라고 끊임없이 되묻는다. 어디까지 납득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 동의할 수 없는가, 실은 어디선가 논의가 엉켜버리고 전혀 다른 논의로 뒤바뀐 것은 아닌가.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가 논의로서 성립하는지 본질적인 차원에서 의문을 던짐으로써 생사에 관한 난제를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역시 ‘무의미한 연명 의료’라는 문구가 유행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어떤 치료 등의 행위가 연명에 대해 무익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무익한 연명을 위한 의료’라는 의미까지를 함의하는 것이다. 더구나 실제로 그것은 비용과 이익에 관한 제도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죽음, 존엄한 죽음을 무조건 찬양하기에 앞서 그것이 정말로 가치관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은폐하는 논리에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동조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 『좋은 죽음』과 속편 『그대로의 삶』은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하나의 구성에서 출발하여 짝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좋은 죽음’을 강요하지 말고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저자의 많은 저술 중에서는 드물게 학술서에 속하는데, 논리를 세워 일관되게 자기주장을 전개해가기보다 단락적인 물음들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그것을 비판해가는 식이다. 배경에 있는 것은 생명윤리학의 담론이다. 저자는 서장에서 처음부터 매우 간단명료하게 이 책의 취지에 대한 요약문을 제시하고, 또 각 장과 각 절이 시작될 때는 항상 앞에서의 논의를 정리하고 다음 논의를 이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원론적이고 치밀한 담론 비판을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자가 기존에 다른 저술에서 했던 말들은 대부분 각주를 달아 인용하고 있는데, 때로 본문을 압도하는 방대한 각주는 번역 작업을 지난하게 했다. 그래도 저자의 말대로 어쩌면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그 주장이 이면에 얼마나 다양한 논의들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느 새 말투마저 저자를 닮아가는 듯하다.
이 책의 번역은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의 총서로 기획되었다. 생사학연구소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한 2013년 6월의 첫 국제학술회의에 다테이야 신야 교수를 발표자로 초빙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인 2014년 2월에는 교토에 있는 리쓰메이칸대학 생존학연구센터를 방문하여 연구교류회를 갖기도 했다. 이후 정식으로 두 연구소가 연구교류협정을 체결하기까지 전적으로 힘이 되어준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저자는 우리들의 번역 제의를 기꺼이 수락해주었을 뿐 아니라, 번역 과정에서 여러 차례 급하게 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성실하게 응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기획 단계부터 적극 후원해준 생사학연구소의 오진탁 소장님과 거친 원고를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읽어준 이부용 선생님(한국외대 강사), 그리고 복잡한 책을 읽기 쉬운 형태로 깔끔하게 편집해주신 청년사의 이영림 선생님께 감사를 전한다. 이분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미력하나마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5년 5월
정효운·배관문
■출판사 서평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될 정도라면 죽는 게 낫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자신의 죽음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정말 그런가?
사람들은 왜 존엄사를 "좋은 죽음"이라고 말하는가.
좋은 죽음은 어떤 죽음을 말하는가
모든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깊고 넓게 생각하게 도와주는 저술
존엄한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 ‘좋은 죽음’인가.
질병이나 노쇠 때문에 몸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살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중에서 존엄사 같은 "자연적인" 죽음을 선택하려고 하는 사람도 나온다. 그러나 "어떻게라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죽음을 법제화하기에 훨씬 앞서 고려해야 할, 해야 할 일은 많다. 단지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을 막는, 이 사회를 "살고 싶은, 살아 있는 사회“ 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그 방도를 끈질기게 탐구하는 저서.
■저자소개
저자 다테이와 신야立岩眞也는 도쿄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신슈대학 의료기술단기대학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리츠메이칸대학 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교수로 있으면서 리츠메이칸대학 생존학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생의 기법』(공저),『사적 소유론』,『약하게 있을 자유: 자기결정·간병·생사의 기술』,『자유의 평등: 간단하고 다른모습의세계』,『희망에대하여』,『ALS: 부동의신체와숨쉬는 기계』,『소유와 국가의 행방』(공저),『그대로의 삶』,『인간의 조건』,『차이와 평등: 장애와 케어, 유상과 무상』(공저),『생사를 논하고 행하기1: 존엄사 법안·저항·생명윤리학』,『자폐증 스펙트럼의 시대』등이 있다.
■역자소개_정효운鄭孝雲
리츠메이칸대학 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의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공동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는『죽음 의례와 문화적 기억』(공저) 등이, 역서로는『사생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논문으로는「한국 사생학의 현황과 과제」,「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들의‘호스피스’인식에 대한 기초 연구」등이 있다.
■역자소개_배관문裵寬紋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총합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생과 사의 인문학』(공저),『 일본 고전문학에 나타난 삶과 죽음』(공저) 등이, 역서로는『일본인의 사생관을 읽다』가 있다. 논문으로는「‘신국 일본’의 이미지 변천사」,「 근
세 일본 국학에서의 사후세계 담론의 시작」등이 있다.
■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200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국 유일의 죽음 문제 연구소로 우리 사회 삶과 죽음의 질 향상 및 자살예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12년 9월부터 ‘한국적 생사학 정립과 자살예방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연구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을 수행 중이다. 현재 철학, 종교학, 문학, 민속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다양한 연구자가 참여하여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융복합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http://www.lifendeath.or.kr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서장
1. 요약과 머리말
□□1) 가장 짧은 요약판
□□2) 짧은 요약판
□□3)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왔는가
□□4)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