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을 변경하여 이번 회에는 한권 만 며칠 전에 도착한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1959년에 삿포로에 태어나 2002년 타계한 시카노 야스아키(鹿野靖明)라는 사람이 있다. 근 디스트로피에 걸린 사람이었다. 1983년에 시설을 나와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뒤 몇 번인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1995년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었다. 그 뒤 결혼하고 이혼할 때까지 2명, 나중에는 계속 홀로 살았다. 24시간 동안 그 생활을 유지시켜 준 것은 대학생 등의 자원활동, 유급 활동보조자들이었다.
이 책은 시카노와 그 주변 사람들을 2년 남짓 취재하여 쓴 460페이지를 넘는 책인데, 곧 끝까지 읽게 되고 만다. 인터뷰, 그리고 시카노가 입원을 할 때 시작되었으며, 그 죽음으로 끝난 95권의 「활동보조 노트」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저자 1인칭으로 문장이 엮여져 나간다. 우리들도 제25회(이번 연도 2월호)에 소개한 『생의 기법』(아사카 준코(安積純子)외, 후지하라 서점(藤原書店))에서 「자립생활」에 대한 내용을 썼는데, 활동보조와 활동보조인의 세계에 대한 기술은 꽤 압축적으로 되어 있다. 그 만큼의 분량, 확산과 깊이로 쓰여 있는 것은 이 책이 완전히 처음이다.
필자는 1968년 태생으로 삿포로에 살고 있는 프리타. 활동보조인으로는 연상의 사람도, 연하의 사람도 있다. 1959년 태생의 시카노는 약 10살 위.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시카노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거기에는 무엇이 벌어졌는가, 필자는 그 세계에 들어가 혼란스럽지만 생각한다.
시카노 만큼 매우 다루기 힘든 사람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활동보조인의 활동보조 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대상으로 활동보조를 경험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인 것은 아니다. 실감, 공감을 가지고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들락날락거리면서 일단은 상호 전혀 관계없었던 사람이 등장하는 세계는 역시 불가사의하기도 하나, 그러나 모두들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써져 있는 것은 거대한 – 지금까지는 역시나 작지만 – 갈등이다. 세상에는 더욱 「능력있는 자」도 있으나, 시카노는 불안정하며 달변인 사람으로 인공호흡기를 단 이후에도 계속 수다를 떨었다. 불면증과 「불안신경증」으로, 잠들면 그대로 죽어 버릴 지 몰라 수면제의 「최강」(4: 이하 숫자는 페이지수)의 것을 먹고 겨우 잠들수 있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에도 활동보조인은 체위를 바꿔주는 문제도 있기도 했으며 안심하고 잠들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그렇기 때문에, 그 생활은 어떻게 해서든 유지가 되었다.
「유명인」이 되고 싶은 시카노 – 유명하게 되면 활동보조인도 모인다 – 는 책이 가능한 한 출판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내용으로 출판하는 것을 허가했을까. 거의 완성되었을 즈음, 그는 타계해 버렸다. 의외로 쓴 웃음을 지으면서,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나,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좋은 점만 말하는 사람이니까요」(366)「나에 대한 것은 괜찮으니 될 수 있으면 시카노 씨가 좋아 할 만하게 써주세요」(390)라는 글도 담긴 이 책이 나올 때까지는 한 바탕 소동이 있었을 것이다. 시카노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자원활동가나 필자를 통해 그려진다.
「허세 부리는 사람」(7)「그냥 평범한 사람」(103)「가끔은 『나는 카리스마가 있어』라 착각을 하기도 한답니다」(103)「언제나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113)「에로 할배」(113)「긴장하는 사람」(141)「꿈틀거리는 의식이나 욕망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사람」(141)「일관적인 진지함. 어리광도 부리지만 의외로 심지가 굳다」(185)「살고자 하는 욕망덩어리」(388)「『이거 해, 저거 해』시카노 씨」(301)「시카노 씨의 매력은 그의 약점은 너무나 알기 쉽다는 것」(301)「토라 씨(寅さん)(역자주: 남자는 괴로워라는 연속드라마 주인공)」(302)「장애를 빼버리면 시카노 씨의 캐릭터도 사라져 버리니, 그건 곤란하네.」(303)「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시카노의 인격 그 자체가 근 지스와 일체화되어 버린 것 같다.」(303)「자아 덩어리」(395)
필자는, 약간 떨어진 지점에서, 하지만 그렇게 떨어지지 못한 채, 자신에게 질문을 돌려, 왔다 갔다 하면서 시카노 본인이 쓰지도 않았으며, 그에게 활동보조를 한 사람도 쓸 수 없는 – 찾아보고 쓰는 것은 그 사람들의 임무가 아니다 – 것을 써 나간다.
활동보조의「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라는 인간도 의외로 상냥한 인간인가? 라던가 생각해보면」(115)「가끔씩 하는 자원봉사자」(119)「살아갈 의미를 원했어」(116)「불행한 한 명의 인간은 또다른 한 명의 불행한 인간을 만나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120). 「내 자신 찾기」계통의 사람도 있고, 「이유는 없어요. 그냥 기분이에요」(136)식의 「밝은 스타일의 자원봉사자」(127)도 있다.「그냥 타성」(103)「사실은 자원봉사라는 게 모두들 절반 정도는 싫어하면서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400)「결국은요, 그게 시카노 씨에게 정들어버려서 그런거 아닐까요」(400)「이래저래 말할 필요도 없어요. 안하면 어떻게해. 그렇게 생각된다니까요」(401)「너무 그 사람의 깊은 속이랄까, 깊이랄까 그런 거 알고 싶어도 알 수 있을 턱이 없으니까요. 그런 건 그만두고, 더욱 현실 표면에 나와 있는 부분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392)「한 밤 중에 시카노는 평상시보다 약간 솔직한 말투가 되어 자신이 정말 양보할 수 없을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1 대 1」이구나 라는 기분이 든다」(356)「사이키 미나코(才木美奈子) 활동보조에는 일단 철저한 리얼리즘으로 관철되어 있다 」(312)「모욕이나 아이 취급, 조롱 등 망설임도 없이 활동보조와 동거하고 있다」(312)
여기서 빠져버리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나, 기우가 아닌 실제적인 예상을 할 수 있다. 자신에게도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있으며, 그럴 의리는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자면 자신이 좀 더 형편이 나을 지 모른다고도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이 사람에게는 문제가 너무나 많기도 하고, 그럴 만 하기도 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불면증도 불안신경증도, 어둡고 규칙적이며, 근 디스트로피 아동만이 모여서 그 중 다수가 곧 죽게 될 것이며 그건 절대 입밖에 꺼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12살부터 15살까지 보냈기 때문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 수 있겠군 이라고도 생각한다. ICU에는 죽기 싫다며 들어가지 않았던 것도 친구들이 모두 그 곳에서 죽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245).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 속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적 폭발도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생각하는 것을 일단 멈춰보자. 어차피 할 사람은 계속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간단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으니 일단 여기까지. 이 책 소개는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 아래에는 시카노의 생활에서 늘 절실했던 한 가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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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이 책을 다루는 것에는 「정치적」인 의도는 없지만 의미는 있다. 즉,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가래의 흡입 등의 「의료행위」라 여겨지는 것에 대해 「활동보조」하는 사람도 인정해 달라는 움직임은 꽤나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작년에도 그 운동이 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인 사람들 등에 의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그 해결책이 올해로 연기되었다. 그리고 이에 유일하다고 말하도 좋을 지 모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간호사들이다. 개개인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위원회에「대표」로서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은 반대하고 있다. 예전에도 간호계에서 매우 저명한 분과 2, 3분정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흡입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인가(때문에 간호직이 할 수 밖에 없다)라는 변함없는 말씀이였다. 간호사 측은 방문간호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측에서는 기본적으로는 그 방식은 매우 적절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언제가 되면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혹은 그 부담을 경감하며 재택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인가라 반박해온 것이다. 덧붙여 내가 확인해 두고자 하는 것은, 긴 경우 시카노와 같이 24시간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며, 필요할 때에 「의료행위」라 여겨지는 흡입 등을 요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방문간호로는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은 병원 혹은 시설에서 생활하면 되지 않나, 라는 대답은 일단 하지 않기로 하자. 그렇다면 간호직에 있는 사람이 24시간 있으면 그걸로 해결되는 것 아닌가. 「「의료적 케어」가 가능한 의사나 간호사를 자택에서 24시간 고용하는 것 따위는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 가족이 죽을 정도로 활동보조를 할 수 밖에 없다」(43). 이 불가능한 것을, 본래에는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대응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하자. 가령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하여 24시간 그 사람 옆에서 활동보조 – 물론「의료행위」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를 하는 사람은 간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않으면 안되는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나는 「자격직과 전문성」이라는 글(신도 유조(進藤雄三)・구로다 코이치로(黒田浩一郎) 편『의료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위하여』, 세계사상사, 1999년에 수록)에서 일을 시키는/시키지 않는 것을 자격으로 제한하는 것은, 그 일을 이용하는 측이 직접적으로 그 일의 선호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용되는 차선의 방책이라는 것, 동시에, 자격은 스스로의 기득권의 확보나 확대를 위해 이용되고 마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을 서술하였다. 전자에 대해서, 이 일(을 일부 포함한 활동보조)를 위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를 위해 간호 자격이 필수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후자의 이해가 얽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