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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모델(social model)

[japanese] 개인모델

last update:20110503
 cf.개인모델(individual model)

◆立岩 真也 2010/09- 「「사회모델」에 대해서」(초고)

◆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UPIAS) 1974

 「사회모델을 둘러싼 논의들을 소개하는 같은 문장으로서는 1974년 UPIAS의 방침(policy statement)의「목적」의 처음 부분에 인용되어 있다. 약간「푸른잔디회」풍으로 하자면と――그러나 역시 어디를 향해 화를 내고 있는지 그 분위기는 약간 다르지만—다음과 같은 느낌이 된다.
 「우리들은 계급, 부적절한 공적 또는 사적인 이동수단, 불편한 거주, 공장에서 엄격하게 결정된 근무규정(work routines), 최신 원조나 설비의 결여로 인해 독립화되고 배제된 사람들로서 우리들을 자각하고 있다. 」(Shakespeare[2010:266])」(立岩[201008]

◆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UPIAS) 1976 Fundamental Priciples of Disability http://www.leeds.ac.uk/disability-studies/archiveuk/archframe.htmhttp://www.leeds.ac.uk/disability-studies/archiveuk/finkelstein/UPIAS%20Principles%202.pdf

 「우리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신체장애인을 무력화 시키는 것은 사회이다. 디스어빌리티란 우리들이 사회에 완전참가로부터 부당하게 독립시키거나 배제시키는 것으로서, 우리들의 인페어먼트를 뛰어 넘어 외부로부터 억압받은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인페어먼트와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과의 구별이 불가결하며, 후자를 디스어빌리티라고 부른다. (UPIAS 1976:3-4;Oliver 1983:24 의해 인용4))。」(杉野[2007:117]에서 인용)

 「「장애」를 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2개의 차원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형성된 디스어빌리티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추궁해 가는 영국 장애학의 사회모델의 생각은 원래 1970년대에「격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연맹」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UPIAS)3)에 의해 채용된 장애의 정의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영국의 사회모델은 장애인운동실천 중에 형성된 개념이며, 그 취지는 장애인개인의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가져다 준 많은 문제를 사회문제로서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장애인의 의식과 비장애인사회전체의 의식으로 전환시켜 가는 것이다. 」(杉野[2007:117]*)
 「3) 1960년대 후반, 영국의 장애인 시설중에서도 「진보적」이라고 불리운「체셔홈」의 제1시설인「루 코드」에서 시설입소자들의 자치활동이 시설비판으로 전개되어, 결국에는 입소자들이 시설「자주관리」라고 하는사태「이상사태」로 발전되었다. 이 운동의 중심이 된 것은 입소자인 폴헌트였다. 그 후 체셔홈의 경영측에 의해 「정상화」가 되었으며, 헌트는 시설을 퇴소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1972년에 전국잡지인『가디안』의 투고란에 시설비판을 했으며, 시설에 입소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이용자주권운동의 결성을 호소했다. 이 헌트에 의한 호소에 호응한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 「격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연맹」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UPIAS)이다.(杉野昭博 2002a).」(杉野[2007:155]*)
 「4) UPIAS가 1976년에 발표한 역사적문서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장애의 기본원리』)는 올리버에 의해 편집된 버전이기는 하지만Oliver(1996a:21-28)가 그 일부를 다시 재인용했다. 풀텍스트는 리즈대학Centre for Disability Studies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할 수가 있다. 」(杉野[2007:155]*)
 「5)미국의 자립생활운동에 대해서도, 영국 장애학의 개인모델과 사회모델이 처럼 아주 비슷한「재활페러다임」과「자립생활페러다임」이라고 하는 이원적 분류가 실시되고 있다. 2개의 페러다임의 다른점은 문제의 소재를 장애인 개인에게 요구할 것인가, 환경요인에 요구할 것인가가 강조되고 있다(DeJong 1983:20-25). 또한 일본에서는 이러한 자립생활 페러다임이 1980년대에 유입되는 상황에서「변해야 할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ibid. :21-22)라고 하는 주장이 널리 퍼졌지만, 그것에 선행하는 1970년대에「푸른잔디회」등에 의해서 장애인 해방운동과 그 「비장애인문명」비판이 장애문제의 사회적책임 추구의 선구가 되고 있다. 」(杉野[2007:155]*)

「거의 같은 부분이 Shakespeare [2010:267]도 인용했으며, 리즈 대학•장애학 센터의 HP의 URL도 기록되어 있다. 단지 그곳에는 UPIAS [1975]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이 「원리」가 발표된 「장애연맹」 (Disability Alliance)과의 토론이 1975년에 개최된 것을 받아 들이고 있을 것이다. 「「장애의 기본원리」토론 문서는, 개량주의자의 「장애연맹」 (Disability Alliance)과의 불일치를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Shakespeare [2010:267])그리고 셰익스피어는 그 곳을 인용하고 있다. 」 立岩[201008]

*Davis, Lennard J. ed. 2010 The Disability Studies Reader, Third Edition, Routledge, 672p. ISBN-10: 0415873762 ISBN-13: 978-0415873765 [amazon][kinokuniya] ※ ds.
*Oliver, Michael 1983 Social Work with Disabled People, London : Macmillan.
*Oliver, Michael 1996a Understanding Disability : From Theory to Practice, London : Macmillan
杉野 昭博 20070620 『장애학――이론형성과 과정』,東京大学出版会,294p. ISBN-10: 4130511270 ISBN-13: 978-4130511278 3990 [amazon][kinokuniya] ※ ds
*Shakespeare, Tom 2010 "The Social Model of Disability", Davis ed.[2010:266-273]

◆Oliver, Michael 1990 The Politics of Disablement, Macmillan, 152p. ASIN: 0312046588 [amazon]=20060605 三島亜紀子・山岸倫子・山森亮・横須賀俊司 번역, 『장애의 정치――영국 장애학의 원점』 ,明石書店,276p. ASIN: 4750323381 2940 [amazon][kinokuniya]  ※ ds

「질문1
OPCS: 「당신의 상태가 나쁜 곳은 어디입니까? 」
올리버: 「사회의 상태가 나쁜 곳은 어디입니까? 」
질문 2
OPCS: 「어떤 병의 증상으로 인해 물건을 들거나, 잡거나, 비틀드는 것이 어렵습니까? 」
올리버: 「병, 주전자, 통과 같은 일용품의 어떠한 결함으로 물건을 들거나, 잡거나, 비트는 것이 어렵습니까? 」
질문 3
OPCS: 「주로 청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
올리버: 「사람들이 당신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
질문 4
OPCS: 「당신에게는 일상생활을 제약하는 것 같은 상처 자국, 결점, 결함이 있습니까? 」
올리버: 「모든 상처, 결점, 결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당신의 일상생활을 제약합니까? 」
질문5
OPCS:「장기간에 걸친 건강상의 문제 나 장애가 있기 때문에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습니까?」
올리버:「건강상의 문제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다는 지방교육의 방침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습니까?」
質問6
OPCS:「건강사의 문제 또는 장애 때문에 생각대로 외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까?」
올리버:「집 가까운곳에 외출을 어렵게 하는 지역의 환경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질문7
OPCS:「건강상의 문제 또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기는 것이 어렵습니까?」
올리버:「당신이 하고 싶은 외출을 방해하는 교통상의 금전상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질문8
OPCS:「당신의 건강상의 문제 또는 장애는 현재 어떠한 점에서 일에 영향을주고 있습니까?」
올리버:「물리적환경 또는 타자의 태도 때문에 직장에서 문제가 있습니까?」
질문9
OPCS:「건강상의 문제 또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당신을 지원하거나, 돌봐주는 친족 또는 그 외의 사람과 같이 생활할 필요가 있습니까?」
올리버:「 지역서비스가 빈약하기 때문에 적절한 레벨로 신변활동보조를 제공할 친족 또는 그 외의 사람들에게 의지할 필요가 있습니까? 」
질문10
OPCS:「건강상의 문제 또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현재 살고 있는 곳에 개조를 했습니까?」
オリバー:「집안 구조의 불편한 설계 때문에 당신의 욕구에 알 맞는 개조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

◆Morris, Jenny, 1992, "Personal and Political: a Feminist Perspective on Researching Physical Disability," Disability, Handicap and Society, 7(2): 157-66.(星加[2007:27, 63]에서 언급)

 「장애의 경험은 인체의 약함은 경험이다. 만약 이것을 부정한다면 우리들은 장애의 개인적인 경험이 고립적인 것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스스의 차이를 개인적이면서도 특이한 것으로서 경험하고, 개인적비난이나 책임이라는 감각을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이 된다.」(Morris[1992:164]호소카(星加)[2007:63]에서 인용 번역은 호소(星加))

Shakespeare, Tome 1992 "A Response to Liz Crow", Coalition, September:40-42

 「우리들 신체와 사회적인 상황과의 결부는 해체되어, 차별이나 편견과 같은 디스어빌리티의 참된 원인에 초점이 마추어 지고 있다.생물학에서 언급하고, 고통을 인정하고, 인페어먼트를 직시하는 것은, 결국 디스어빌리티란「사실은」 신체적인 제약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근거를 증폭시키는 억압의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Shakespeare[1992:40]、星加[2007:65]에서 인용、번역은 星加、그 외 星加[2007:70]에서 언급)

◆Oliver 1996a

 「… 개인화된, 의료적인 디스어빌리티관과 우리들은 결별해 왔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깊이 파고드는 세계에서 의료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디스어빌리티 경험의 일부는, 개인적인 individual이 되는 것으로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디스어빌리티에 대한 보다 적절한 사회의 societal반응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들 모두, 즉 정치가, 정책 입안자, 전문가, 관료,그리고 장애인도, 이것이 부분적으로 한정된 관점인 것을 이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우리들의 복잡하고 곤란한 과제는 이 과정이 디스어빌리티에 관한 세계관을 전환하는 변화의 하나인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Oliver 1996a: 128、星加[2007:]に引用)

 「이 (「사회 모델」인용자 주)는 디스어빌리티의 문제를…… 널리 사회안에 그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은 어떠한 종류이든 개인적 제약이 아니라, 사회적 편성에서 장애인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한 적절한 서비스와 충분한 보장을 제공하는 것에 관한 사회의 실패인 것이다」(Oliver 1996a: 32、星加[2007:]에 인용)

◆Hughes and Paterson 1997

 「Hughes 와 Paterson 은 「사회 모델에서 신체는 인페어먼트 또는 신체적 기능 부전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함의로는 순수하게 생물학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신체는 비역사적이다. 그것은 본질적이며, 시간을 가지지 않으며 존재론적인 기초이다. 따라서 인페어먼트는 디스어빌리티와 반대의 극적인 성질을 가지게 된다.」(Hughes and Paterson 1997: 328-9)라고 서술했다. 「사회모델」에 의해 디스어빌리티에는 사회적 배제가 인페어먼트는 생물학적 기능부전을 분배할 수 있어, 인페어먼트가 본질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인페어먼트가 본질적으로 정의되는 것을 거절하고, 인페어먼트의 사회적 구축성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사회적 문맥에서 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것일지에 관한 이론적 탐구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立岩 真也 1998/02/01 「1970년」,『현대사상』26-2(1998-2):216-233→立岩[2000]*
 *立岩 真也 2000 『약해지는 자유에』,青土社

 「1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라고 하는 파악

 최근 몇가지 주로 영국의「장애학」의 문헌을 볼 기회가 있었다.☆03。그 전체를 다 보았다고 말 할 작정은 아니며, 우선은 느낌을 말하면, 그곳에 쓰여진 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이미 이야기 되었던 왔던 것들이며, 생 각해왔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약 20년 전부터 그에 앞서 또는 조금 앞의 것을 문제제기 해온 사람들이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 아니며, 미국의 장애인운동에서 주장한 일부에 대해서도 느낀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먼저, 그 원래 중요한 것을 확인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인페어먼트(impairment)、디스어빌리티(disability)、핸디캪(handicap)이라고 하는 도식이 있다. 이 부분은 일단 좋은 번역어라지만「손상」「장애」「불이익」이라고 한다.☆04
 이것은 신체적인「손상」에 따라「장애」가 생긴、그 결과 사회적인「불리」가 생긴다는 순서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이것에 이의를 제창할 수 있다.「질병모델」「의료모델」에서「사회모델」로의 이행이라고 주장된다. 「손상」이「장애」를 만들어내는 것은(예를 들면「손이 없다」는 것으로「손이 움직이지 못한다」라는 것은)부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이것에 대해서「사회모델」을 주장하는 논자도 그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그런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손을 움직일 수가 없는」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불리하다)이 자체가 따라온 ――손이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못하는가라고 하는 것으로, 손이 있는가 없는가 또는 신경계에 손상이 있는가 없는가에 관련된 것이 있는 이상은――「손이 없는」「손의 근육이 축소하고 있는」다고 하는 자체가「사회적」문맥중에 처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얼굴의 어느쪽인가 근육을 잘 움직여 귀를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일정 수 있다. 다른 한쪽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들추어 내고, 주목 받는 것, 문제화시키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런 하찮은 것을 증거로 삼더라도 말하는 사람에 대하여, 「사회 모델파」는, 아니, 귀가 움직인다 /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찮은 것이며, 귀가 들리지 않다 / 들린다 는 것은 하찮지 않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것이다라고 말 할 것이다. 즉, 「손상」 「장애」가 「불리」가 되는 조건이 문제다라고 말한다. 무엇인가 도움이 된다 / 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은,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능력이 있는가 / 아닌가,그리고 그것에 관계되는 손상이 있는가 / 없는가가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확실히 손상 또 장애가 있다고 미리 말하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주목 받지 않은 손상은, 없는데도 마찬가지는 아닌가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손상」 (이 「손상」라고 드러나는 것)이 「사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가에 따라 규정된다고 하는 지적은 우선 옳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학이나 언어학의 견해에서는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당연한 것도 알아차리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도 언제까지라도 계속 말할 가치는 있다.
게다가 장애학은 인식론인 것 보다는 「실천적」인 것이였다. 처음부터 사회 운동적인 지향을 하고있었다. 이것은 「장애」와 「불리」의 사이를 절단하고, 내가한다 (해야 할것) 이 아니고, 여러분들(사회)가 해야 한다 (해야 할것)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서 연속하는 것,혹은 그 일부이다.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 (disabling society)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된다.

      [개인] I ~ D → H ← [사회]

 다리가 없기 때문에 다리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위로부터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재활은 어떻게 해서든「몸」이나 그 「개인」에 문제를 귀속시키려고 한다. 먼저 「신체」에 주목하려고 한다. 그것은 불쾌한 것이다. 그것으로 사회모델을 주장한다. 개인에게서 사회에 그 시점이나 역점을 이동시킨다. 도움을 빌리게 되면 된다. 그리고 내가 무리하는 것으로 도움을 빌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면, 후자로서도 좋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사회 측이 변하면, 개인에게 있는 손상, 장애(가 가지는 의미)는 엷어질 것이다.

 「걸을 수 없는 것은 휠체어를 사용하면 커버되고, 손을 사용해서 할 수 없는 것은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거의 대부분은 지장이 없다. 다만 휠체어로는 통로가 좁아서 통과할 수 없는 곳이나 계단이 있거나,또는 부탁하지 않아서 도움을 받지 못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것들은 나에 있어 지금의 사회에 「불편」혹은 「불리」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나도 포함)가 「장애」를 만들어 내는 나 (우리들)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키타(時田) [1988:1])

 물론 필자는 무엇인가「문헌」을 읽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생각한 것을 썼을 것이다. 지금까지 장애「학」으로서 정리한 단행서나 논문집이 출판되지는 않았다.(그것에 대한 해석은 생략)☆05하든지, 일본에서도 같은 인식은  나누어지고 있다.
 도움만 있다면「나는」、장애가 없는 사람과「같은 경우」「할 수 있는」. 예전에는 「내가 노력」해야 했지만 요즘은 그런 어두운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되면 그것을 「사회」에 맡긴다.
 단지 여기에 일본어 쪽이나 영어쪽의 용어법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외로 중요한 점이다. 도구를 사용하거나 혹은 사람의 손을 빌리거나 그 결과, 나의 신체는 그대로이며, 내가 일을 「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불이익」이 해소될 것인가, 「장애」가 해소된 것인가? WHO의 정의에서는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없는 (disable)혹은 할 수 없게 하게 하고 있는(disabled) 것 때문에, disability 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06. 일본어에서도 같다.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장애」가 제거되고 (취직할 수 없으며, 수입이 얻을 수 없는 「불이익」이 해소되었다)라고 말해도, 부자연스러운 말은 아니다. 그리고 단지 이 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음」있을 때에, 애초부터 나에게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의 손이나 어떠한 것이 개입존재하고 있을 때, 그 할 수 있었던 것 안(속)의 「내가 기여한 부분」은 얼마 정도인가? 「그런 시시한 것은 어떠 하든 좋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옳은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문제 삼는 장면은 실제로 있다. 이 도식은 그러한 장면이 사실 존재하는 것은 애매모호하게 하는 것으로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다테이와(立岩) [1998→2000])

「★03 Oliver[1990](長瀬[1996:47]가 일부를 소개)、Swain et al. eds.[1993]、Hales ed.[1996]등. 타른 영국의 운동사에서Campbell & Oliver[1996]、미국에서 출판된(미국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리더들에게Davis ed.[1997]. 양국에는 학회지도 있다.
★04 「「국제장애인의 해 행동계획」의 제62항에는「국제장애인의 해는 개인의 특질인 인페어먼트(impairment)와 그것에서 일어나는 기능적 지장인 디스어빌리티(disability), 그리고 디스어빌리티의 사회적결과인 핸디캪(handicap)사이에는 구별이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을 촉진해야 할 것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장애의 3개 레벨의 구체적인 내용은 세계보건기구(WHO)가 1980년에 발표된「국제장애인분류표」로 상세하게 지시되어, 우리나라의 관계자들에게도 커다란 인펙트를 전해 주었다. /impairment、disability、handicap의 번역어는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기능・형태장애」「능력장애」「사회적불리」인가.「기능장애」「능력저하」「사회적불리」의 조합이 잘 사용되고 있다.……/「국제장애분류시안」에서는……다음 처럼 정의되어 있다. /「기능장애란 심리적, 생리적, 해부적인 구조 또는 기능과 같은 어떠한 상실 또는 이상(異常 )이다. 」/「능력저하란 인간으로서 정상이라고 보여지는 방법이나 법위에서 활동해 가는 능력의(기능장애인에 기인하는)어떻 제한이나 결여이다.」/「사회적 불리란 기능장애나 기능저하의 결과로서 그 개인이 만들어낸 불이익이며, 그 개인에게 있어(연령, 성별, 사회문화적 인가에서 보는)정상적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제한받거나 방해하기도 하는 것이다.」(三ツ木[1997:25-26])〔이 분류(ICIDH=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y and Handicap)에는 본문에서도 그 일부로 기록한 것이 판단되어,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경위의 일부는 佐藤[1992][1998]등에 기입되어 있다. 〕
★05 石川・長瀬 편[1999]이「장애학」이라는 이름을 내건 최초의 책이 된다. 〔그 후, 長瀬・倉本 편[2000]. 연구회(동경, 오사카)의 예정등에 대해서는 홈 페이지의「장애학」.〕
★06 佐藤[1992]가 지적하는 것 처럼, 영국에서는 디스어빌리티가 인페어먼트의 의미로 디스어빌리티가 핸드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많다. 「disabling society」라고 하는 표현도 이것에 관련되어 있다. 덧붙이자면 핸디캪이라고 하는 단어는 거지에게「어떤 것을 요구한다」라고 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적어도 일부에서는 평판이 나쁘다.」(立岩[1998→2000]、〔〕는 다테이와(立岩)[2000]수록이 더해진것이다.)△

◆Barnes, Colin; Mercer, Geoffrey; Shakespeare, Tom 1999 Exploring Disability : A Sociological Introduction, Polity Press [amazon][kinokuniya]=20040331 杉野 昭博松波 메구미山下 幸子 번역,『디스어빌리티 스터디즈――영국의 장애학 개론』,明石書店,349p. ISBN:4-7503-1882-5 3800+ [amazon][kinokuniya] ※

제2장 디스어빌리티의 이해
4. 2개의 모델
 본적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지배적인 장애인의 개인모델을 탐구한다. 그리고 개인모델과 원래는 장애인활동가의 적은 집단에서 진행된 장애의 사회모델을 대비한다. 이 사회모델은 사회학적 퍼스펙티브(perspective)에서 착상을 직접적으로 채용하지 않았지만, 사회학적 상상력을 기본으로 하는 비판적인 어프로치를 채용하고 있다.

장애의 개인모델→개인모델
 […]

장애의 사회모델을 향해
 1970년대, 1980년대 사이에서 장애의 개인・의학모델에 대한 장애인활동가나 장애당사조직으로 부터의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장애의 사회적 어프로치로서 알려지게 되었지만 발전했을 때 영국의 장애인은 인페어먼트가 있는 사람을 무력화하는 것은 사회이며, 더욱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해결방법은 개인의 적응이나 재활이라고 하기 보다는, 물론 사회적인 변화로 향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한다. 개인적. 의학적 어프로치에 대한 사회모델의 대 갚음은 「디스어빌리티는 홍역이 아니다.」(Rioux & Bach, 1994)라고 하는 것이다.
 격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연맹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UPIAS)은 장애의 새로운 모델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선두에 서 있다.UPIAS의 성명서인『디스어빌리티의 기본원리』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UPIAS, 1976)에서、UPIAS는 디스어빌리티의 책임을 직접사회의 실패로 두었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신체적인 인페어먼트가 있는 사람들을 무력화하는 사회이다. 사회로부터 불필요하게 고립되고, 사회에 완전참가를 방해받음으로서 우리들은 인페어먼트에 더해진 디스어빌리티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장애인이란 사회안에서 억압된 집단이다.」(UPIAS, 1976: 14)。
 인페어먼트, 디스어빌리티, 핸디캪이라고 하는 3개의 밀접한 관계는 UPIAS가 제시한 모델에서는 부정되었다. 사회모델은 인페어먼트에 대해서 의학적정의를 거의 대부분 받고 있는 한편, 디스어빌리티의 의미를 다음과 함께 제시되었다.

・인페어먼트
손발의 일부 또는 전부의 결손 또는 손발의 결함이나 신체 조직 또는 기능의 결함.
・디스어빌리티
현상의 사회조직이 신체적 인페어먼트가 있는 사람들을 거의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활동의 메인스트림에 대한 참가로부터 그들을 베제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활동의 불이익이나 제약.(UPIAS, 1976: 3-4)

 장애인이나 장애당사자조직 사이의 그 후의 논의에서는 “신체적 인페어먼트”라고 하는 단어를 모든 인페어먼트(지각이나 지적 인페어먼트를 포함하는)도 디스어빌리티의 잠재적 범위에 포함하도록 개정되어 있다.
 인페어먼트가 개인의 특질로서 보여주는 한편, 디스어빌리티는 그렇지 않다. 디스어빌리티는 「인페어먼트를 가진 사람들과 그 이외의 사람들 사이의 억압적인 관계의 결과」(Finkelstein, 1980: 47)로서 설명되는 것이다. 일단 장애인으로 정의 되면, 그 개인은 스티그마가 붙여지게 된다. 예를 들면, 시각 도는 청각에 인페어먼트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또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것에 관한 사회적 기대가 그들의 자립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형식―― 즉 사회적 억압――은 보편적인 것이라는 가설 디스어빌리티의 문화적 역사적 다양성을 주장하는 사회어프로치에 의해 부정된다.
  동일하게, 사회 모델•어프로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OPCS의 장애조사에서 채용한 장애의 측정법는 상당한 개정이 필요 된다. 특히 디셔빌링한 (장애인을 무력화하는) “장벽이나 태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마이클•올리버는 1980년대의 OPCS조사의 측정에서 채용할 수 있었던 질문 항목을 새로 만드는 것에 의해, 조사자가 사회 모델을 채용하고 있으면, 아무리 장애에 대해서 다른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인가라는 것을 아래와 같이 내보이고 있다 (Oliver, 1990:7-8).
[…위로 인용…]
 이렇게, 사회 모델•어프로치는 외면적으로 만들어진 일련의 요인, 즉 장애인에게 부과된 사회참가의 기회를 제약하는 장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 때문에, 디스어빌리티의 측정에는 장애인이 경험한 신체적•사회적•경제적 장벽―― 즉 사회적 배제――의 요인이나 차별 금지 정책의 영향을 사정하는 방법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모델과는 대조적으로, 「개인적 비극이론은 디스어빌리티에 관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서, 더욱이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은 체이다.」 (Oliver, 1986:16).
 개인적 비극이론에 대한 비판을 진척시켜 가는 가운데에서, 장애당사자운동은 장애의 사회 모델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또한 우리들의 장애에 대한 이해를 근본으로부터 뒤집어 엎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표2-2을 참조). 사회 모델은 「디스어빌리티의 본질은 무엇인가」 「디스어빌리티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디스어빌리티를 경험하는 것인가」 (Oliver, 1996b:29-30)라고 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원래의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다른 대답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것에 대해 사회모델은 보다 포괄적인 디스어빌리티의 사회이론의 발전을 촉진시키게 된다. 즉, 「장애의 사회 모델은 디스어빌리티의 유물 사관과 같은 사회 이론과 동일한 것은 아니며,하물며 복지국가이론도 아니다」 (Oliver, 1996b:41)이다.
 물론, “유물사관”은 사회학자에 의해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이론적 설명의 대부분의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디스어빌리티의 사회학”은, 인페어먼트를 가진 사람들을 “사회가 무력화 한다”라고 하는 논의에 대해서 상세하게 탐구 해야 하는 것이다. 디스어빌리티의 사회이론 발전에 공헌하는 연구는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의료사회학이나, 특히 소위 “만성병과 장애” (Bury, 1997)에 관한 분석 등, 근접 영역에서의 연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동일하게, 사회 모델이 지적하는 “디셔에이빌링한 장벽”의 개념에 대해서, 더욱 포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 경우, 일상생활에서나 정부의 사회정책의 문맥ㅓ라도, 어쨌던,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따르는 과정과 구조에 대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지배 형식에 대해서 생각하면, 문화와 정치에 관련되는 복잡한 과제가 나온다. 예를 들면, 문화의 영역 지배의 근거지가 될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의한 저항과 도전의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 모델은 디스어빌리티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경험은 단순한 개인의 심리의 수준 또는 개인간의 관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가정 환경, 수입이나 재정지원, 교육, 고용, 주택, 이동, 건축 환경이라고 한, 광범위한 사회적•물질적 요인이나 조건의 안에서 디스어빌리티의 경험은 생각할 수 없으면 안된다. 또한, 장애인이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도 사회집단을 위한 지위라해도,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디스어빌리티의 경험이란 “현상적”로 일시적이다고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 때문에 개인의 디스어빌리티의 경험이란 그 사람의 한 생애에 개인사라고 하는 문맥에 대서는 그 사람의 사회관계나 생활사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의 장벽이나 차별적 태도로부터, 정부의 시책이나 원조 제도가 초래하는 영향까지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모델의 주장은 과장되어 서는 안된다.
「사회 모델은, 우리들 신체의 모든 기능 부전이 보조 도구 또는 적절한 디자인에 의해 보완되고, 그것에 의해 누구라도 1일 8시간의 노동을 한 후, 저녁에는 배드민턴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모델은, 가령 동작이나 지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권리가 있으며, 그 존엄이 지켜져야 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Vasey, 1992a:44)」

◆石川 准・長瀬 修 편 19990331 『장애학에의 초대――사회, 문화, 디스어빌리티』,明石書店,321p. ISBN:4-7503-1138-3 2940 [amazon][kinokuniya] ※ ds

 「디스어빌리티의 문제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앵인을 배제하는 사회에 있는 것을 제시한다. …종래의 개인모델, 의학모델로 부터의 탈각, 여기에 사회모델이 성립한다…」(『장애학에의 초대』p.17)

 「영국의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등이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발상은 일본 특히 1970년대이후 장애인 운동을 포함, 전세계의 장애인운동의 표본이 되었다. 개인의 신체와 그 결손에 다만 주목하고, 거기에서 생기게 하는 문제해결의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동시에, 치료하거나 훈련하는 의료•복지의 전문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개인 모델」 「의료 모델」로 바꾸고, 사회관계 안(속)에서 장애가 장애로 드러난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을 사회제도•사회관계의 변혁에서 추구한다. 장애를 가지고 사는 본인의 경험을 소중히 하고, 변혁에 대한 장애인 자신의 기여를 중시한다. 」

◆石川 准 2002 「디스어빌리티의 삭감, 인페어먼트의 변환」,石川・倉本 편[2002, 17-46]*(星加[2007:44, 52, 56, 67, 68, 90, 108, 318]에서 언급)
*石川 准・倉本 智明 편 20021031 『장애학의 주장』,明石書店, 294p. 2730 ISBN:4-7503-1635-0 [amazon][kinokuniya]  ※ ds

「만약 사회 모델이 인페어먼트의 문화로 변환――장애 전체가 아니다――을 인정하고, 문화 모델이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개념을 인정하고, 문화로 변환하는 대상을 인페어먼트――디스어빌리티 <0066 <도 포함시킨 장애 전체가 아니다――에 한정한다면, 사회 모델과 문화 모델과는 양립할 수 있다. 동시에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한 편으로는 특화 할 수도 있다. (石川 [2002:34], 星加 [2007:66-67]에서 인용)

◆立岩 真也 20021031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하지만・1」,石川准・倉本智明 편『장애학 주장』,明石書店,294p. 2730 ISBN:4-7503-1635-0 [amazon][kinokuniya] pp.47-87

 「9 보충1・「사회모델」의 의미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의료 모델」 「개인 모델」과 「사회 모델」을 어떻게 풀 수 있을 것인가, 왠만한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사회 모델의 주장이 의미가 있는 주장인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이 감안하고 있는 불편이나 불이익의 「원인」을 그 사람에게가 아니게 사회에 요구했기 때문에이다. 적어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의료 모델•개인 모델이 「걸을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갈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 모델은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업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대치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조건으로서는 어느 쪽도 그 나름대로 맞고 있다. 문제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22.
그 다음으로 무엇인가를 실현하는 (예를 들면 목적지까지 간다) 것이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사용할 것인가, 그 자체도 문제의 중심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3절에서도 말한 것 처럼, 신체를 고치는 것이라고 신체의 기능을 보충하는 것이라고는 연속적이어서, 이 사람에 있어서 어느 쪽이 좋을지도 통틀어서 말할 수 없다. 고치는 것과 보충하는 것은 어디가 다른가? 신체에 있는 것에 물리적으로 더하는 거 없고, 기능이 획득되면 그것은 나았다는 것이며, 어떤 것을 더욱 더해지게 되면 그것은 보충하게 되는 것인가? 이것에는 의치도 있고, 안경도 있다. 또한 인공와우로 들리게 된다. 뇌의 어딘가와 기계를 직결시켜, 그래서 「시각」을 얻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SF에는 그려졌어도,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문제가 안된 것이지만, 생각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으며, 현재의 기술로는 농담과 같은 것밖에 할 수 있어서는 없는 것이지만,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의 커다란 분기점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한 상태가 어떻게 도달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 두 모델의 유의미한 다름은 누가 어떤 의무를 질 것인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점이다. 즉 대립은「사유파」와「분배파」(立岩[2001-2002])와 대립하고 있다. 사회모델은 이것은 개인이 극복해야 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사회라고 하는 주장은 책임. 부담이 원체 개인에게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자명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久野 研二・中西 由起子 20041010 『재활국제협력입문』,三輪書店,251p.

 「장애의 사회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은 의학몬델이 심신의 기능적문제 측면을 중시하고 있다. 이모델은 「사회참가의 기회가 평등해서, 차별이 없을 것인가 아닌가」라고 하는 견해를 기초로 하는 것으로서, 「사회」 바로 그것을 보는 대상으로 하여,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의 구조나 제도, 사람들의 태도를 장애라고 보는, 불평등한 사회(장애가 있는 사회)을 평등한 사회(장애가 없는 사회)라고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모델은 장애를「심신기능에 장애를 가진 사람을 전혀 또는 거의 배려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회활동의 주류에서 그들을 배제하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조직에 따라 만들어 낸 불이익 또는 활동의 제약」이라고 정의한다. 즉 장애란 개인의 기능, 기능장애가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참가를 저해하는 사회의 장병이기 때문이다.」(p.72)

 본장에서는 디스어빌리티이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불이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를 검토한다. 제1절에서는 종래의「사회모델」의 이론구성에서는 장애인이 경험하는 불이익 특유한 것으로 동정할 수는 없으며, 결과적으로 이 해소의 주장의 이론적 타당성을 삭감시키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을 이어받아 제2절에서는 불이익에 대한 적절한 개념화를 실시하는 것을 통해서 불이익의 동저을 위한 논의의 전제를 준비함과 동시에 다음 단계의 질문를 도출한다.

Shakespeare, Tome 2006 "The Social Model of Disability," L. J. Davis ed, Disability Studies Reader 2nd edtion, Routledge: 197-204.

◆星加 良司 20070225 『장애란 무엇인가――디스어빌리티의 사회이론을 향해』,生活書院,360p. ISBN-10: 4903690040 ISBN-13: 978-4903690049 3150 [amazon][kinokuniya] ※ ds
 ※이 책의 페이지 안의堀田義太郎의 소개와 검토를 참조할 것.

  본장에서는 종래의 디스어빌리티에 관한 이론적 탐구에 의해, 무엇이 밝혀져, 무엇이 과제로 남겨져 있는 것일지에 대해서 개관한다. 장애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영역에서 행하여져 왔지만, 최근의 이론적 발전에 의해, 장애연구는 장애의 사회적 생성•구축의 과정에 착안하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장애연구의 이론적 전개의 의의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그 한계나 한층 더 과제에 대해서, 현실적 문제를 염두에 두어서 확인한다.

제1절 디스어빌리티 이론의 도달점

 본절에서는 종래의 디스어빌리티이론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검토한다. 먼저 디스어빌리티이론의 중요한 인식 시스템이 되어 있는「디스어빌리티의 사회모델」의 요점에 대해서 「개인모델」과의 대비를 교차로 확인한다. 그리고 그「사회모델」를 인식론으로서 명확하게 위치를 부여할 작업을 실시한다. 더욱이「사회모델」에 대해 실시한 비판과 그것에 대한「사회모델」쪽으로부터의 대답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을 통해서「사회모델」의 윤곽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검토를 한뒤에 종래의 디스어빌리티 이론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에 대해서 확인한다.

1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문제

 「개인모델」에서「사회모델」에
 장애학의 커다란 성과의 하나로「디스어빌리티의 사회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이하,「사회모델」)의 제기가 있다. 일부러 강조한다면, 그「사회모델」의 인식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는 가 어떤가가, 지금까지의(계속하고 있는 그 외의)장애연구와 장애학과의 분기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주1】。
 이「사회모델」은 장애의 문제란 먼저 장애인이 경험하는 사회적불리 이기 때문에 그 원인은 사회에 있다고 하는 장애인해방의 이론적 시스템이며, 종래「디스어빌리티의 개인모델individual model of disability」(이하,「개인모델」【주2】)에서 장애의 신체적/지적/정신적 기능부전의 위상을 더욱 만들어 내어, 그 극복이 장애인개인에게 귀속되어온 것에 대해서, 당사자로부터의 물음에 대한 주장을 반영한것이다. (Oliver 1990=2006, 1996a; 長瀬 1999; 倉本 2002). 이 장애를 둘러싼 페러다임시프트에 따라 종래개인의 기능적 특질에 기인하는「개인적 individual」인 문제로 취급해온 장애인문제는 사회적인 해결이 진행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그 발생이 사회원천을 가졌다는 의미로서, 지극히「사회적 social」인 것으로서 클로즈업되어온 것이다. 여기서는「사회모델」의 제기로 인해서 구동된 장애인식의 전환의 요점을 확인해보자. br> 「개인모델」에서「사회모델」에 대한 페러다임시프트의 의의를 단적으로 서술하며, 이것은 장애문제의 초점을 인페어먼트로부터 디스어빌리티에 이행시는 것에 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종래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은 신체적, 지적, 정신기능부전이며, 개인에게 속하는 것으로서 취급해왔다.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눈이 보이지 않은 것, 귀가 들리지 않는 것등으로부터 직접불이익이 생겨났다고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디스어빌리티의 문제란 이 대로 인페어먼트의 문제이며, 이러한 대처책은 먼저 제1의적으로는 이러한 기능부전을「치료」하고, 조금이라도 그 기능을 높이는 것으로서, 이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이러한 기능을 보충하기 위한 기법이나 행동을 장애인 본인의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에 있다.【주3】(Oliver 1990=2006). 이러한 디스어빌리티의 대처는 주로 의료나 교육의 장에서 만들어준 것으로서 장애연구도 이러한 영역 중에서만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인식의 시스템은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세계보건기간)가 제시한 1980년에 제시한ICIDH(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국제장애분류)에도 기본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하의 정의를 참조하고 싶다.

인페어먼트:심리학적, 생리학적, 해부학적인 구조나 기능의 어떤것의 상실이나 이상
디스어빌리티:(인페어먼트에 의해 초래되었다.)인간에 있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나 범위로 행위를 수행하는 능력의 어떠한 제약이나 결여
핸디캪:인페어먼트・디스어빌리티가 초래한 개개인에 의해(성/연령/사회적/문화적 제조건에 응한다)정상적인 역할수행을 제약, 저해하는 불 이익(WHO 1980: 27-29)

 여기서 먼저 확인해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본서에서 사용하는 인페어먼트/디스어빌리티의 개념은 서장에서도 서술한 것 처럼 기본적으로 영국 장애학의 시스템을 답습했으며, ICIDH의 분류란 용법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아주 크게 이야기 해 보자면, ICIDH에「인페어먼트」와「디스어빌리티」를 포괄한 것을 본서에서는 인페어먼트라고 부르며, ICIDH에서「핸디캪」을 디스어빌리티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면, ICIDH의 단계론적인 장애구조파악이,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 사이의 인과적연관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스어빌리티는 인페어먼트의 결과에서 생기는 것이며, 인페어먼트는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으로서 선진적인 지견을 뽑아 넣은 것이었지만,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개인적 요인에 환원해 가는 인식 틀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보면 진정으로 「개인모델」의 연장선위로 있다.

 이러한 디스어빌리티이해에 대해서 이의를 제창한 것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며, 물론 문제는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측에 있다고 주장을 전개했다.【주4】이다. . 손발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손발이 움직인지 못하면 곤란한 사회라고 하는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한 것이다.「사회모델」의 제창자인 올리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 (「사회 모델」, 인용자 주)은 디스어빌리티의 문제를…… 널리 사회 안에 그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은, 어떠한 종류이든 개인적 제약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성에서 장애인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한 적절한 서비스와 충분한 보장을 제공하는 것에 관한 사회의 실패다. (Oliver 1996a:32)

 여기서는 개인와 사회를 엄중히 구별한 뒤에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사회 츠에 요구하는 인식이 요구 되기 시작했다. 디스어빌리티는 개인의「제약」의 문제란 무관계에 사회에서 바은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에서 「사회모델」이 수용될 때도 받아들여져 예를 들면 구라모토(倉本)는「인페어먼트/디스어빌리티 즉 신체/사회라고 하는 이분법을 잡는 것으로, 문제의 소재를 명확화한 것이다. 문제되어야 할은 사회이며 신체가 아닌, 이것이 사회 모델이 단적인 주장이다」 (구라모토(倉本)2002:196)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이 입장에서 2001년에 ICIDH를 변경하는 형태로 채택된 WHO의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국제생활기능 분류)을 비판하고, 「ICF는 의료 모델과 사회 모델의 통합을 호소하고 있지만, 그러한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령, 환경인자를 도입하고, 각 요소간의 관계를 복선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불이익의 발생에 생물학적 /의학적인 의미로서 신체의 관여를 인정하는 한, 이것은 버젼의 의료 모델/개인 모델 밖에 없다」 (ibid. :203)라고도 주장되다. 【주5】.
여기서 디스어빌리티는 개인의 외부로서 사회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인식되어 있다. 「개인모델」이 사회 본연의 자세와는 무관계인 개인의 속성에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 반대로 「사회모델」은 개인의 속성이란 무관계 적인 사회원래의 자세쪽에서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추구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서,디스어빌리티가 장애인 본인이 안고 있는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을 도모한 것으로서, 실천적으로도 사회변혁에 대하여 일정한 유효성을 가진 것이다.

 불이익의 집합으로서 디스어빌리티
 전항에서 디스어빌리티이론의 변천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을 서술했다. 여기서는 원래 디스어빌리티개념이 어떠한 대상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사용되는 가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확인해 두자. 「개인모델」과 「사회모델」이란 디스어빌리티의 원인로에 대해서 선명한 대조를 실시하지만, 디스어빌리티를 불이익으로 보는 인식은 기본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예를 들면、ICIDH에 의한 정으로는「인페어먼트에 따라 초래되는 개개인에게 있어(성・연령・사회적・문화적 제조건에 응하는)정상적인 역할수행을 제약, 저해하는 불이익」(WHO 1980)이라고 하는 한편, 1982년에서 제시된 DPI(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장애인 인터네셔널)의 정의에서는「물리적・사회적장벽으로 초래한 자자와 대등한 레벨 공동체의 정상적인 생활에 참가하는 기회의 상실이나 제약」(DPI 1982)된다고 한다. 더욱이「사회모델」의 아이디어의 기초가 된【주 6】、UPIAS(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반격리신체장애인연맹)의 정의에서는「신체적인 인페어먼트를 가진 사람을 전혀 또는 거의 배려하지 않고, 따라서 사회활동의 주류로부터 그들을 배제하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적 편성에 따라 만들어 낸 불이익 또는 활동제약」(UPIAS 1976)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대표적인 세가지 디스어빌리티정의에 대해서는 각각, 「불이익」, 「상실이나 제약」 「불이익」 또는 「제약」이라고 하는 형태로서 디스어빌리티의 성질을 파악하고 있어, 이것들은 모두 디스어빌리티를 「부정적인 사회적 제 경험」 (Oliver 1996b)으로서 보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서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디스어빌리티에 대해서 본서에서는 「불이익disadvantage」로서의 디스어빌리티 이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것을 근거로 하면, 상반되는 장애관을 전제로 하고 있는 「개인모델」과 「사회 모델」의 쌍방에서 디스어빌리티를 부정적인 것으로서 보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 모델」은 디스어빌리티를 인페어먼트의 존재와 인과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에 대해서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인 인페어먼트를 항상 치료의 대상으로 삼고, 재활(rehabilitation)을 통한 기능회복을 향한 평소의 노력을 요청한다. 이것은 인페어먼트야 말로 장애문제의 본질로 보고, 개인의 신체에 개입해서 신체적인 차이를 해소,•교정 함으로서 그것을 소거하자로 하는 지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사회모델」에서는 장애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에게 인페어먼트가 있기 때문이 사회적으로 디스어빌리티가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사회 본연의 자세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사회의 본연의 자세, 다시 말해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disabling society」가 문제로 여기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스어빌리티를 부정적으로 의미를 붙이는 한 「개인 모델」과 「사회 모델」은 같은 지평을 공유하고 있다. 대조를 하는 것은 그 원인의 귀속처와 활동하는 초점이다. 이 콘트라스트는, 해소 노력을 누구에게 요구하는 것인가라고 하는 문제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디스어빌리티를 전부 해소할 수 없을 경우(통상 완전하게는 전부 해소할 수 없는 셈이지만)에, 부정성을 부여되는 주체를 지명하는 효과를 소유한다고 하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주7】. 그러나, 이러한 양자의 차이에 대해서 확인함과 동시에, 이면에서는 불이익으로서의 디스어빌리티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점도 간과해 서는 안된다.
더욱이 이 불이익은 사회의 여러 면에 존재하고, 여려면에서 발견하기 쉬운 것인 것을 확인해 두자.

사회모델에 의하면 디스어빌리티란 장애인에게 제한을 주는 모든 것이며, 개인적 편견이나社제도적 차별, 접근이 곤란한 공적인 건물이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시스템, 격리교육이나 배타적인 노동환경등을 포함하고 있다. (Oliver 1996a: 33)
 이렇게 디스어빌리티란 장애인이 사회적활동의 다양한 장면에서 경험하는 불이익의 하나하나가 포함하고 있다. 즉 장애인이 경험하는 모든 불이익을 디스어빌리티로 본뒤에, 이러한 개개인의 불이익에 대한 집합을 총체로 하여 디스어빌리티의 경험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또한 가끔 여기저기서 보여지는 「장벽barrier」로서의 디스어빌리티 이해도 불이익으로서의 디스어빌리티파악의 하나의 버전으로서 위치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장벽」이란 사회적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다. 이 「장벽」으로서의 디스어빌리티 이해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용개시〕디스어빌리티란 인위적, 부작위적인 사회의 장벽이며, 그것으로 인해 야기되는 기회의 상실이나 배제이며, 그러므로 디스어빌리티를 삭감하기 위한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은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disabling society」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이다. (이시카와(石川)2002b:26) 〔인용 종료〕

여기에서는 디스어빌리티의 설명으로서 「사회의 장벽」과 「그것으로 인해 야기되는 기회의 상실이나 배제」가 나란히 일치되고 있어, 「장벽」도 또는 디스어빌리티를 구성하는 요소로 여겨 진다. 또한, 먼저 인용한 올리버의 논의에서도 「디스어빌리티란 장애인에게 제한을 주는 모든 것이다」 (Oliver 1996a:33)로 여겨지고 있으며, 여기에서도 장애인에 대해서 영향을 주는 외면적인 요인이 디스어빌리티로서 다루어 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악은 기본적으로 DPI의 정의에 가까운 인식에 포함된 것으로서 이해에는 지장이 없다. 다시 말해, 사회에 존재하는「장벽」이 개인이 경험하는 불이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disability라고 하는 원어는 「할 수 없는 것」이나 「할 수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하는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념으로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외적인 요인인 「장벽」을 디스어빌리티에 포함시키는 용어법은 혼란을 초래한다. 「장벽」처럼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이 되는 외적요인에 대해서는 「할 수 없게 만드는 것(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디스에이블먼트disablement라고 하는 용어가 있어 (Oliver 1996a; 夏目)2000), 본서에서는 이 구별을 명확히 유지하고, 「장벽」을 불이익의 생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그 위치를 부여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보면, 「장벽」과 디스어빌리티를 보는 견해도 포함하여, 종래의 이해에 대해서는 불이익의 집합으로서 디스어빌리티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총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원인을 무엇에서 파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고 한들, 디스어빌리티를 불이익으로 보는 인식은 이미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이 역을 이용할 즈음이나, 쇼핑의 할 즈음, 그리고 취직의 할 즈음등, 많은 사회적 장면에서 불이익을 경험하게 되지만, 이러한 개별적 상황에서 불이익의 하나하나가 디스어빌리티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주8】

2 인식론으로서의「사호모델」

 원인과 귀속을 둘러싼 인식론적 전환
전항에서 원래의 디스어빌리티 이해에 있어서, 디스어빌리티를 불이익의 집합으로서 보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는 것을 서술했다. 그럿다면, 「사회 모델」은 이러한 디스어빌리티 이해 속에서, 어떤 수준에 대한 이론적 공헌을 할 수 되는 것인가? 여기서는 올리버의 논의를 단서로 이 점에 대해서 검토하자.
올리버는 디스어빌리티 이론의 사정을 존재론적 레벨, 인식론적 레벨, 경험적 레벨등 3가지로 나누어, 각각 중요한 질문은 디스어빌리티의 본질 nature이란 무엇인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논하고 있다. (Oliver 1996a)。 올리버에 의하면 이 3가지 레벨은 상호 영향관계를 가지면서 디스어빌리티의 전체성 totality없이 헤게모니를 형성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사회적 배제의 결과로서「디스어빌리티는 의료적 처치를 필요로 하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하는 특정의 형식에 대해서 생산되고 있다.」(ibid.: 127)하지만, 이 생산의 형식은 3가지 레벨의 사정이나 해석을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근대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병리학적이고 문제지향적」 (ibid. :129)이다라고 하는 존재론적인 상정은, 개입이나 치료 처치를 필요로 하는 것을 제개인 안(속)에서 찾아 내고자 하는 인식론적 관심과 직접 결부되며, 이런한 결과, 비장애인이나 장애인도 「개인이 이상하다」라고 하는 형태로로 디스어빌리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최근에서는 존재론적 수준에서「디스어빌리티의 문제지향적인 본질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병리라고 하는 상정을 부정하고」 (ibid. :129), 인식론적 수준에 서 「디스에이블한 장벽과 사회적 제약의 제거에 관한 사회의 실패」 (ibid. :129)에서 원인을 추구하는 전환이 생기고, 경험적 수준에서도「사회가 이상하다」라는 것으로서 디스어빌리티를 다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3가지의 수준 각각들이 디스어빌리티 이해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이 주장의 의의를 이해한 뒤에「디스어빌리티의 사회모델」의 제기가 어느 수준에서 최고의 충격을 주는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원인귀속을 둘러싼 인식론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것을 올리버 이론의 검토를 통해서 밝힌다. 아래의 부분은 올리버가 1980년대 실시한 OPCS(Office of Population Censuses and Surveys、국세 조사국. 1997년부터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국민통계국)의 조사항목에 대해서「사회모델」의 입장에서 제시한 대안 리스트의 일부이다. 각각의 항목에 대한 대비가 「개인모델」과「사회모델」과의 기본적인식의 차이를 제시하는 것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위에서 인용…]

 위에서 말한 것 처럼「개인모델」과「사회모델」의 디스어빌리티 인식을 나누는 것은 「어떠한 병상」때문일까「일용품의 어떤 것이 결함」인 것일까(질문2) 「청각에 문제가 있다」 때문인가 「사람들이 당신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가 없다」 때문인가 (질문3), 「손상•결손•결함」이 문제인가 「손상•결손•결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문제인가 (질문4), 「건강상의 문제나 장애」 때문에인가 「지방교육국의 방침」이나 「물리적 환경이나 타자의 태도」등 때문 인가 (질문 5, 8, 9, 10)라는 디스어빌리티를 야기시키고 있는 원인 수준의 문제인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어떤 것인 것일지에 관한 파악이나, 그것이 당사자에 있어 회피되어야 할 「문제적」인 사태라고 하는 인식은 기본적으로 모두 공유한 뒤에, 그 원인에 대한 기술을 수정하고, 또는 원인의 탐구 자체를 둘러싼 질문을 재 제시 함으로써, 「사회 모델」의 윤곽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은, 전항에서 확인한 디스어빌리티 이해의 내용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 불이익의 집합이라고 하는 장애인에게 있어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서, 디스어빌리티 개념으로 파악하는 곳까지 「개인 모델」적 디스어빌리티 이해와 「사회모델」적 디스어빌리티 이해와의 사이에서 큰 갭은 없는 것이지만, 그러한 현상이 무엇에 의해 야기되고 있는 것일지에 관한 원인론 수준의 인식에서, 양자는 결정적으로 관계를 끓는다고 하는 것이다. 확실히 올리버는, 디스어빌리티란 어떤 현상인가라고 하는 존재론 수준에서도 「사회 모델」은 병리적 상정으로 부터 탈각의 의의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Oliver 1996a). 또한, 장애인의 집합적 아이덴티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용개시〕디스어빌리티가 비극을 보는 것이라면, 장애인은 어떤 종류의 비극적인 환경의 희생자로 보게 될 것이다. 일이나(중략)대신 디스어빌리티가 사회적 억압으로 정의된다면, 장애인이 환경이 개별적인 희생자로서서가 아니라, 배려 없이 무지한 사회의 집합적인 희생자로 간주되게 되는 것은 논리가 필연적일 것이다. (Oliver 1993:62) 〔인용 종료〕

 다만, 병리적상정이나 디스어빌리티의 개별화의 논점은 어느것도,「개인모델」에 고유한に또는 필연적으로 부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개인적비극」으로 이야기 하더라도 이것이 병리적인 색채를 띄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있으며, 또한 병리적으로 다루어진 문제가 사회문제화하는 과정에서 집합적인 아이덴티티를 획득해 가는 것이기도 하다.【주9】。 즉, 일반적으로는 디스어빌리티인식에 그러한 상정이나 경향이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강 경험적 수준의 문제이며, 적어도 존재론적 수준에 있어서의 이론적인 문제로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고 있을 것인 것이다. 「사회 모델」로 야기된 주요한 인식상의 전환은, 역시 인식론적 수준의 원인 귀속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올리버 자신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사회적 제 경험이나 장애인이 생활을 영위하는 열악한 제 조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Oliver 1996b:32)이라고 해서, 인과성causality를 둘러싼 문제가 중요한 논점인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해소가능성에 의한 해석
이렇게 적어도 「사회모델」의 제창자인 올리버는, 이 주요한 이론적 공헌의 포인트는, 원인 귀속을 둘러싼 인식론적인 전환이었다라고 여겨지고 있다. 단, 이것과는 달리, 「사회 모델」의 의의나 이유에 대해서는 몇인가 다른 견해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해소 가능성에 대한 디스어빌리티를 특징 지으려고 하는 디스어빌리티 이해가 있다. 다시 말해, 장애에 휘둘리는 문제 중에 해소 가능한 불이익만이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논의이다.

 사회가 부담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는 거 같은 장애를 디셔빌리라고 불렸기 때문에 사회가 부담을 가지더라도 해결하지 않은 장애는 디스어빌리티는 아니다.(石川 2002b: 27)

이것에 의하면, 디스어빌리티란 「사회가 부담을 지면 해결 가능한 장애」이며, 그 이외는 디스어빌리티가 아니라고 한다. 「장애」라고 하는 개념의 의미 내용은 명확지 않지만, 그 중에서 디스어빌리티의 특정에 대해서는「해결」의 가능성이 디스어빌리티의 요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10】.
이것은 일견, 본서에서 열거한「해소 가능성 요구」라고 일치하는 견해인 것 처럼 보인다. 본서에서도 디스어빌리티를 해소가능성에 열린 것으로 제시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로서 얻을 수 있는 디스어빌리티 개념이 다루는 범위는 해소 가능한 것으로서 한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먼저, 디스어빌리티 개념이 논리적인 해소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과, 현실에 존재하는 디스어빌리티가 사회적으로 해소 가능하다고 하는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본서의 입장에는 적절 한 디스어빌리티 개념에 의해 파악되었지만, 논리적으로 해소 가능한 것은 보증되게 되지만, 그것은 그 디스어빌리티 현행의 사회에서 즉시 해소 가능한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대하고, 이시카와(石川)의 이해에 근거하면, 정의상, 어떤 사회에서 디스어빌리티로 파악되는 것은 모두, 그 「사회가 부담을 지는것」에 의해 해소 가능한 것이라고 하게 된다.
이렇게 디스어빌리티/인페어먼트의 분석적인 구별을 현실 사회에서 해소 가능성에 환원해버리면, 예를 들면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정보처리환경이 극적으로 개선하기 이전에, 시각장애인이 어느 정도 정보처리에 곤란 안고 있으며, 그 결과 사회적 활동에 대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디스어빌리티와 디스어빌리티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며, 그 구분은 기술수준에 깊이 의존하고 변경해버리는 것이다. 더 이야기를 하자면, 예를 들면「장애를 보충」하는 기술의 수준이 다른 사회에서는 디스어빌리티 수준의 다름을 문제화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고 하는 의문도 있다. 이 시스템으로는 현행의 기술수준에서「해결」하는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해결」하지 않은 부분만이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것이 되지만, 그것으로는 기술수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회에 비교해서 보다 심각한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는 적어도 디스어빌리티 이론 내부에서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에 따라「할 수 없었던」을「할 수 있」게 되는 사태를 디스어빌리티의「소멸」이나「해결」로 기술하는 것이야 말로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된다.【주11】. 이것은 당사자에게 있어 불이익의 정위로서 디스어빌리티를 이해하려고 하는 입장에서부터는 난점이 된다.
더욱 논의를 먼저해보면, 본서에서 디스어빌리티의 개념화에 관한「해소 가능성 요구」는 반드시라도 불이익의 해소 가능성에 환원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제시될 예정이며 (본서 제3장), 그 의미라도 디스어빌리티를 불이익의 집합으로서 파악한 뒤에 그것들의 불이익의 해소 가능성을 정의에게 포함하는 형태로서 디스어빌리티를 특별히 정려고 하는 논의란 일선을 긋는 것이 될 것이다.
 이상의 검토에 의해 나타내진 것 같이, 적어도 현실의 사회의 해소 가능성에 의해를 특별히 정하자로 하는 논의는, 반드시 적당하지 않다. 그것은, 현실의 사회에 있어서 해소가능한 것밖에로서 파악할 수 없고, 불이익의 경험과의 갭이 생긴다고 하는 난점을 포함하고 있다. 이 것을 근거로 하고, 본서의 틀이, 해소 가능성에 의해를 특별히 정하는 것으로서 「사회 모델」을 잡는 논의에는 커밋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해 둔다.
 이상의 검토에서 나타는 것 처럼, 적어도 현실 사회의 해소가능성에 따라 디스어빌리티를 특정지으려고 하는 논의는 반드시 적당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현실사회에서 해소 가능한 것만이 디스어빌리티로서 파악하지 못하고, 불이익 경험과의 갶이 생기는 난점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포함하여, 본서의 시스템이 해소 가능한 것에 따라 디스어빌리티를 특정하려고 하는 것으로서「사회모델」을 보는 논의는 커밋트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보자.

 귀책(帰責)성에 의한 해석
 그 외에 디스어빌리티의 해소책임의 귀속처에 따라「사회모델」의 의의를 설명하려고 하는 논의도 있다. 이하의 주장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0054<

사회 모델의 주장이 의미가 있는 주장인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이 피해를 받고 있는 불편이나 불이익의 「원인」을 그 사람에게가 아닌 사회에 요구했기 때문에, 인것은 아니다. (중략)핵심적인 문제, 큰 분기점은 어디지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상태가 어떻게 달성 되어야 할지에 있다. 이 두 모델의 유의미한 차이는 누가 의무를 가질것인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점이 있다. (다테이와(立岩)2002:69-71)

 이것은 디스어빌리티 해소의 방법에 대해서 규범적인 합의를 읽어내는 이해를 제시한 것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전단계에서는「사회모델」의 요체는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둘러싼 인식론적인 주제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대신 디스어빌리티의 해소에 따른 부담을 누구에게 의무화시킬 것인가가「핵심적인 문제가 커다란 분기점」이라고 한다.
이 주장을 받아들여 인식해 두고 싶은 것은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특정하는 것과, 그 해소의 방법을 특정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면 B에 의해 금전을 도둑 맞은 A에게 있어, 경제적손실이 반드시 B로 부터의 변제 받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C나 D의 기여에 의해서도 회복되는 것이나 타자의 상실에 의해서 소실해 버린 자기 사고의 기록 테이터는 적어도 자기의 노력에 의해서만 회복할 수 없는 것을 상기시킨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이 개인에게 귀속시킬지, 사회에 귀속시킬지, 그 해소를 사회에 귀책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가능하며, 전혀 같은 것으로서 그것이 개인에게 귀속시킬 가능성도 배제시키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다테이와가 이야기 하는 것은「개인모델」이 디셔빌<0055<리티의 해소를 위한 부담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인 것에 대해서,「사회모델」은 그 책임을 사회에 물었다는 점이야 말로 중요한 인식상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취지로서 石川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사회모델은 사회가 장애를 보충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며, 사회가 보충해야 할 장애의 측면이나 범위를 디스어빌리티라고 부르며, 보충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페어먼트로 한다.(石川 2002b: 33)

 여기서도「사회모델은」은「장애를 보충할 책임을 져야 함」주체로서 사회를 명시하는 것으로 보며, 해소책임의 귀속처을 특별히 정한다는 점에서「사회모델」의 특징이 파약되고 있다.【주12】。
 이러한「사회모델」이해는 그 실천적의의에 착목하는 것으로서 일정한 타당성이 있다. 「사회모델」은 제1의적으로 디스어빌리티 인식 방법에 관해서 이론적 수준으로 제기 되었지만, 그것이 장애인운동 당사자의 실천적인 필요로부터 도출된 것이며, 그 후 운동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타당성을 확보하는 도구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고 하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사회모델」에는 이론적의의와 동시에 실천적의의가 있다. 이 점에 한해서는 책임귀속을 둘러싼 전환은 확실히 중요하며, 적어도「사회모델」의 레토리칼(rhetorical)의 효과로서 그것은 큰 특징으로 있다고 말할 수 있자.
 다만 책임귀속에 의한 「사회모델」의 해석에는 몇가지의 곤란이 있다. 첫번째는 적어도 <0056<디스어빌리티 인식에 관한 이론적 수준으로「사회모델」하을 경우, 책임귀속에 의한 해석이나 다소 기묘한 구조가 되어 있다.「사회가 보충해야 할 장애 측면이나 범위를 디스어빌리티라고 부른다」(ibid.)그렇게 부른다면, 무엇에 대해 사회가 해소책임을 가질 것인가가 특정지어지지 않으면, 디스어빌리티를 특정하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특별히 정하는 기준은 준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이것을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현상의 특유성에 언급하지 않고 특별히 정할 수 있을 지 없을 지가 의심스럽다. 본서 제3장 제1절에서의 논의를 다소 먼저 해 두면, 일반적인 책임귀속의 구분을 적용 함으로서 현상을 충분히 초점화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특유한 사회 현상으로서의 디스어빌리티를 주제화할 이유가 있다), 귀책되어야 할 문제의 특정화 작업 그 자체가 디스어빌리티의 인식론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귀책성에 의한 해석에 대해서는 2차적 또는 부수적인 위치에 처해 있는 사회가 해소책임을 져야 하는 불이익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 자체가, 오히려 디스어빌리티 인식에 대한 일차적인 회답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그 의미로 장황한 이론구성을 취하게 된다.
제2로, 책임귀속에 의한 디스어빌리티의 특정화는 「사회 모델」의 제기에 즈음하여 초점이 지명 당한 문제와, 완전히 겹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디스어빌리티 인식이「개인 모델」로 비판될때의 포인트에 대해서, 지금 한번 더 확인해 보자. 「개인 모델」에 대한 비판의 중요한 포인트가 개인의 신체에 개입하여, 인페어먼트의 해소를 목표로 하는 의료적인 처치를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보아 왔다. (본절1). 그곳에서는 의사등 전문가 <0057 <가 장애인을 의료가 대상으로 삼아, 「비장애」 「정상」에 가까이 하고자 하는 자장 속에서 장애인을 붙들어 묶어 둔것이 비판되어, 그러한 사회의 「의료화medicalization」 (Illich 1976=1979) 안에서 장애인이 수동적인 서비스의 무력화되어 가는 것이 고발되었다.
 또한 올리버는「개인모델」적인 디스어빌리티 이해의 문제성에 대해서 이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정은 디스어빌리티란 건강의 관점에서는 병리이며, 복지의 사회적인 social문제라고 하는 것 이였다. 대치나 치료는 병리나 문제에 대한 적절한 사회의 societal반응인 것이다. (Oliver 1996a: 129)

 이것에 의하면 적어도 장애가 의학적, 사회적으로 문제화된 이후,「개인모델」에서도 사회에서도 사회에 의한 움직임이 무시된 것은 아니라 차라리「대치」나「치료」라고 하는 형태가 적극적으로 실시해왔다. 진정으로 디스어빌리티의 문제는 의료를 비롯한 전문가의 컨트롤의 대상으로 삼아 「사회문제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한해서는 「개인 모델」대해서 디스어빌리티의 해소책임이 개인에게만 귀속시켰다고 하는 이해는 정확하지 않다. 그렇지 않고, 누구에 의해 해소되어야 할까라고 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 것인가가 초점화된 것이 아니었는가? 이하에서 더욱 서술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0058 <

  즉, 외과수술을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함에는 틀림 없지만, 그 이상으로 어떻게 하면 장애인이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인지를 생각하는 쪽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게 되어 온 것입니다. 나 자신, 지금은 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후츠카이치(二日市)2001:180)


여기에서 「외과수술」의 의의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지만, 이것은 「외과수술」이 개인의 손에 의해 행해지는 것고, 비용부담이 개인에 부과되기 때문도 아닐 것이다. 또, 「외과수술」에 따르는 재활(rehabilitation) 과정에서 개인의 노력이 과도 하게 요청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반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요한 이유도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외과수술」이 완전히 사회적인 책임에 의해서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것을 반드시라도 제일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는 인식은 아닌것일까? 반대로 말하면, 「어떻게 하면 장애인이 사회 안(속)에서 장애를 가진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할때, 그 때문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노력을 배타적으로 제외하는 의도는 반드시 없을 것이다.
이상으로 부터 「사회 모델」의 책임귀속에 의한 해석은, 그 실천적 효과에서 착안했을 경우 핵심을 찌른 것이지만 디스어빌리티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인식론적인 질문에 대한 회답으로서 반드시 적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2장• 제3장으로 논한 것 처럼, 디스어빌리티의 특정에 해당 <0059 <하는 규범적인 문제에 대한 어프로치가 필요한 것은 이 해석에서 시사되고 있으며, 그 점은 중요한 착안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주13】.

 인식론상의 특징
 이상의 논의로부터「사회모델」의 제기에 의해 디스어빌리티이론에 인식론상의 커다란 전환이 생긴것, 그 전환에 대해서 초점화된 이론적인 쟁점으로서는 적어도 원인귀속, 해소가능성, 책임귀속을 둘러싼 해석이 제충된 것이 인식되었다. 이미 지적한 것 처럼, 이 안에서 인식론으로서「사회모델」의 일반적인 해석이 된 것은 원인귀속을 둘러싼 것이며, 여기에서는 이러한「사회모델」이해에 포함된 인식론상의 특징에 대해서 확인해두자.
 이러한 중요한 포인트는 디스어빌리티는 기술적으로 특정가능하다고 하는 상정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점이다. 먼저 원인귀속에 의한 「사회모델」의 해석을 사회에 원인을 귀속시키기 쉬울 거 같은 불이익을 디스어빌리티로 파악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하게 되면, 디스어빌리티의 특정이라고 하는 주제는 불이익 원인의 특정이라고 하는 주제를 바꾸어 읽어내는 것이 되며, 이것은 「과학적」인 수속으로 인해, 「가치중립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서 제시하게 된다. 물론 원인에 대한「과학적」인 탐구는 사회현상의 생성에 관련된 무수한 요소속에서 특정한 사각를 기본으로 한 특정요소를 유출하고, 그러한 인과적관련성을 특정한다고 하는 작업에 대해서,「중립적」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러한 「과학적」인 수속에 대해 요구되는 한 <0060<「기술적(記述的)」인 분석에 따라 디스어빌리티의 특정이 가능하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또한 원인귀속에 의한「사회모델」이해에 대해서 디스어빌리티를 특정하는 이론적기준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의 불이익 원인의 귀속처를 즉정하는 시스템이라고 이해할 경우, 그 원인 귀속을 모두 사회 측에 두는 것은 단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만약 그것이 「정당한」절차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임의의 불이익이 이미 이러한 성격을 가진것으로서 선택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타당성 일 것이다. 그 때 이번은 그곳에 블랙박스안에 있던 디스어빌리티의 특정 단계가 초점이 될 것이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주제적으로 언급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특정하게 사용되는 기준이 예견된것으로 전해지는 것과 같은 논리구성을 채용하는 것으로서 디스어빌리티의「기술적」이고 특정적이라고 하는 상정은 유지되어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러한 디스어빌리티의「기술적」인 특정의 상정은 해소가능성에 의한 불이익과의 구별이 얼마나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반드시라도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양자를 이해하는 것은「가능성」의 유무라고 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그 변별은「기술적」인 분석으로 인해 실시된다고 하는 상정이 있다고 하는 생각되어 질 것이다. 해소가능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변혁」의 대상을 어떠한 범위에 설정하는 가에 대한 조건의 특정문제를 빼보면,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란 독립적으로 논리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0061<
 책임귀속에 의한「사회모델」의 해석은 반드시 이러한 상정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점에서 특질적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전항에서 지적한 것 처럼, 이해석은 인식론적인 수준으로 디스어빌리티를 특정하는 기준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이 점에서 인식론으로서의「사회모델」이해로서는 완결된 시스템을 제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 해석의 위치에 대해서는 그 평가를 보유하고, 종래의「사회모델」이해의 특징으로서 디스어빌리티의 기술적인 특정, 이라고 하는 상정을 유출하고 싶다.

3 「사회모델」에 대한 비판과 응답

 여기에서는「사회모델」에 대해서 장애학의 영역중에서 어떤 것들이 이야기 되어져 왔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몇가지 패턴의「사회모델」비판과 그것에 대한 응답/반비판으로 나누어 정리하여, 그 성과를 인식해 보자. 다만 여기에서 다루는 논의는 인식론으로서의「사회모델」을 둘러싼 인페어먼트의 위치부여를 초점으로 해서 한정하고 있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주14】。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학의 제2세대의 논의를 정리하면, 이 초점은 인페어먼트에 있는 부정성에 착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항에서 논의되어 확인한 것 처럼「사회모델」은 디스어빌리티의 부정성을 공유한 뒤에, 그 원인을 사회에 요구함과 동시에 인페어먼트에 대해서 종래에 부여해온 부정성을 탈색하려고 해왔다. 이것에 대해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2세대의 논자들은 부정적인 경험으로서 인페어먼트의 위상에 다시한번 초점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0062<
모리스는「사회모델」이 모든 신체적인 차이나 제약가 사회적으로 만들어 졌다고 보고비판한다. 환경적 장벽이나 사회적 태도가 디스어빌리티 경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그것이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과 지시하는 것은 신체적, 지적제약, 병, 죽음의 공포라고 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다.」(Morris 1991: 10)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크로우도「사회모델」에 의한 디스어빌리티의 초점화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페어먼트의 경험이 과도하게 경시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반성적인 눈길을 둔다. 장애 경험의 복잡함을 배려하지 않은 운동에 대해서, 인페어먼트는 무관계이며, 중립적이며, 긍정적인 것으로 표상되어 왔지만, 그곳에는 굉장히 위화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Crow 1996). 이러한 그녀들의 비판은 때론 부정적이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사회모델」은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으로 향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사회모델」에 의한 인페어먼트의 무시는 장애인에 대해서 부정적, 억압적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Morris 1992: 164→인용끝)<0063<

「개인적인 경험」로서 장애의 문제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인 영역에서 주제화되지 않으면, 그 부정성은 「개인적 비난이나 책임」으로 경험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디스어빌리티 경험과 동일하게 인페어먼트 경험에 대해서도 사회적 위치 부여가 행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이론적 동기에서 이루어진다. 이 종류의 논의에는「사회 모델」의 확장을 도모하는 논의 【주15】 (Hughes and Paterson 1997)에서 그 지향성을 읽어낼 수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사회모델」논자들의 응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올리버는 스스로의 논리에 주관적 개인저차원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대해서 대답을 하는 중에 「사회모델」의 의의를 「의료적 또는 다른 전문적인 대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집합적인 행위에 의해 변화시키기 위한 이슈를 동정하고 제시하는 블렉 스티그마의 시도」(Oliver 1996a: 38)인 점을 요구하고, 의연하게 디스어빌리티를 개별적으로 individual 개인적인personal문제로 보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정치적인 대신에 개인적인 것이라고 강조할 위험인 것이다.」(ibid.: 3)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사회모델」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장애인이 직면하는 다양한 억압경험을 문제삼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비판(Morris 1991; Hill 1992; Hearn 1991)에 대해서는 이러한 비판의 타당성을 인식한 뒤에 디스어빌리티 이론은 지금도 발전도상이라고 하는 소극적인 변명을 하고 있다.【주16】(Oliver 1996a: 39)。 또한 라에는「사회모델」은 인페어먼트을 위한 모든 장애인에 관련된 것이 되는 부정의를 내보이는 것이며, 장애인은 그것에 의해 사회변혁을 위해 싸우는 도구를 손에 넣고, 특정<0064<의 인페어먼트에 관련된 개인적인 욕구는 만족시키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의하면「사회모델」은 모리스가 말한 것 처럼「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 논의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적 영역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되었다. (Rae 1996)。
또한 반스는 「사회모델」이 인페어먼트를 포섭하는 틀을 충분히 할 수 없는 것 등에 향할 수 있었던 비판에 대하여, 그것들의 대부분이 오해에 근거한 「신화」라고 해서 재반론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사회모델」의 초점은「장애인을 사회의 메인스트림으로부터 배제하고 있는 환경적, 사회적 장벽」이며, 「사회에 의한 장애인의 욕구에 대한 대응의 실패」에 대해서 문제화 하고 있는 것이며, 장벽의 제거로 인해 인페어먼트에서 오는 문제의 모든 것을 해소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페어먼트의 경험은 고유이며, 다양한 것이기 때문에 인페어먼트를「사회모델」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지적된다. (Barnes 1996). 더욱 쉐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Shakespeare 1992: 40、인용 끝)<0065<

 즉 올리버 처럼 이론을 가진 실천적이고 performative적인 효과를 고려하여, 인페어먼트에 대한 언급을 전략적으로 회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의 신체와의 결부를 시키지 않은 것으로서 사회적 요인을「디스어빌리티의 진실한 원인」이라고 보는 인식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신체적 제약」으로서의 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가 인식론적으로 결부되기 쉬운가 아닌가에 대한 논점은 일부러 주제화 하지 않고「개인모델」적인 인식 시스템에 대한 회복의 위험성을 회피한다고 하는 실천적인 동기에 디스어빌리티의 인식론으로 종속시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주17】. 또한「사회모델」의 평가를 둘러싼 장애인내부의 대립은 상대적으로는 마이너스적인 점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보다도 디스어빌리티에 대한 사회적분석을 촉진하는 것에 우선순위priority을 두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Shakespeare and Watson 1997)。
 이렇게「사회모델」 측의 응답은 주로 인페어먼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은 이론의 사정이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며, 인페어먼트 경험을 포함한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이 디스어빌리티와 어떻게 관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을 깊이 논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의 관계가 주제화되는 경우이더라도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상호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에 멈추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만약 사회모델이 인페어먼트 문화에 대한 전환――장애전체는 아니다――을 인정하고, 문화 모델이 디스어빌리티라는 개념을 인정하고, 문화에 변환하는 대상을 인페어먼트――디스어빌<0066<리티도 포함한 장애전체인 것은 아니다――에 한정한다면, 사회모델과 문화 모델은 양립하기 쉽다. 동시에 주장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것이며, 한쪽은 특화할 수도 있다. (石川 2002b: 34)

 즉 디스어빌리티와 인페어먼트란 상호 독립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 방향을 추상하고, (혹은 취급하는 것을 유보) 다른 한편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예를 들면 크로우는 디스어빌리티와 인페어먼트의 상호작용을 지적하고, 인페어먼트는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이지는 않았지만,「특정 억압의 생물학적 전제조건precondition」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row 1992). 그러나, 이 논의 자체는 충분히 전개되지 못했으며,「사회 모델」측에서도 유효한 회답은 제시되지 않았다.
 결국, 인페어먼트의 위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것은「사회모델」을 둘러싼 논쟁은 논의의 사정 문제로 회수되어, 그 결과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와의 관련 방법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전개 되지 않았으며, 인페어먼트의 고유성・다양성에 기인하는 디스어빌리티의 다양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논점도 방치되었다라고도 말 할 수 있다.

4 디스어빌리티 이해의 기본적 전제

  본절을 통해서 현행 디스어빌리티 이론의 도달점이 개관되었다. 이것은「사회모델」로 개괄되는 디스어빌리티 인식의 틀을 기초에 전개해 왔기 때문에, 사회적 불이익을 장애 문제의 핵심에 그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본항에서는 이 「사회모델」적 디스어빌리티 이해가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전제에 대해서, 확인해 두고자 한다.
첫번째로 디스어빌리티의 비문맥적 특정이라고 하는 전제가 있다. 디스어빌리티를 구성하는 불이익은 그것이 해당 개인의 생에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문맥이란 독립적으로 개개인의 사회적 장면에 조준함으로서 특정가능하다고 이해 받고 있는 것이다. 식사 등 매일 매일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수행이 곤란한 상태에 있는 것, 외출시 역을 이용할 때 곤란을 경험하는 것, 고용할때 불리한 취급을 받는 등. 각각의 사회적 장면에서 경험된 불이익의 하나하나가 디스어빌리티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스어빌리티의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개개인의 사회적장면에 처해 있는 문맥과는 관계가 없으며, 이러한 사회적 장면에서 하나하나의 불이익으리 부당성을 고발하기도 하고 그러한 극복이 요구되어지며, 이러한 개개인의 불리한 해소는 무전제로 「디스어빌리티의 삭감」(石川 2002b)으로 이해된다.
두번째로 디스어빌리티의 기술적 특정 이라는 전제가 있다. 이것은 원인귀속이나 해소가능성을 기본으로 하는 디스어빌리티 이해에 대해서 현저하지만, 무엇이 디스어빌리티인가에 대한 것인가는 일정한 수준을 거친「기술적」인 분석에 의해 고정된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전제를 근거로 하는 디스어빌리티의 이론은 일견 「가치중립적」으로「부당」한 디스어빌리티 현상을 특별히 정할 수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누가 보더라도「부당」한 것 같은 현상으로서 디스어빌리티를 기술하는 것이 가능한 것 처럼 보인다. 다만 제2장에서 논한 것 처럼, 이 배경에는 규범적인 판단이 잠재하고 있어, 사실은 이러한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종래의「사회모델」이해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디스어빌리티의 기술적 특정이라는 전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더욱이 약간의 논의를 먼저 다루어 진다면「기술적」인 디스어빌리티의 동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떤 형성을 불이익으로 정의하기 위한 암묵의 기준을 아프리오리에서 설정하는 인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개인은 A가「일할 수 없다」라고 하는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 할 때이러한 불이익은 개인 A가 원래 발휘할 것의 능력으로 부터의 편차라고 의미의 「제약」으로 다루었으며, 이 관점으로부터 불이익으로 특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사회의 본연의 자세나 그것을 기술해 평가하는 인식 틀의 본연의 자세와는 독립으로 상정 가능한, 「개인의 요구」의 충족이, 어떠한 요인에 의해 방해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이 「사회 모델」의 기본적인 구도다. 올리버나 반스의 「사회에 의한 장애인의 요구에의 대응의 실패」라고 한 표현에, 이 인식이 나타나 있다. 이 때, 불이익의 동(同)정에 즈음하여 사회라고 하는 계기는 기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주18】.
 세번째로 디스어빌리티에 대한 2원론적 해석의 도식이라고 하는 전제가 있다. 이것은 원인귀속에 의한「사회모델」이해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은 개인의 내재적인 것인지 외재적인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 디스어빌리티의 측에 귀속한 점이「사회모델」의 중요한 성과라고 한다. 이러한 상호배타적인 것으로서 개인과 사회에 위치를 부여한 뒤에, 그 어떤 것에 대한 원인을 귀속하려고 하는 인식의 구도가 「개인모델」에서「사회모델」에 대한 페러다임 시프트의 전제를 하지 않으며,「사회모델」적인 디스어빌리티 인식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일정한 회답이 제시된 이후에도, 그 틀을 넘어선 토론은 생겨나지 않았다【주19】또한 책임귀속에 의한「사회모델」의 해석에도 이러한 2원론적인 해석 도식이 이여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네번째로, 디스어빌리티 이론의 제도적 위상【주20】에 한정한다고 하는 전제가 있다. 디스어빌리티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사회제도나 고정화된 사회의식과의 관련에 대해서, 거시적인 구조 중에서 생성되는 현상으로 다루며, 개인적경험으로서 인페어먼트와의 인과적 인식적인 부분에 절단되고 있다. 「사회모델」은「개인모델」에 의한 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의 인과적 관련을 이론적으로 거절함과 동시에 인페어먼트와 디스어빌리티의 관련 방법을 묻는 것 자체를 전략적으로 회피해 왔다. (Shakespeare 1992; Oliver 1996a). 그로 인해 인페어먼트 경험의 위치부여를 둘러싼 장애학 제2세대와의 논쟁에 대해서도「사회모델」이 인페어먼트를 이론의 사정외에 두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멈추었으며, 결과가 있는 성과는 얻지 못했다(夏目 2000). 이것을 통해 디스어빌리티는 개인적인personal경험이나 주제간의 개별적인 상호행위의 위상을 추상한 제도적위상만을 두고 파악하고 있다.
 이상이 본절을 통해서 밝히게 된「사회모델」적 디스어빌리티이론의 기본적전제이다. 이러한 제 전제는 명시화 되지 않은 경우에도 디스어빌리티이론의 사정이나 내용에 대해서, 특유한 색채나 성격을 전해주게 된다. 다음절에서는 주로 이러한 제 전제가 기획하는 한계에 대해서 확인하도록 하겠다.

제2절 디스어빌리티 이론이 막히는 지점

 본절에서는 디스어빌리티에 포함된 난점을、현실적으로 그것이 막히는 지점을 몇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착안하면서 제시한 것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의 취로무제, 장애인복지의 위치부여를 둘러싼 문제「자립」과「자기결정」을 둘러싼 문제를 가지고, 전절에서 확인한 디스어빌리티이론의 제전제와 관련하여, 「동정가능성요구」,「다양성요구」,「해소가능성요구」,「타당성욕구」로 부터의 일탈을 확인하게 된다.

1 장애인의 취로와「도리에 알맞은 배려」[…]
2 「통합문제」가 던지는 것 […]
3 「자기결정」의 가치화 […]

주13 이 점에 대해서는 후에 조금 자세하게 논하겠지만, 약간 논의를 해 보면 원인 귀속이나 해소 가능성에 의한 디스어빌리티의 특정화라고 하는 어프로치는 디스어빌리티를 구성하는 불이익을 「기술적」으로 표현하자로 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본서 제2장). 거기에서 규범적인 함의가 있는 디스어빌리티의 특정화가 요구되게 되지만 그 점에서 책임귀속에 대한 해석은 중요한 시사를 포함하고 있다. 제3장으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실제로 다테이와(立岩)(1997;2004a)는 해소 책임의 귀속처의 특정을 넘는 규범적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제2장 디스어빌리티이론의 재검토Ⅰ

제1절 「사회모델」의 이론구조와 그 한계

 본절에서는「사회모델」에 의한 디스어빌리티의 개념화가 장애인이 경험하는 불이익을 어떻게 특징지을 것인가를 검토한다. 먼저, 사회에 기인하는 불이익으로서 디스어빌리티를 특정짓도록 하는「사회모델」의 디스어빌리티이론의 불가능성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인페어먼트의 존재를 근거로 디스어빌리티 현상의 고유성을 제시하려고 하는 논의가 성공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이러한 것들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많은 디스어빌리티이론이나「사회모델」적인 담론은 디스어빌리티의 문제를「불이익을 둘러싼 정치」에 무방비된체로 휘말려들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러한 과제를 눈여겨 본 이론구축의 필요성을 주장.

1 사회원인론적 착오

전장에서 확인한 「개인 모델」에서「사회 모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 본연의 자세를 「그들은 무력하다 They are disable」라고 하는 것에서 부터 「그들은 무력화되고 있다 They are disabled」라고 하는 식으로 시프트화 되었다. 당연히 후자의 인식에는 「사회에 의해 by society」라고 하는, 원인이 되는 주체를 지명하는 인식이 연동되었으며, 이것이 「디스어빌리티 사회모델」의 요점이다. 이렇게 「사회모델」은, 개인의 외부로서 사회에 내속하고 있는 장벽을 디스어빌리티의 인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렀다면, 이러한 사회원인론의 인식은 타당한 것일까? 여기에서는 이 점을 검토한다.
 먼저 개인이란 무관계한 사회에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요구한다고 하는 의미를 조금더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사회모델」의 의의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장애인 마을」의 우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주1】이 마을 대부분의 주민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신체장애인이며, 건물은 그들에게 알맞게 설계되어 있다. 그곳에는 소수파에 지나지 않은 ,「비장애인」은 불편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으며자, 휠체어사용자에게 배제되거나 부호의 대상이 되는「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여기서 시사 하는 것은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이 개인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휠체어사용자용으로 설계해 버리면 벌써 휠체어사용자가 불이익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불이익을 경험하는 것은 비장애인 쪽이 되기 때문에, 현행의 디스어빌리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곧 현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모델」의 주장을 보강하는 논거로서 이용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옳다로 하자. 그러나 이것과 같은 모양의 논리는, 「개인모델」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의 사회는 비장애인에게 있어서는 불이익이 없는 사회이며, 「장애인 마을」은 휠체어 사용자에 있어 불이익이 없는 사회다. 즉, 불이익이 존재할 것인가 아닌가는, 그 사회의 성원이 어떤 개인인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은 개인 측에 있는 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들의 논리는 모두, 「개인」과 「사회」라고 하는 두가지 요소 가운데, 어느 것인가를 소여의 것으로 고정했을 경우에, 가변적인 다른 방면의 요소를 변화시키는 것에 의한다. 이것은 개인이 처한 상황이 변화된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말해, 「개인」의 조건을 바꾸어서라도 또는 「사회」의 조건을 바꾸어서라도, 「개인」에 대한 「사회」의 경험으로 나타나는 불이익의 방법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불이익의 원인이 「개인」이라든가「사회」라든가 라고 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함의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상에서 알게되는 것은「개인모델」과「사회모델」도 현상의 한면을 변형하고, 진정으로「모델화」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모델」의 경우 그것은 무자각적인 「간과」또는 억압적인 관계성을 유지•고정화하기 위한 「은폐」이었을 지도 모르며, 「사회 모델」의 경우 「개인 모델」의 헤게모니를 전환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강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던,「사회 모델」도 또한 디스어빌리티를 개인의 속성과는 무관한 사회 문제다라고 하는 것의 문맥에 초점을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불이익은 사회의 장벽(만)으로 생기는 것이라도 개인의 기능부전(만)에 의해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역의 계단이 디스어빌리티로서 경험되는 것은 휠체어사용자가 있기 때문에라도 그곳에 계단 밖에 없는 것이 아닌, 휠체어사용자와 계단과의 관계, 휠체어사용자도 계단 위로 이동하는 것에 의미가 있거나 가치가 있는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그 계단을 자력으로 올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 계단을 올라가지 않은 것이 불이익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불이익의 원인을 이원론적인 도식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어프로치는 인식론으로서 타다성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디스어빌리티의 원인을 사회에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디스어빌리티란 무엇인가, 그것은 해결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즉 사회원인론에 대표되는 것 같은 디스어빌리티의 기술적 특정을 지향하는 어프로치는 이론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디스어빌리티가 사회에서 생기는 현상인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요인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그 한정된 것으로서 원인귀속을 기술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디스어빌리티 현상이 사회현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전환 그 자체가「사회모델」의 공헌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디스어빌리티에 동의한다고 하는 과제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br>  확실히 장애학의 이론가들은 디스어빌리티의 생성에 사회가 어떻게 관여했는가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설명을 전달해 왔다. 예를 들면 노동에 근거하는 분배와 욕구에 근거하는 사이의 딜레마의 해결을 위한, 행정상의 필요로서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다테고리가 출현했다고 하는 스톤의 논리(Stone 1984)ks의 자본주의적생산의 필요로부터「장애인」이라고 하는 가테고리가 발명되어, 더욱 개개인의 장애가 의학적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Finkelstein의 논의(Finkelstein 1980)등은 각각 사회사적인 분석으로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 다만, 이러한 현행의 자본주의적인 사회체제에 대한 디스어빌리티의 특질에 관한 설명을 하는 것이며, 디스어빌리티라고 하는 사회현상의 논곽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디스어빌리티의 산출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서 올리버는 디스어빌리티가 특정의 사회에서 특정의 형식으로 구축되는 점을 강조한다(Oliver 1996a). 디스어빌리티의 생산이란「디스어빌리티・가테고리라고 하는 재산 a good의 생산을 향해 특히 구동된 활동의 셋트 그 자체이며, 이것은 이러한 생산활동의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제 조건을 창출하는 것과 같은 일연의 정치적행위에 따라 지지되고, 그 사업전체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담론에 의해서 뒷받침하는 것과 같은 것」(ibid.: 127)으로, 현행 사회의 디스어빌리티는「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형식으로 생산되고 있다.」(ibid.: 127)라고 주장된다. 또한 스톤은 국가에 의한 노동력공급의 관리 수단으로서 디스어빌리티・카테고리의 창출이 필요한 측면이 있는 것을 인정한다(Stone 1984). 바꾸어 말해보면 디스어빌리티가 사회적으로 구축된다고 하는 「사회모델」의 주장은 본래 그처럼 구축된 불이익을 해소해야 할 만한디스어빌리티로서 특정한 것이기 보다도, 현행의 사회가 어떤 종류의 특정 형식으로 디스어빌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즉「사회모델」의 이론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인도되어지는 인식은 디스어빌리티에 대한 사회관여의 방법에 대한 것이며, 사회의 원인을 가진다고 하는 사실로 인해 디스어빌리티가 기술적으로 특정가능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사회모델」의 논자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자각되지 않았으며, 디스어빌리티 현상을 원인귀속의 논의에 따라 특징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많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2 당사자의 이익과 당사자성을 둘러싼 질문

여기에서, 별도의 기준에 대한 디스어빌리티를 다른 불이익과 구별하여 파악할 필요가생기는 것 이지만, 이런 종류의 논의의 전형적인 것은, 디스어빌리티를 인페어먼트과 관련 짓는 견해다. 단적으로 말하면, 「디스어빌리티란 인페어먼트가 있는 사람의 문제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
 그러나 본서에서는 이 견해를 취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페어먼트는 디스어빌리티의 존재에서 소급적으로 가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현제 인페어먼트가 부정적인 가치를 수반해서 가정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리얼리티에 정위한 경우에는 어떠한가. 이 경우, 발생론으로서 인페어먼트가 디스어빌리티에 후속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현실에 대해서 양자는 병존하기 때문이며, 인페어먼트와 관련하여, 디스어빌리티를 동정하는 가능성도 남겨졌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서 디스어빌리티 동정의 논리를 재해석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먼저 이럴 때 인페어먼트의 존재를 요건으로 하는 자체는 가능하지만, 이것이 불이익을 만들어내는 다른 가능적요건을 착안한 경우와 어덯게 다른 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 할 수 없다.[…]
 디스어빌리티는 인페어먼트가 당사자에게 양의적일 것은 대조적으로, 단적으로 불이익의 경험이라는 점의 부정적인 것이다(星加 2002). 따라서 이 해소의 당사자에 게 있어 바람직한 것은 먼저 의심해볼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해소의 주장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논리가 구축되지 않은 경우에, 이것은 당사자에게 있어 부정적인 계기를 포함하게 된다. 어떤 종류의「문제」만이 타당성을 물을 수 없는 것의 영역으로서「특권화」【주3】될때, 그곳에는 암묵의 부정적인 가치부여가 생기기 쉽다. 현상에서는 왜 장애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았으며, 이것은 동시에 장애를「특별」한「약자」의 문제 다루려고 하는 사회통념과 쉽게 결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 문제의「특권화」는「복지의 스티그마」라고 하는 주지의 문제상황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Spicker 1984=1987).

3 「불이익을 둘러싼 정치」

 그렇다면 이러한 당사자에게 바람직한 근거로서 디스어빌리티 해소를 주장하게 된다면 이 주장은「불이익을 둘러싼 정치」에 무방비된 체로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불이익을 둘러싼 정치」란, 많은 주체가 스스로 경험하는 불이익에 대해서 그 해소를 요구하여 실행하는 투쟁인 것이다. 이「불이익을 둘러싼 정치」는 다음의 2가지 점에 대해서 디스어빌리티해소의 주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첫번째로 이 투쟁에 무방비된체로 휘말리게 된다면, 디스어빌리티 해소의 주장은 다른 가능적주장과 다른 가능적주장과 등가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얻을 수 있다. 불이익은 사회의 도처에 존재하여, 그 해소를 목적으로 주장하는「당사자」는 항상 상정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의 문맥에서 디스어빌리티 해소의 주장도 그 일부로서 상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 디스어빌리티 해소의 필요성에 대해서 충분한 논거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다른 입장으로부터 반박을 쉽게 할 가능성을 열게 된다. 두번째로 불이익이 질적인 차이를 문제삼지 않으면, 디스어빌리티 해소의 우선 순위에 대해서 논급할 수 있지 않고, 결과 보다「중증」적인 디스어빌리티【주4】가 뒤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한다.
[…]
 […]

4 보편적이익론――다시한번「불이익을 둘러싼 정치」へ

 또한 특정 당사자에게 있어 바람직한 것을 넘어 디스어빌리티 해소의 보편적이고 바람직함을 이야기 하는 담론도 유포하고 있다.

〔인용개시〕그렇다면「장애인」에게「문제」나「장애」을 안고 있는 원인은 사회 틀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포섭하는 책임이 사회측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사회의 설계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가지게 된것)사람이 핸디를 느끼지 않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없는(다고 보는)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살기 쉬운 사회가 될 것이다. (中西・上野 2003: 10)〔引用終了〕

 여기에서는「장애인이 살기 쉬운 사회는 누구에게나 살기 쉬운 사회다」로서 디스어빌리티는 사회의 변혁에 의해서 해소되며,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종류의 주장은 일견 강력한 것 처럼 보인다. 왜냐면 디스어빌리티 해소가 가능하며, 그것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에 반대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주5】。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논의에는 단순한 착오가 있다. 이것은 제 주체의 이해에 대립한다고 하는 기본적인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

第2節 디스어빌리티 이해의 재편・――불이익의 의미를 둘러싸고

 본절에서는 제1장 및 제 2장 제1절을 검토하고 장애인이 경험하는 불이익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것은 불이익에 대한 인식론의 전환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하는 동시에, 디스어빌리티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한 인식적기초를 준비하는 작업으로서도 그 위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1 불이익 개념의 재정식화

 전절의 논의들을 포함하여, 본서에서는 불이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다루는 것을 제시하고 싶다.

〈불이익이란 어떤 기준점에서 보여지는 주관적,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얻게 되는 것 같은 특정의 사회적 상태이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떤 사회적상태(α)가 평가할 때 기준점(P)에 비추어지는 부정적으로 평가될 경우. 즉α>P이라는 평가【주6】경우에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에 불이익이 생기는 것으로서 파악한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표현으로는 또한 아무것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그 함의에 대한 순서대로 설명해 가려고 한다.
 […]

 여기에서 주의해 두고 싶은 것은 이 기준점 P가 어떻게 설정 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종래의「사회모델」이해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디스어빌리티를「기술적」으로 특정하려고 하는 어프로치에 대해서는 기준점P이 현실 사회적 과정에서 생성되어, 유동화 되는 것을 간과할 경향이 있으며, P은 사회적문맥과 독립에 a priori에 존재하는 처럼 다루어 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개개인이 불이익을 해소한다고 하는 주장을 할 때 마다, 애드혹(ad hoc)에 설정 가능한 것 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러한 이해들을 포함하여α>P라고 하는 평가가 내려진 것을 불이익의 경험으로 파악한다. 이 평가의 주제는 제일의적으로는 사회적상태α의 초점이 되고 있는 당사자이다. 즉 당사자의 주관적 평가로서「할 수 없다」라고 하는 감각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럴때 기본적으로는「사회적가치」에 의해 요구되는 사회적 활동을 할대 곤란한 경험이 문제가 되지만, 그것에 더하거나 또는 그 배후에는 틀로서 타자와의 비교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감각도 포함되어진다.
 여기서 평가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이상과 같은 불이익의 특정을 위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α와P에 대해서「사회적가치」,「개체적조건」,「이용가능한 사회자원」,「개인적인 움직임」이라고 하는 제요소가 서로 관련 되면서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타이밍의 소산으로서 얻어지는 α와P의 관계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디스어빌리티를 구성하는 불 이익은 개인 외부 사회에 내속되어 있는 장벽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주최와 사회사이에서 또는 복수 주체간의 특정 관계성에 관한 개념으로서 파악하게 된다. 어차피, 불이익의 원인을 개인은 외재적인 사회에 내속하는 것으로서 보는 견해는 이것을 판단의 목표로 하는「개인모델」이 안고 있는 인식적착오와 동형의 난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개인모델」에서「사회모델」이라고 하는 페러다임시프트의 의의는 문제의 원인을 개별의 individual주체에 내속한다고 하는 이해를 초극한 점이야 말로 있었을 것이며, 그 의미로「사회모델」이란 문제를 주체간의 상호관계적인 social문맥에 그 위치를 부여할 것이다【주13】. 따라서 본서에서 채용할 입장은 어떤 의미에서는「사회모델」의 이론적 틀에 충실한 것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2 재정식화의 의의

이 불이익을 다르게 읽어내는 포인트는 2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불이익의 원인 귀속을 둘러싼 이원론적 이해를 배제하고, 사회적 상태를 복수 요소간의 관계성으로 파악하는 점이다. […]
제2의 포인트는 불이익이 원래 있어야 할 (있을 것인) 「표준」에서 마이너스 방향에 대한 편차 (「제약」, 「저해」등)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할때 기준점 그 자체가 사회적 과정에서 편성되는 것을 근거로 하는 사회내적인 주제로서 제시하고자 하는 점이다. […]

제3절 갱신된 불이익

1 노동을 둘러싼「불이익의 갱신」 […]

2 「자기결정」을 둘러싼「불이익의 갱신」 […]

3 「불이익의 갱신」의 메가니즘

이상의 논의에서 특정한 불이익 해소를 목표로 하는 것이, 어떤 의미로 불이익을 만들어 내는 구분을 다시 쓰며, 어떤 사람에 있어 불이익의 부정적인 의미를 증폭시키는 현상을 귀결하는 사태가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서에서는 이것을 「불이익의 갱신」이라고 보고 있다. […]
그러나 「사회 모델」적인 입장을 공유하는 종래의 논의에 대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낳는 구조에 대해서 자각적으로 검토되어 오지 않았다. […]


제3장 디스어빌리티이론의 재검토Ⅱ

전장에서는 디스어빌리티를 구성하는 불이익을 특정한 관계성에 대한 평가로 그러한 불이익의 이해에 대한 「불이익의 갱신」이라고 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리적 구조의 존재가 명확히 떠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 때, 불이익은 갱신되면서 항상 계속해서 존재를 계속하는 것이 전제가 되기 때문에, 어떤 불이익의 해소는, 제불이익의 해소를 둘러싸면서 전개되는 「불이익을 둘러싼 정치」 안(속)에서 규범적으로 쟁점화되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불이익을 둘러싼 정치」에서 특정한 불이익의 해소를 정당화하는 규범은 어떻게 주장될 수 있을가, 또한 그러한 투쟁은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점이 본장의 과제이다.

제1절 불이익의 규범적 특정의 시도

 디스어빌리티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주장은「규범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종래의 논의에 대해서도 자각되었으며, 이 부분은 전장의 이미 논의 되어 왔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디스어빌리티이론은 어떤 의미로「규범적」이며, 종래의 이론은 어떻게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

1 규범적 사회이론의 역할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규범」이라고 하는 주제 또는 대상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 약간 설명해 두자. […]
우선 디스어빌리티를 개념화하는 본서의 논의에서, 왜 규범이 문제화되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논급해 두자. 첫째로, 디스어빌리티 현상의 동(同)정이라는 기초적인 과제에 열을 올리게 될때 규범에 대한 언급은 불가피하다. […]
제2로 디스어빌리티의 해소라고 하는 주제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각 특정한 불이익에 대한 어떤 불이익을 어떻게 해소해 갈 것인가라고 하는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규범적 문제가 부상한다. […]

2 「장애인차별」이라고 하는 시각

 그렇다면 디스어빌리티에 관한 종래의 논의에 대해서 어떠한 규범적인 참조점이 되어 왔는가. 다음으로 이부분을 봐 보자. 여기서는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차별」또는 「부당」한「배제」로 보는 논의를 검토하고, 부당성의 판단에 근거가 되는 규범에 대해서 확인한다.[…]
 결국「부당」한 상황을 특정하기 위한 정의 중에「평등」「얻을 수 있는것」「부당한」이라고 하는 규범적인 컨셉이 무전제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 논의도 부단성의 기준으로서 규범의 제시에 성공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3 「책임모델의」사정(射程)

이것에 대하여, 장애인차별의 부당성 기준을 제출하자로 하는 시도도 있다. 遠山는 장애인에 대한 처우의 정당성을 판단하고자 할때는 그것을 「무엇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중시하는 것인가, 어떠한 상태가 바람직한 것으로 하는 것인가」 (遠山2004a:164)라고 말한 「규범 수준」의 문제로서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장애가 있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 그것으로 불리함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하는 말투는 일상적으로도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우리들이 소박한 감각에 전해지기 쉬운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모델」은, 해소의 규범을 둘러싼 이론적 틀로서는 불충분하다.
우선, 「책임의 유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인페어먼트의 해소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해소하자로 하지 않는 「책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또한, 「책임」이라고 하는 컨셉은 과거의 소급 범위에서는 인페어먼트를 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적용가능하다. […]
별도의 각도에서는 장애에 관해서 인페어먼트를「책임」의 영역에서 제외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자질」이라고 불리워 지는 다른 선천적인 특성이나 외적환경과 같은 요인에 대해서도 「책임」의 영역에서 제외하는 것을, 이론내재적으로 요청하는 논점은 남는다. […]
 더욱이 처음부터 「책임의 유무」에 대한 공적인 보장을 정당화하는 것 같은 논의가, 많은 공공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서 과소 또는 과잉함에 대해서는, 인과적 관련의 기점에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려고 하는 이 종류의 어프로치의 문제성을 논한 立岩의 논의(立岩 1997)에서도, 이미 지적되고 있다. […]

제2절 立岩의 프로젝트 […]

제3절 디스어빌리티이론의 재편・――불이익의 위치를 둘러싸고

여기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디스어빌리티를 구성하는 개별의 불이익에 대한 규범적인 부당성을 확인하려고 하는 시도의 의의와 한계가 확인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여 본절에서는 디스어빌리티의 동(同)정을 위한 새로운 틀을 준비한다. 먼저 디스어빌리티 대한 불이익의 위치 부여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불이익 집중」의 형식으로서 「복합화」 및 「복층화」라고 하는 관점에 대해 정리한다.

1 「불이익의 집중」이라고 하는 문제

2 「중증장애」란 어떤 현상인가――불이익의 복합화

杉野 昭博 20070620 『장애학――이론형성과 과정』,東京大学出版会,294p. ISBN-10: 4130511270 ISBN-13: 978-4130511278 3990 [amazon][kinokuniya] ※ ds

4장 사회모델의 확장과 재편
영국 사회모델의 전개

 1 혼란의 논쟁과 문맥의존성

  장애학의 이론적 핵심은 「장애의 사회 모델」이라고 불리우는 인식 틀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영미의 장애학을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의견 일치(consensus)가 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 모델」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순식간에 그 논의는 더욱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사회 모델는 미국 판과 영국 판의 2종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마이클•올리버에 대표되는 영국 사회 모델은 장애를 제도적 장벽으로서 보고, 장애 문제를 「기회와 결과의 불평등」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주로 【손상】과 장애인 개인의 경험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더욱이 그 비판에는 의료사회학에 의한 외재적 비판과, 페미니스트 장애학에 의한 내재적 비판의 2가지가 있다. 즉, 같은 비판이라도 한 쪽은 장애학 그것에 대한 회의적인 비판이지만, 다른 한쪽은 장애학 혹은 사회 모델의 이론적 발전을 목표로 한 건설적 비판이다.
  영국과 달리, 【아윙 졸라】에 대표되는 미국 사회 모델은, 장애를 사회의 편견적 태도로 보고, 장애문제를 「(결과가 아닌) 기회의 불평등」문제, 즉 「차별」의 문제로 다룬다. 그러나, 미국 사회 모델에도, 사법적 해결(사회 모델)의 의식 변혁(문화 모델)의 어느 것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 장애 아이덴티티를 강조해야 할지 (마이너리티 모델), 비장애인/장애인과 같은 2개의 대립적 카테고리의 무효성을 강조해야 할까 (보편성/연속성/다양성 모델)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역시 내부 논쟁과 외재적 비판의 쌍방이 존재한다.
  한편, 일본에서도 사회 모델을 둘러싼 다양한 반응이나 논쟁이 장애학의 내외에 있다. 예를 들면, 「바뀌어야 할은 개인(장애인)이 아니고 사회다」라고 하는 사회 모델의 주장(Oliver 1996a:37)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일본에서도 이미 1970년대부터 전해지고 있었다고 하는 반응이 , 장애인운동의 내외부에 있다. 사회 모델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델로 간주하고, 그 혁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장애인운동 내부적으로는 일본국내를 봤을 때 지금까지의 운동의 정당성이나, 세계적인 장애인운동 안(속)에서 일본의 장애인운동의 선진성을 시사하게 될 것이다. 한편, 재활이나 장애인복지의 전문가 그리고 연구자에게 있어서는, 사회 모델이 이미 있었던 것 이였으면, 개별원조 어프로치에 대한 사회 모델의 비판은 이미 「해결완료」의 문제로서 배척 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다름을 강조하는 「차이파=문화 모델」이라는 양자의 동일성과 공생을 강조하는 「평등파=사회 모델」이라고 한 이론적 입장을 둘러싼 논의가 있다. 그러나 이 논의도 장애인운동 내부의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것인지에 의해 그 의미는 크게 다르다. 예를 들면 장애당사자가, 평등, 다시 말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들, 그것은 결코 「모두 같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장애인과는 같아 질 수 없다고 하는 전제 비장애인 처럼 할 수 있게 해 주길 원해, 또는 비장애인처럼 대해줘라고 하는 평등파의 주장이다. 한편, 차이파에 의한 「비장애인과의 다름」라고 하는 주장도, 그 전제로서 「같은 인간이다」라고 하는 메타•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운동의 외부에 서, 자칫하면, 장애인들만 생활하고 싶다는 것이 차이파이며, 비장애인과 공생하고 싶은 것이 평등파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극단적이고 단순화된 해석 하는 것도 있다. 또한, 차이파와 평등파 에 대한 논쟁은 페미니즘의 분석 틀을 장해문제에 적용시킨 것이지만, 생물적 차이와 문화적차이를 포함시켜서 모든 성의 차이를 부정한다고 하는 포스트모던•페미니즘에 의한 「기반주의」foundationalism비판을 장해에 꼭 들어맞추고, 장애와 비장애의 모든 차이를 부정한다고 하는 논의도 되고 있다. (後藤吉彦 2005). 그러나, 장애와 비장애라고 하는 두 개의 대립적 카테고리를 무효로 한다는 주장은, 결코, 「반기반주의」의 전매 특허가 아니고, 「기반주의」에 속해야 할 재활(rehabilitation)학에서도 주장되고 있으며, 졸라에서 대표되고 있는 장애학의 내부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옛 부터 존재한다. 즉, 장애와 비장애라고 하는 카테고리의 무효성을 같이 주장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누가 무엇 때문에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문맥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도 장애학 및 그 이론적 핵심인 사회 모델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그 주장의 문맥을 빼고는 이해할 수는 없다. 주장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주장의 시작의 포지션이 명시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가에 따라, 같은 메시지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논의가 혼란 스러 운 것이다.[…]
  사회모델을 둘러싼 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장애당사자에 의한 장애인에 의한 것인지 비장애인에 의한 것인지 라고 하는 발화의 포지션이나 현상의 장애인복지제도를 유지하려고하는 것인지 그것을 변경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하는 발언의 정치적 의도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문맥을 뺀 택스트 만을 대상으로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뿐만 아니라 논점을 얼버무려 오해를 증폭시키게 된다. 그러한 것에 유의하면서, 사회 모델이 초래한 것, 그것이 만들어낸 논쟁, 그리고 그 논쟁을 통한 도달 점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
 2 사회모델의 공적

사회모델만큼 일본에서 너무나 쉽게 소화되고 일회성으로 끝나 버린 듯한 이론도 없을 것이다. 2005년 이전까지 졸라나 올리버의 저작은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았으며 그 이론이 소개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라도 사회모델을 알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논의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바뀌어야 할 것은 장애인이 아니고 사회다」 라는 주장 자체가 이미 일본에서도 1970년대부터 주장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에는 공생이나 노멀라이제이션 또는 「장애개성론」 이라는 이념과 함께 널리 보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새로운 장애인복지이념」과 장애학의 사회모델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것들이 원조 실천에 있어서의 목표이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전제가 되는 「장애」란 무엇인가 라는 인식론적 과제에 깊이 파고들지 않았던 데에 있다. 즉 「장애는 개성」 이라고 주장한 장애개성론이나 노멀라이제이션이 공생론이라 하더라도 「장애」를 개인의 인페어먼트로 보고 있으므로 그것을 사회의 차별이나 장벽과 같은 디셔빌리티로서는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장애」를 인페어먼트라는 개인의 수준으로만 보고 사회적 차원으로 보지 않는다면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다」 라는 사회적 책임이 애매모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수용 노력은 목표로만 끝나버리게 된다. 결국 「새로운 장애인복지이념」은 장애인이 고생하고 있는 것은 사회 탓이며, 나쁜 것은 사회에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야 말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영국 장애학의 사회모델은 「장애」를 인페어먼트라는 개인적 차원과 디셔빌리티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분리함으로서 사회적 책임의 범위를 명시한 점에 그 진가가 있다.
 [장애]를 Impairment와 Disabiltiy의 두 차원으로 분리하여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영국의 사회모델은 1970년 [격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연맹](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nisat Segregation(UPIAS)에 의해 사용되었던 장애의 정의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장애인 개인에게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로 인해 생긴 다양한 문제들을 사회의 문제로서 보고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장애인의 의식과 비장애인 사회 전체의 의식을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

   이렇게 장애 문제의 원인을 장애인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요구해 가는 것은 1970년대 장애인운동의 특징으로 이는 영국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5).  한편 장애의 사회적 책임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비판이나 장애개념을 이원론적으로 분해하는 것이 본래의 일체적인 것을 무리하게 분해하는 것이라는 비판 등이 장애학의 내외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우선 학술 연구상의 논의로서는 장애개념을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분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것을 장애를 사회적 차원으로 다루기 위한 방법론상의 조작적 정의라고 생각하면, 그러한 개념조작은 어떤 학문 분야에서도 널리 행해지는 것이다. 즉 장애의 사회적 측면을 특히 연구하고 싶을 경우,인페어먼트에 관한 데이터를 미리 짐작해서 디셔빌리티에 관한 연구만에 주목한다고연구 방법은 타당한 것이다 6). 한편 장애인운동이나 장애학내부의 사회모델 비판은 장애학외부의 비판보다도 더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장애인자신의 「경험」으로서 인페어먼트와 디셔빌리티는 불가분의 것이라는 주장은 많은 장애인들에게 있어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다 이해한 다음에도 일부 장애당사자들은 「사회가 나쁘다」고 지금껏 주장해 온 것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나쁜 것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으면 장애인자신의 자살이나 장애태아의 선택적 임신 중절, 그리고 장애아 가족의 동반자살 등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는 장애인이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장애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본인이나 장애아를 낳은 부모가 불운하다고 생각하므로 장애인에게 일을 주지 않는 사회나 기업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또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나 불운(개인모델)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 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장애아의 부모는 아이를 돌보는 것을 혼자서만 안으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그러한 부모의 인식이나 행동을 인정해버린다면 부모가 장애가 있는 자기 자식을 죽이는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부모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는 당신 자식이지만 그에 대한 부담은 사회에 있음을 설득할 수 없다면 장애아 죽이기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장애 원인을 절처하게 사회에 귀속시켜 가는 개념모델의 정치적 중요성이 있다. 장애의 사회적 책임을 애매하게 설정한 「새로운 장애인복지」이념만으로는 가족에 의한 장애아 죽이기를 막을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노멀라이제이션이나 공생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나쁘지 않다. 나쁜 것은 사회이다」 라고 확실하게 언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개념을 개인과 사회, 인페어먼트와 디셔빌리티의 이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필요한 것이다.
3. 올리버 장애이론의 진가 - 노동의 근대화와 장애[…]

  4. 올리버 사후의 사회모델 논쟁 - 내재적 비판과 외재적 비판

  올리버의 장애노동 배제 이론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면서 새로운 연구 영역이 발전할 수 없었던 점은 유감스러운 것이며, 그 원인의 일단은 『무력화의 정치』 이후 사회모델 논쟁에 의한 올리버 비판에 의해 올리버 이론의 진정한 강점이 싸그리 지워져 버린 것에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회모델 논쟁에서 올리버 비판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그 논점 자체는 장애학에서 못본 척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올리버 비판의 논점은 올리버의 사회모델이 인페어먼트와 장애당사자 개인의 경험, 특히 신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그 과정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모델은 인페어먼트가 있는 신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신체에 대해서는 의학모델에 대한 해석을 옳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신체는 사회모델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의 반문이 왜 장애학에서 중요한 논쟁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해 두자.[…]

 5. 사회모델의 확장 작업 - 인페어먼트의 사회학  1990년대의 영국 장애학은 의료사회학 등의 기존의 장애연구의 비판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있었지만 여성장애인으로부터의 비판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받아 들이고 이를 사회모델에 포섭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올리버 사회모델에 대한 여성장애인들의 위화감의 근본에 있던 것은 노동에서 장애의 배제를 중시하는 시점이 노동시장에서의 소득 능력으로부터 사회적 지위의 원천을 찾아내려는 남성중심주의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경제요인을 중시하는 반베버주의적인 연구 시점에 의한 것으로, 거기에서 올리버 자신의 젠더•바이어스를 보려고 하는 것은 다소 엉뚱한 견해로 여겨진다. 또한 올리버는 경제요인과 함께 의료화나 개인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 요인도 중시하고 있으며 고용차별이 없어지게 되면 장애문제가 해결된다는 등의 주장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장애인운동이나 장애인정책에서 고용기회의 평등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 대해 여성장애인 이외에도 많은 장애인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13).  이러한 여성장애인들의 비판에 대해 처음으로 반응했던 이가 톰•쉐익스피어(Shakespeare 1994) 이다. 그는 페미니스트 장애학에 의한 올리버의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뒤에 제니•모리스가 지적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적 이미지의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쉐익스피어는 이 논문의 서두에서 먼저 「올리버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나 심리학주의를 명확하게 거절하고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려는 “유물론”적 어프로치를 취했지만, 한편으로 그것에 대한 인페어먼트와 문화, 표상, 의미 등의 문제가 경시되었다」고 말하며 페미니스트 장애학에 동의한다 (ibid. :283). 그러나 또한 인페어먼트의 문화적 표상은 사회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장애 이미지의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페어먼트를 중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나아가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빠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적 이미지가 사회적인 기호 혹은 사회적 가치의 은유로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다음에 장애 이미지의 사회분석에 필요한 이론모델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그는 그러한 가운데 올리버 역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에 의해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포착하려고는 하였지만 그 경제결정론에 의해 문화나 의미의 분석에는 충분한 역점을 두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제관계를 고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경제적 요인에 의해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Shakespeare 1994:289). 이러한 언명은 올리버의 경제결정론에 대해 일정한 유보를 내보이는 것으로, 영국의 사회모델 이론의 전개를 생각할 때 지극히 획기적인 논의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쉐익스피어는 1997년의 왓슨(Watson)과의 공저 논문에서도 사회모델은 유물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일치된 견해를 채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빅•핀켈스타인 등 주류파의 의견에 대해 다원주의를 지지하고 페미니즘이나 포스트모던 이론이 그리는 세계관 안에서도 장애의 사회모델을 보유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Shakespeare and Watson 1997:299). 이렇게 페미니스트 장애학에 의한 올리버 사회모델 비판은 올리버의 경제요인환원 주의를 포기한다는 인상을 가져다 주었다.[…] 이와 같이 올리버나 핀켈스타인에 의한 초기의 영국 사회모델이 소유하고 있었던 과도한 경제결정론을 다시 보게 한 점이 페미니스트 장애학의 가장 큰 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장애학이 영국 사회모델에 가져다 준 두번째 공적은 인페어먼트나 장애의 개인적 체험을 「사회적 억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을 제공한 점이다.[…]

 6. 사회 모델의 재편성 - 유물론적 모델과 관념론적 모델  사회모델의 자기규정은 장애학의 자기규정과 같다. 영국의 장애학은 올리버의 경제결정론적 사회모델을 자기규정으로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모델은 장애학의 「자기평가」가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사회모델을「자기평가」로 하여 장애학이 성립된 것은 아니지만 「장애학」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 연구들이 장애가 전하는 사회환경요인을 중시하는 「사회모델」적인 어프로치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하는 의미에서 역시 장애학의 아이덴티티인 것에는 틀림 없다. 단 미국의 사회모델은 영국보다도 폭이 넓을 뿐이다. 영미 모두 사회모델과 개인모델의 구별은 장애학과 「장애학이 아닌 것」으로 구별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장애학의 학문으로서의 존립을 쥐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회모델과 개인모델과의 구별이 애매해지면 장애학과 기존의 다양한 장애연구와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인모델과 사회모델의 구별은 장애학에서의 「생명선」이 되기도 한다.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신체의 인페어먼트와 외재하는 사회의 디셔빌리티를 구별하는 올리버의 장애이론은 개인모델과 사회모델을 이해하기 쉽게 구별한 것으로 「장애학」의 정의도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해하기 쉬움은 동시에 장애인 자신의 「장애」의 실감을 희생시켜서 성립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학으로서의 장애학이 인페어먼트나 장애인 개인을 추상화하고 사회적 장벽 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서 자기규정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이러할 경우 당사자 시점을 강조했을 장애학으로부터의 당사자의 모습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신체와 개인은 장애학에 있어 위험한 유혹이기도 하다. 사회모델의 개인으로의 확장은 개인모델의 사회로의 확장과 겹치고, 국제생활기능분류ICF의 「생물-심리-사회모델」과 같은 통합모델로 흡수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근심은 누구라도 가질 것이다. 이 어려움으로부터 장애학을 구해낼 수 있는 것은 어빙•졸라의 장애연구라고 생각한다. […]

 7 「개인적경험의」의 사회성

Shakespeare, Tome 2010 "The Social Model of Disability", Davis ed.[2010:266-273]*
*Davis, Lennard J. ed. 2010 The Disability Studies Reader, Third Edition, Routledge, 672p. ISBN-10: 0415873762 ISBN-13: 978-0415873765 [amazon][kinokuniya] ※ ds.

■문헌 →별도의 항목


UP:20110503 REV:
장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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