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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의 책

의료와 사회 북 가이드・13)

다테이와 신야(立岩 真也) 2002/02/25 『간호교육』43-02(2002-02):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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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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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으로 실은 두 권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 19880405 『생명학으로의 초대――바이오에틱스를 넘어서』,케이소(勁草)서방,269+11p. 2400円+税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 20011110 『생명학으로 무엇이 가능한가――뇌사・페미니즘・우생사상』,케이소(勁草)서방,477+17p. 3800円+税

 정말 많은 영역이 있고, 또 각각의 영역에 수많은 책이 있으며,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것 같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행하는가, 그걸로 괜찮은 것일까.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촉진하는 것, 그리고 저항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문제제기인 것이다.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그런 기본적인 점에 대해 생각해왔다. 아시는 바대로, 이미 저술한 책이 몇 권이나 된다. 단서만도, 『생명학으로의 초대 – 바이오에틱스를 넘어서』(1988년, 케이소서방) 『뇌사인 인간—생명학의 관점에서』(1989년 도쿄서적, 문고판 1991년, 후쿠다케문고(福武文庫), 증보결정판2000년, 법장관(法藏舘)『의식통신—드림 내비게이터의 탄생』(1993년, 치쿠마(筑摩)서방) *『생명권을 다시 검토한다 – 에콜로지에서 뇌사까지』(1994년, 치쿠마 신서)『종교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하여』(1996년, 법장관)『자신과 마주하는 「지(知)의 방법」』(PHP연구소, 1997년) *이 있다. *는 품절, 절판인데, 그는 작년부터 「키노코(버섯) 프레스」라는 사이트 (http://www.kinokopress.com/)에서 자신의 저작을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파일로 판매하고 있으므로, 입수할 수 있는 서적도 있다.
  그가 이번 소개할 저서 외에 좋은 책이라 내가 평가하는 것은 『뇌사인 사람』이다. 문고판에는 세 문장이 추가되었으며, 또한 증보결정판에는 「이식전야, 순환기병 센터에서의 강연」「아동에게도 기증 카드에 따라 예스, 노의 의사표시의 길을」이 추가되어 있다. 나중에 소개할 『생명학으로 무엇이 가능한가』를 읽어보신다면, 그가 뇌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소개하지 않는다. 나는 모리오카와 약간 생각이 다른 점이 있으나, 뇌사와 관련된 책을 소개한다면, 그 때 또다시 다룰 수도 있다.
◇◇◇
여기에서는 일단 먼저 그의 첫 저서인 『생명학으로의 초대』를.
  모리오카는 철학자가 철학 속에서 철학을 한다, 등과 같은 것에 전혀 의의를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 하면서 「생명학」을 제창한다. 물론 지금은 누구라도 「학제」라는 언어를 말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단어는 몇 개의 영역의 사람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전문 영역을 말하고 나열하는 식의, 불모인 것이 아니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그런 재미없는 것이 아니다. 먼저 그것은 그 학문 내부에서 무엇이 중요라 여겨지며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가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바이오 에틱스」라 불리는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감각이 기본이 된다. 예를 들어 무엇이 그 존재를 사람=죽이면 안되는 존재라는 기준을 만들어 내는 가. 이 때 바이오에틱스에서 도출되는 「퍼슨 론」이 비판된다.
  이러한 자세는 일관적으로 이어지지만, 책 내용에 대해, 뒤에 모리오카는 『생명권을 다시 검토한다』에서 「「인간비중심주의」사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으나 그 때에는 「다른 생명을 희생한다던가, 이용하거나 착취하는 것도 또한 「생명」의 중요한 본질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였다, 「낭만주의에 내 자신이 빠져 있었다」「만족하고 있는 것은 제10장의 「우바스테 산(姥捨山)문제」뿐입니다」라 서술한다(pp.199-202).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특히 그 전반부에 대해, 이렇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그 자신이 서술하는 바와 같이,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비인간중심주의를 가지고 와서 끝,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cf.졸저『사적소유론』pp.165-166, 178). 하지만 그렇게단순하게 깨끗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은, 그 저작에서도 「우바스테산」을 논하는 마지막 장에 나타난다. 우리들은 다루기 귀찮은 것은 멀리하고 버리고 말지만, 이에 대해 「정론의 윤리학」이 정론을 설파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제시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야 말로 계속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명관을 다시 검토한다』에서 선언되는 것이다.
  이러나 모리오카가, 스스로가 자신 안에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가를 묻고, 그 양면성, 양가성을 검토하는 사상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학문」의 안에서만이 찾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므로 「재야」에 그러한 점들이 있다면, 여기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그러한 사고・작업 과정의 중간보고로서, 또 『생명학으로의 초대』의 「전면적인 개정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는」(p.474)책으로 『생명학으로 무엇이 가능한가』를 냈다.
  서장과 제1장에서는 뇌사가 제2장에서는 「퍼슨 론」이 논의되며, 그리고 3-5장에서는 우먼 리프에 대해, 다나카 미츠(田中美津)에 대해,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서술된다.
  꽤나 오래전인데, 모리오카가 도쿄의 국제일본문화연구 센터에 있었을 때, 그가 코디네이터를 하고 있던 연구회에 나갔던 적이 있다. 그 때 다른 연구회에서 왔던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가 잡담을 하던 중에 「요즘 학생들은 다나카 미츠도 모르네요」라면서 한탄한 적이 있었다. 여러분들도 얼마나 다나카 미츠 씨를 알고 계실까. 모리오카는 일본 생명윤리학은 1980년대 미국의 영향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1970년대 우먼 리브의 우생보호법 개악반대운동을 알게 되어, 그것이 「풀뿌리에서 확산된 「생명과 젠더」와 관한 사색과 실천의 거대 운동이었다는 것」(p.132)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제6장이 「장애인과 「내재하는 우생사상」」이 제목이다. 이 부분은 나에게는 꽤 친숙하게 느껴진다(그러나 역시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1970년대 이후 일본 장애인운동, 특히 뇌성마비자 집단 「아오이시바(青い芝)회」에 속해 활동한 사람들이 말했던 것, 쓴 것을 거론하며, 그리고 이를 계속 이어가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여기에서 먼저 인식되는 것은, 그리고 지난 회에서 다루었던 책 가운데 마츠바라 요코(松原洋子)도 또한 논하고 있는 것은, 이 시기에 우생학 「본체」가 문제시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우생학의 역사를, 유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잘못된 정보에 근거하여 폭력적인 것을 하였다는 역사만으로 파악하면, 보이지 않는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 전회에 서술하였다.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또 강제가 아니라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문제가 없다면, 우생학을 알고 생각한다는 의미의 절반은 잃어버리게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출생전진단과 선택적 중절을 둘러싸고 이 문제에 핵심적으로들어가 있던 사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상은 「내재하는 우생사상」이라는 단어가 나타내며, 문제를 오로지 자신의 외부에 놓아 버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한 제기를 받아, 모리오카는 우생사상을 「태어나길 바라는 인간의 생명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태어나길 바라지 않는 인간의 생명은 인공적으로 태어나지 않도록 해도 관계없다는 사고방식」(p.286)이라 한 뒤에 – 이것은 「본체」를 파악한 정의이다 - , 「생명의 선별을 긍정하는 우생사상과 투쟁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생사상은 이 사회에 살아가는 인간들을 체계적으로 「무력화」하고, 이로부터 「근원적인 안심감」」을 끌어내버리기 때문이다」(p.389)라 한다.
  당신에게 좋음/나쁨, 경우가 좋든/나쁘든, 그것은 어찌되었던, 자신은 그것과 별도로 인정되길 바란다. 나는 똑같이 생각하고 그러한 것을 「타자」의 승인의 형태로서 서술했으나, 모리오카는 스스로의 존재의 긍정의 요구(의 승인)로서 말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완전히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마음에 걸려서 『사상』927호(이와나미 서점, 2001년 8월)에 「자유와 평등・3」을 썼다. 방금 전에 서술하였는데, 문제제기는, 생각하면 할 수록 커지게 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일한 장소에 도달하게 된다.
  그 다음, 내가 모리오카와의 노선의 차이, 자세의 차이를 느끼는 점은, 그것은 「본성」에 대한 것일까. 모리오카는 인간의 본성을 확실하게 말한다. 다른 한편, 사회학자는 본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경계하며, 「그건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 다만,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도 본성이라 말하자면 말할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그 뒤 「장치」를 생각하는 위치를 나는 취한다. 상호 모순된 두 개의 본성을 사람은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어떤 제도를 구상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장치, 조치가 있다면 어디로 흐르게 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자 한다. 「문명(론)」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제도」약간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를 보려 한다. 이 차이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번 회의 책과 「쌍생아의 관계에 있는」(p.474)『무통문명론』이 언젠가 출판된다고 한다.


br> *작성:임덕영イム・ドクヨン
UP:201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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