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Tateiwa >

죽음의 결정에 대하여・4

의료와 사회 북 가이드・7)

다테이와 신야(立岩 真也) 2001/07/25 『간호교육』42-7(2001-7):548-549
http://www.igaku-shoin.co.jp
http://www.igaku-shoin.co.jp/mag/kyouiku/

Japanese

Tweet


 안락사만 벌써 4번째입니다. 미안합니다.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몇 권인가 책을 예로 들며 미국에서 벌어진 찬반양론, 네덜란드 상황에 대해,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을 검증하고 비판한 시미즈 테루미의 글을 소개했다. 그래도 ○인지 ×인지 애매한 주제이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쪽과 ×쪽이 있고, 각각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발언한 사람들이 말한 것을 아는 것은 좋다.
 그 중 한 사람이 마츠다 미치오(松田道雄)이다. 1908년 태어나 1998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른바 학자는 아니었지만 『육아의 백과』등 다수의 책을 썼다. 야후에서 찾아봤더니 현재 구입할 수 있는 책은 10권. 76권은 살 수 없다. 다만 도서관 등에는 꽤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예전에 일본안락사협회의 안락사법제화 운동에 반대하였는데 88세에 출판된 마지막 저작 『안락하게 죽고 싶다』에서는 안락사를 긍정한다.(살 수 있다. 이 주장으로 이어지는 그 이전 저작으로 이와나미(岩波) 북 레터 『안락사』(1983)이 있으며 『우리들의 생활 우리들의 사상』(이와나미 서점, 1988)에 일부 수록되어 있으나 모두 품절)
 다만 그가 단순히 「전향」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하게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약간만(홈페이지에 저작 리스트, 인용집 등을 게재했습니다). 하나는 누가 결정해야 하는 것인가. 또다른 하나는 왜 죽을려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가. 이 두 가지 관계를 제대로 사고하는 것은 중요하며, 그리고 어려운 것이나, 먼저 이 두가지에 대해서 언급해두고자 한다.
 전자에 대하여, 그는 환자의 권리, 소비자 주의를 확실하게 주장했다. 1969년 글에는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어찌되었던 다른 사람에게 지도받고 싶지 않다, 자신의 것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을, 법률 용어로 자기결정권이라 한다고 한다」(「기본적 인권과 의학」『세계』1969년 7월호)와,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있다. 매우 빠른 용례가 아닌가. 그는 확실히 「자기결정파」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 사람 자신이 결정한다 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원리적으로는 안락사, 자살방조는 부정되지 않는 것이 된다.
 
* * *

 그러나 그는, 오타 테레이 등이 중심이 되어 일본안락사협회가 「안락사법」제정을 주장할 때에는 반대했다.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관적이었으며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반대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현실에 어떤 힘이 움직이는 가운데 죽게되는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락하게 죽고 싶다』에서는 「나는 그 모임이 법률학자가 의사가 주도하고 있어서 일반시민 입장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여, 갑자기 법률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였습니다.」(pp.29-30)라는, 이것은 회상한 글이었는데, 1940년대부터 그리고 1970년대 반대운동 가운데 쓴 글은 『사는 것・죽는 것』(마츠다 미치오의 책 7, 츠쿠바 서방, 1980)에 수록되어 있으며, 중요, 그러나 절판.
 그 전문가 우위의 상태는 그로부터 20년 정도 사이에 변화되었는가 라는 지적이 있을 것이다. 마츠다에게는 의료의 「연명주의」쪽이 더욱 본인・시민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을 테지만 예전에는 「시민의 입장」에 서 있지 않았다 간주된 안락사 긍정 입장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지금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이 질문은 아직 남아있다. 지난 호에 소개한 시미즈 테루미의 비판도 덮혀진 채 남아있다. 그러한 것을 먼저 확인해두자.
 또 한가지는, 그 본인에게 죽는다는 것(산다는 것의 의미). 그는 1953년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병고라도 살아가는 것을 단념시킬 정도로 거대한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인생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설 정도로 위대하며 즐거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안락사와 의학」, 『살아가는 것・죽는 것』p.35) 따라서 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여기에서 미묘하게 같은 책에 청년의 자살과 노인의 그것은 다르다고 쓴 문장도 있으며(「노인과 자살」), 그것이 또한 『안락하게 죽고 싶다』에서는 「노쇠가 진행되면, 생명이 아쉽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 의사가 자살을 우울증의 증상이라 정하고 있으므로, 「안락사」에 환자의 길이 있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않습니다.」(p.15)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이를 먹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의 연명입니다. 그 때의 기분은 나이를 먹고 쇠약해진 인간이 아니면 모릅니다. 하지만 신문에 기사를 쓰는 사람은 대체로 30대의 건강한 사람으로, 나이를 먹은 부모의 병사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의사에게 동조하고 연명지상주의 입장에 섭니다.」(p.17) 그리고, 「일본에서 안락사를 법률로 허용할 때는 세계에 선구적으로 환자주도의 방조자살을 인정하길 바랍니다. 서양하고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자살은 악이 아니라는 전통이 있기 때문입니다.」(p.21)라 한다.
 「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군, 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가치관은 개개인의 것이며, 본인의 것이다라는 주장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 회에서도 전전 회에서도 이 주제를 거론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대해 서술했지만 거기에서 단언하지 못했던 부분과 공통된 점이 있다.
* * *
 그 프로그램에서 거론한 테덜란드에서 죽은 여성은 암을 앓고 있었으며 참기 힘든 신체의 고통이 있었다. 다만 그 고통은 약으로 완화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약을 먹지 않았다. 그것은 의식의 총명함을 유지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훌륭한 것일 수도 있다. 히지만 그러한 훌륭함은 죽음을 선택할 정도의 훌륭함이다.
 또 하나 다른 프로그램. 나는 학교 강의에서 캐나다 방송국CBC가 제작한 스로도리게스 재판을 기록한 프로그램 비디오를 보여준다. NHK가 1994년 9월 해외 다큐멘터리 「사람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가」라 방영된 것이 있다. ALS를 앓은 여성이 의사의 자살방조 합법화를 요구하며 재판을 벌였으며, 최고재판소에서 싸우고 결국 패소한다(그녀 자신은 의사에 의한 자살방조로 죽는다). 드라마틱한 것을 과잉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억제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있다. 그 프로그램은 억제하면서도 이 병이 비극이라는 것을 전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름답지만 비원에 가득차고 비장하다. 틀림없이 힘든 병이다. 그러나 증상의 측면에서, 진행은 되지만 보다 보통의 느낌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별도로 알게 된다면, 역시 왜 그럴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알고 있는 사람은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는데, 그 방송에서는 호흡기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것은 말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는 신체가 자력으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굴욕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존엄」이 침해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죽음 요리 중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신체기능, 지적능력의 쇠퇴를 죽음보다 중요하게 보는 감각・가치가 있다. 4월호에 소개한 키보키언의 자살기계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이었다.
 마츠다는 책 첫머리에 「이 책에서 말하는 안락사는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의 생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p.2)라 잘라 말하고 있다. 「장애인차별로 이어진다」라던가를 듣고 싶지 않은 변명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이를 먹은 자신의 기분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살아가는 게 좋지만 자신은, 이라면서 단지 자신에 대해서 썼던 것일 것이다. 마츠다 미치오는 정말 훌륭한 사람으로 권위주의와는 완전히 멀리 떨어진 사람이며, 다른 사람에게 상냥한 사람이었으나, 다만, 자기 자신에 한정한다면, 자신이 단지 쇠약해 가는 것이, 이제 때가 왔나, 라고 자신을 생각하게 한다. 틀림없이 나이를 먹어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매우 개인적 윤리, 가치라 여겨지는 것을 , 아 그렇군요, 라 말하고 끝내버리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안락사에 대한 의심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대충대충하지 않았던 마츠다의 논의를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주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점은 아닐까. 「정신적 고통」이라는 이유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장애인 반대운동이 신경쓰이는 것도 이러한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던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츠다와 같이 성실한 사상가의 발자취를 쫓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를 언급한 것은 야기 코스케(八木晃介)와 가와모토 타카시(川本隆史) 뿐이며, 가와모토는 「늙음과 죽음의 윤리 – 한 소아과의의 사색을 실마리로 하여」(『현대일본문화론9・윤리와 도덕』이와나미 서점, 1997)과, 그가 편저로 『함께 살아가다』수록의 「강의 7일간 – 공생이라는 것」. 후자에는 아주 짧은 언급밖에 없으나, 그 외에도 흥미로운 글들이 있으므로 이 책을 권한다.
 (관련정보는 홈페이지의「의료와 사회 북 가이드」, 또는 「사람」→「마츠다 미치오(松田道雄)」, 「50음순 색인」→「안락사」를 활용하세요. )

  [표시사진을 게재한 책]

松田 道雄 1997 『安楽に死にたい』,岩波書店、133p. 1200円 http://www.iwanami.co.jp/
川本 隆史 編 1998 『共に生きる』(岩波新・哲学講義6),岩波書店、243p. 2200円 http://www.iwanami.co.jp/


*작성:임덕영イム・ドクヨン
UP: 20140530
마츠다 미치오(松田 道雄)  ◇ALS=근위축성측색경화증  ◇안락사  ◇「死の決定について・1」  ◇「죽음의 결정에 대하여・2」  ◇「죽음의 결정에 대하여・3」  ◇의료와 사회 북 가이드  ◇의학서원 책에서  ◇신체×세계:관련서적  ◇서평・책 소개 by 다테이와(立岩)  ◇다테이와 신야  ◇다테이와 신야(立岩 真也)
TOP HOME (http://www.arsv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