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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클래스」에 관한 메모

[Japanese]
노동


 작성:하시구치 쇼지(橋口 昌治)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문헌표
◇Sugrue, T. J., 1996 “THE ORIGINS OF THE URBAN CRISIS”, Princeton University Press
 =카와시마 마사키(川島正樹)역20020208『미국의 도시위기와「언더클래스」 -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의 전후사』아키시(明石)서점,p.576,¥6800+税, ISBN:4-7503-1522-2
◇Wilson, W.J., 1996, “WHEN WORK DISAPPERS: The World of the New Urban Poor”, Alfred A. Knopf
 =카와시마 마사키(川島正樹)・타케모토 요코(竹本友子)역19990331『미국 대도시의 빈곤과 차별 – 일이 없어 질 때』아키시서점
◇Bauman, Z., 1997 ‘The strangers of the consumer era’ in Bauman, “ Postmodernity and its Discontents” New York University Press.
 =이리에 키미야스(入江公康)「소비시대의 이방인 복지국가에서 감옥으로」『현대사상』1999년10월호,27-11,p.149~159
◇아오키 히데오(青木秀男)20001115『현대일본의 도시하층 – 요세바와 노숙인과 외국인노동자』이시이서점,p.305,¥5,040(税込),ISBN-10: 4750313475 ISBN-13: 978-4750313474 [amazon][boople]
◇사카이 타카시(酒井隆史)20010723『자유론 – 현재성의 계보학』청토사(青土社)
◇이토 다이이치(伊藤大一)20030600「영국 「언더클래스」의 형성 블레어 정권의 고용정책의 배경」『리츠메이칸경제학』52-2
 http://ritsumeikeizai.koj.jp/all/all_frame.html?stage=2&file= 52204.pdf
◇시부야 노조무(渋谷望)20031025『혼의 노동 – 네오리벌리즘의 권력론』청토사(青土社)
◇Bhalla, A.S., Lapeyre, F., 2004 “POVERTY AND EXCLUSION IN A GLOBAL WORLD, 2nd edition”, Macmillan Publishers Limited
 =후쿠야마 히로유키(福原宏幸)・나카무라 켄고(中村健吾)감역20050420『글로벌화와 사회적 배제 – 빈곤과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어프로치 -』쇼와당(昭和堂)
◇(사)부락해방・인권연구소 편20050425『배제되는 젊은이들 프리타와 불평등의 재생산』해방출판사



■윌리엄.J.윌슨 1996→1999『미국 대도시의 빈곤과 차별』아키시서점

◆「예를 들어 한스타인과 머레이는 「언더클래스」의 아이들을 위한 조기 개입 프로그램은 거의 희망이없다고 주장한다. 왜일 까? 취학전 교육 프로그램 기간 중에 통일된 시험 점수가 꽤 향상됨을 보여도, 아이들이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면 급속하게 저하되고 말기 때문이다. (…)헤드스타트와 같이 외부 개입 프로그램은 그것이 인지능력 저하에 관련된 제 문제에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당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 저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도시중심부 게토의 가혹한 환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헤드 스타트의 훼이드 아웃에 관한 조사결과에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으로 얻어진 진보가 그러한 환경에서도 이지된다라면, 그 편이 경탄할만할 것이리라. 도시중심부 게토의 아이들은 상상력이 결여된 커리큘럼,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 불충분한 시설이나 설비, 그리고 학생을 신뢰하고, 그들이 학습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한줌의 교사에 지나지 않는 상황에 만연하는 공립학교와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도시중심부 게토의 아이들은 또 실업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거주구역에서 성정하고 있는 데, 그러한 것은 아동들의 건전한 성장이나 지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가운데 가정의 붕괴, 반사회적 행동, 사회적 네트워크가 게토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지역의 아동들이나 성인의 행동거지나 행동에 대한 법률이나 규칙에 따르지 않는 사회적 통제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 포함된다. (p.16)

◆「1970년대 초기 게토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갑자기 정지된 이후, 예전의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한이우려했던 몇 가지 경향이 매우 현저하게 나타났다. 첫번째로 빈곤이 보다 도시적으로 되었으며, 지역적으로 집중되고, 대도시, 무엇보다 격리 정도가 매우 높은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방대한 인구를 가진 오래된 공업도시에서 보다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게토의 생활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가끔 미디어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는 일반적 인식은 존재했다. 예를 들어 광범위하게 벌어진 약탈을 일으킨 유명한 뉴욕시의 전력부족 사태 후, 『타임』지는 1977년 8월 시카고와 뉴욕 게토의 상황을 극적으로 그려낸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미국의 언더클래서 – 마이너리티 중 마이너리티 -」라 이름붙여진 이 기사가 유행을 불러일으키게 된것은,「언더클래스」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다룬 거대 대중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언더클래스의 세계에 대한 이후의 미디어 보도의 경향을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이 세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고『타임즈』지의 보고는 서술한다. 「절망이 분출하여 신문의 1면이나 7시 텔레비젼 뉴스에 나타날 때 이외에는. 부슬부슬 무너진 벽의 맞은 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다루기 힘들고, 사회적으로 이질적이며 적의로 가득찬 사람들의 대집단이 살고 있다. 그들은 손이 닿지 않는 사람들, 미국의 언더클래스이다. 」(…)」(p.258-259)

◆「미디어에 의한「언더클래스」의 가치관이나 태도의 파악방식이 도시중심부의 케토의 주민에게 실제로표명된 견해와 얼마나 완전히 대조적인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시카고의 대규모 공영주택에 사는 비혼이며 28세의 생활보호 수급을 받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는 그녀의 공영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부도덕하거나 악한이나 살인 청부업자라는 인상을 미디어가 어떻게 만들어내는 지에 대해 UPFLS의 인터뷰어의 한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p.264)

◆「반복하지만, 윌슨 교수의 전저(前著)는, 리버럴파나 커뮤니티 중시파에서, 역사적인 인종차별의 지속력을 중시하고 있는 점이 비판되며, 일반사회와 이질적인 도시중심부의 흑인 커뮤니티의 「병리」에 시달린 이질성으 강조하는 풍조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고 염두된 경향이 눈에 띈다. 본서에서는 1992년 로스엔젤레스 폭동의 원인이 된 경찰의 횡포나 그 3년후 문제시된 O.J.심슨 사건에 대한 반응에 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럽계 미국인 간의 현저한 차이, 또한 『벨 곡선』의 베스트셀러가 제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열등시함이 여전히 뿌리깊은 현상에 근거한 이후, 오로지 역사적 인종차별의 규탄에 집중하거나 「게토의 자율성」의 레토릭을 칭송하는 경향을 넘어 도심부의 파괴적 곤궁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고, 보다 근본적 원인으로, 제조업에서 정보・서비스산업으로의 산업구조의 변화와 경제의 글로벌화 등 미 합중국 전체에도 관련된 구조변화의 영향이 중시되고, 그것이 보다 날카롭게 나타난 결과가 도심부의 「언더클래스」라 하는, 종래의 입장으로 일관되어 있다. 일본이나 유럽의 공공정책이 참조되는 등, 도심부의 문제해결을 위해 합중국이 취해야 할 공공정책에 대한 제언을 위해 그 입장은 한층 보강되고 있다. 」(p.367,「역자 후기」)

◆「이것은 윌슨 교수가 주장하는「언더클래스」상황의 구조적 원인설을 보강함과 동시에 10%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실업률이 여전히 백인보다 매우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윌슨 교수가 장기간 호소해온 바와 같이 노동시장의 호전만으로는 도심부에 집중된 빈곤이 해결되지 힘들다는 것, 중앙정부인 연방정부의 책임에는 호경기의 지속 뿐만이 아닌, 도심부의 직업없는 사람들에 노동시장으로의 접근을 보장하는 보다 적극적 정책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도 나타내고 있다. 」(p.368,「역자 후기」)


■지그문트 바우만1997→1999「소비시대의 이방인」

◆「사형수감방의 수용자의 압도적 대다수는 이른바 “언더클래스”출신이며, 그것은 거대하게 성장한 저장고 – 소비사회의 낙오자나 거절자가 축적된다 – 가 되고 있다. 리네바우가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처형의 스펙터클은 「시니컬하게 정치가들에 의해 성장하는 언더클레스를 위협하는 것에 이용된다」. 하지만 언더클레스에 대한 위협을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미국 사일런트 메저리티는 자신 내부의 공포를 진압하려는 것이다 …….」 (p.156)

◆「사형의 부활은, 아마 가장 드라스틱한 사태이지만, 그러나 범죄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유일한 징조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이 전달하는 상징적인 메세지가 변화하였다는 것이기도 하다. 땀이 아닌 피가, “언더클레스”의 감금된 부분에서 추출되는 경향에 있다. “ “데드맨 워킹”에서 사형제도반대위원회의위원장, 시스터 헤렌 프레져는 앙골라 형무소에서 운영되는 “혈장공장”(프라즈마 플랜트)”를 묘사하지만, 거기에서는 피의 “기부”가 모여들고, 1994년 3월까지 기부별 현물로 12달러였던 것을 4달러까지 감가 지불하였던 것이다. 그 사이에도 닥터 쟈크 키보티만 – 안락사를 주장하는 최전선 – 이 집행수속에서의 장기 “기부”의 강제를 포함한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러한 사실은 빈곤자의 신개정판인 “언더클레스” 또는 “제계급을 넘은 계급”에서 그 새로운 배역을 예고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그것은 “노동예비군”이 아닌 충분한 또는 진정한 의미에서 “과잉(남은)인구”이다. 그것은 무엇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다른 인간의 신체를 수리하는 부품(스페어)의 공급자라 해도 되는 것일까?」(p.156~157)




■사카이 타카시(酒井隆史)20010723『자유론 – 현재성의 계보학』청토사

◆「「언더클래스」 - 현재에는 저널리즘에서 아카데미즘, 정치의 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자주 사용되게 된복잡한 함의를 잉태한 애매한 또는 유연한 단어 추세를 따라가 보면, 이 단어를 유행시킨 지각의 변용의 <격리>를 지탱하는 새로운「문제화」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개념은 원래 군나 뮤르달에 의해 1963년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것은 탈공업화의 여명기에 있어서 그것이 초래한 임팩트를 경고하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뮤르달은 매우 예민하게 또는 선구적으로 탈공업화가 인구의 적지 않은 부분을 영속적인 실업상태로 몰아낼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더클래그 개념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이야기로, 저널리스트에 의한 저명한 77년 Time 지의 카바스토리에 의한 것이었다. 그 시대를 전후로 하여, 그 단어가 뒤집어 쓴 의미의 변경으 매우 의미깊은 것이며 거기에는 문ㅈ화의 양식과 지각의 변용이 받아들여져 있었음에 틀림없다. 원래 뮤르달이 언더클래스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할 때, 거기에서 이미지화된 실업자는 직장을 필요로 하며, 또 취업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는 매우 「노멀」한 것이었다. 하바드 갼즈는 언더클래그 개념이 가지는 의미의 다양함을 경제적 관점에서의 정의와 행동적 관점에서의 정의의 사이의 진동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 분류축을 사용한다면 뮤르달의 개념은 경제적 관점의 것이었다 (Gans p.34).」(p.285)

◆「지그문트 바우만은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싱글 마더와 알콜 중동자, 또는 불법이민과 학교중퇴자 등과같은 매우 이질적이며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을 총괄하여 파악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라고. 이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거기에 함의된 하나의 특성이 부상한다. 그것은 그들이 「완전히 무용(totally useless)」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그 존재가 없으면 아름다운 풍경」이 되며, 「그들이 없어도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뉘앙스이다. 그러나 그 위험은 예전과 같이 <사회>가 부담을 안아야 하는 리스크 펙터인 거슨 아니다. 서술한 바와 같이 자본의 관점에서 파악하자면, 그것은 <사회적>장치를 통해 다시 노동력 상품화해야 하는 「노동예비군」으로 자신들의 운동 가운데 포섭할 수 있을 것 같은 인구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력 상품으로서는 쓸모없는 것이다 (Bauman 1998). 바우만은 말한다. 인간의 역사상 처음으로 「빈민은 사회적 유용성을 상실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가 잉태하고 있는 결함・곤란으로서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법률이든 뭐든 「손이 미치지 않는다」. 그것은 허공에 손을 뻗는 것과 같은 필요없는 행위이므로, 그 어느것도 그러한 사람들은 치료불가능하다. 왜냐고? 그들은 병들은 생활을 자신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하고 있기 때문, 이다. 즉 이것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 모랄의 문제인 것이다. 이 언더클레스가 개인에 의한 선택으로 귀결로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행동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는 배경에는, 이러한 개인화・책임주체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p.286~287)




■토마스 J. 스구르1996→2002『미국의 도시위기와 「언더클래스」』

◆「(…)「언더클래스」논쟁은 다음 세 개의 – 때로는 중첩된다 –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다. 첫째로,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빈곤자의 태도나 가치관, 그리고 대도시중심부의 직업없는 문화와 의존성을 조정해온, 연방정부의 사회적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춘다.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한과 프랭클린 프레이저의 업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변종으로서, 불평등을 유지시키려는 데 있어서의 가족 구조의 역할이나 비혼자의 임신을 강조하는 것도 있다. 두번째로 불평등과 도시의 빈곤을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구조적 설명의 옹호자들은 경제적 구조개혁(정리해고)의 영향을 지적하는 사람들(휠리엄 줄리앙 윌슨을 비롯한)과, 계속되는 인종차별을 강조하는 사람들(게이리 오필드나 더글라스 맷시를 비롯하여)로 이분되는 경향이 있다. 세번째 설명은 정치에 초점을 맞추며 미국 사회정책의 도시 주변화, 무엇보다 1960년대 도시의 동요와 인종분쟁 이후를 강조한다. 블랙 팬더의「지나침」과 어포머티므 액션의 확충이 백인 교외화를 부채질하고 도시의 빈곤자에 대한 새로운 백인의 복수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분석에 내재하는 것은 호경기에 과열된 전후 시기와 소란으로 가득찬 1960년대 이후 연월의 대조, 즉 도시의 절정기와 도시 위기의 대비이다.
최근, 학문계는 현재의 도시 위기라는 중요한 요소를 인식해왔다. 그러나 「언더클래스」논쟁에서 거의 빠뜨려져 있는 것은 역사적 전망이다. 내가 수행한 제2차 세계대전이후 사반세기 동안의 디트로이트에 대한 검토 결과가 시사하는 것은 도시 위기의 기원은 사회학자가 인식해온 것보다 훨씬 이전이며, 그 뿌리는 깊고 복잡하며 아마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라는 것이다. (…)다만 전후 인종과 주택, 그리고 노동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힌 역사를 밝히는 것을 통해서만이, 오늘날 도시와 그 곤궁화한 주민이 놓여진 상황을 완전히 독해하고 이와 마주볼 수 있을 것이다.」(p.18~19)




■이토 다이이치(伊藤大一)20030600「영국「언더클래스」의 형성」

◆「「언더클래스」에 관한 논의를 정리하기 전에, 「언더클래스」의 효상을 신문기사를 통해 서술해 둔다. 물론 이 표상은 「언더클래스」에 관한 일측면만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 「언더클래스」는 지금까지 논의되어온 노동자상에서 크게 괴리되고 있으므로, 이후 논의의 정리를 위해서도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실업자에 대한 정부의 뉴딜 정책은 당초 손쉽게 성공했다. 이 스키마에서 이익을 얻은 당초의 청년층은 간단히 취로로 전화해갔다. 그러나 오늘날 신생 노동당의 중핵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사람들은 취로를 바라지 않고 또 왜 노동하면 좋은 지 알지 못하는, 내지는 이미 지하경제 (the black economy)에 종사하고 있는 가장 곤란한 대상에 직면하고 있다. …(중략)…「구직자」가운데에는 단지구직활동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 지 알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한번도 취로한 적이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는 취로의 기본적 규율을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법이나, 점잖은 예의, 동료에 대해 의젓한 행동, 공동된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더클래스」를 둘러싼 논의란 이러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논의인 것이다. 」(p.4)

◆「이 노동시장의 양극화라 진행되는 가운데 지금까지 제조업에 고용되어온 남성이 먼저 실업자로 기업 밖으로 배출되며, 대신 증대한 서비스 업에 흡수되는 것은 예전 제조업종에 고용된 남성이 아닌, 지금까지 비노동화되어 있던 여성이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제조업에 고용되어온 남성은 실업의 장기화를 통해 「언더클래스」로 전락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가령「언더클래스」가 이 1980년대 생긴 제조업종에서 배출된 남성 실업자로 한정되어 있다라한다면 결국은 일시적인 문제이며 20년 지난 현재 영국에서 뜨겁게 논의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즉 일단 성립한 「언더클래스」는 20년 지난 현재에도 「언더클래스」로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바꾸자면,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제조업종에서 실업자를 만들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호경기순환과 관련없이 「언더클래스」를 신규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유입하는 루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신규로 「언더클래스」로 유입한 루트는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나「스테이터스 제로(Status Zer0)」라 불리는 신규학교졸업자이다.
 이 「니트」나「스테이터스 제로」라 불리는 젊은층은 16세에 의무교육을 종료한 후 「계속교육(Further Education)」과정으로 진학도 하지 않고, 노동시장으로 참가도 하지 않으며, 그리고 각종 직업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젊은층이며, 현재에도 16-18세의 연령층의 약 10%를 형성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니트」나 「스테이터스 제로」라 불리는 젊은층은 교육관련 통계에도, 노동관련 통계에도 보족되기 힘드며, 그 실태를 둘러싼 논의가 있으며, 또 이 문제는 특정한 지역이나 학교, 에스닉 마이너리티 등의 특정한 그룹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 또한 16-18세 시점에서 「니트」나「스테이터스 제로」를 경험한 자는 21세 시점에서도 실업 상태에 놓이기 쉽다는 것이 보고되고 있으며 심각한 문제라 여겨지고 있다. 」(p.8~9)

◆「사실 1979년에 16세 시점에서 취로하고 있는 남성의 약 40%가 제조업관련 직종에 취업하고 있으며거기에서도 제조업종이 「학교에서 노동으로」의 이후 과정에서 주요한 루트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젊은층 노동시장의 붕괴로 저기능・저학력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하고 또 「노동자계급 문화」를 재생샌했던 이 루트는 상실되었다. 대신 그들에게 주어진 루트는 처음부터 실업자가 되던가,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언더임플로이먼트」 (underemployment)라 불리는 불안정 고용 가운데 단기적 취로와 실업을 반복하는 루트이다.단기적 취로와 실업을 반복하는 가운데 취로의욕을 상실한 층과 항상적인 실업상태에 놓여진 층이 「언더클래스」의 특징을 몸에 익히게 되는 것이다. 」(p.10)




■시부야 노조미(渋谷望)20031025『혼의 노동 네오리버럴리즘의 권력론』청토사

◆「한편의 극에서는 자본에 요청된 채로, 자기의 삶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끊임없이 생활의 재편에 대해 자기의 신체, 정신, 김정을 플렉시블하게 계속 적응시키는 것을 정하려 하는 계급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의 극에서는 빈곤 가운데 배제되고, 공포를 환기시키는 본보기만으로 사용되는 「언더클래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겨우 인도주의적 실천이 치열하게 맞부딪히고 있다면, 우리들은 도대체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p.96)

◆「법의 정지상태는 「예외상태」로서, 법이 유지되고 있는 통상상태와 구별된다. 도시의 언더클래스 지역은 이러한 의미로 진실로 예외상태에 있는 – 게다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일상화된, 항상적인 예외상태이다. 거기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밖으로 나오로 수단이 없는 젊은이들은 살기 위해 법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것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단속하는 측은 법의 우회를 긴급사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한다. 경찰에 의한 법의 경시는 경찰폭력(폴리스 브루탈리티)의 온상이 된다.
 이러한 항상화한 예외상태는 거기에 사는 자의 삶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 변경을 요청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갱스터 랩과 함께 융성을 보인 90년대 전반 이른바 「깡패물」이라 불린 일련의 힙합 영화는 이러한 사회정세를 배경으로 높은 위험이 소용돌이 치는 「언더클래스」커뮤니티 「(하이)리스트사회」에서의 일상생활을 그리고 있다. (…)」(p.112)




■아지트.S.바라/프레드릭 라뻬르2004→2005『글로벌화와 사회적 배제』쇼와당(昭和堂)

◆「자유주의의 페러다임은 빈곤의 주요한 원인을 개인의 결점이나 행동상의 결함에서 찾아내어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상정하고 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규범적 견해에 따르면 배제된 사람들의 두 가지 상이한 집단이 존재한다. 첫번째 집단은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 또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장애를 가지거나 불리한 입장에 놓여지거나 해서 필요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두번째 집단은 공적 부조가 초래한 부의 인센티브 효과 때문에 사회적・경제적 생활에 활발히 참가할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고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앵글로섹슨의 사회적 배제 관점은 프랑스의 그것과 비교하면 꽤 물질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이라 말할 수 있다. 프랑스의 관념은 보다 전체론적이며 사회적인 연계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문맥에서 머레이는 영향력 면에서 지대함과 동시에 다양한 물의를 자아낸 그 저서에서 언더클레스는 국가 개입의 결과이며 공적 부조를 일보다 매력적인 것으로 하여 의존 문화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논의를 발생시켰다[Murray,1984]. 언더클래스는 이탈한 제 개인이며, 그들은 복지국가의 정책에 대해 합리적으로 응답하고 행동한다고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정책은 복지국가의 축소를 통해 사회보험 시스템이 만들어낼 본래의 효과와는 상이한 왜곡된 효과를 극복하느 ㄴ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차별을 방지하거나 개인이 스스로 잠재력을 살리려 하는 것에 지원하거나 이탈한 가치관이나 행동에 의해 특징지어진 사람들이 아닌 현실에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유한한 자원을 집중적으로 제공하거나 하기 위해서만이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p.13)

◆「「언더클래스」라는 용어는 뮤르달에 의해 만들어졌다[Myrdal,1963,p.10; 역,24페이지]. 그것은 구조적 실업의 발생과, 「일반 국민으로부터 결국 절망적으로 구별되며 국민으로서의 생활, 희망, 그리고 성과의 분배에 참여할 수 없는」사람들의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뮤르달은 경제적인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것과 연계된 구조적인 요인을 강조했다. 그러나 1980년대 「언더클래스」라는 용어는 동시대 미국에서의 사회적인 현안 문제를 분석하기 위한 주류가 된 구조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논쟁은 보수주의의 견해로 지배되어 왔으며, 그것은 개인의 행동과 문화적 장애 – 이른바 「개인원인론」-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Aponte, 1990,pp.132-3]. 이 논쟁은 피구제궁민과 위험한 계급에 관한 19세기 빅토리아조 시대의 논쟁과 현저하게 유사하다. 실제 그것은 포기, 소극성, 낮은 향상심 의식을 포함한 일탈된 행동이나 정신적 결함을 따지면서 희생자를 비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사회적 가치나 사회적 목표에서 볼 때 마지널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Auletta,1982]. 따라서 언더클래스는 「그들이 놓여져 있는 상황이 아닌 그 상황에 대한 그들의 한심스러운 행동에 의해 정의되는 듯한 빈곤자의 일정한 유형」이라 생각되고 있다[Murray,1990,p.68]. 이 중요한 특징은 경제적 궁핍이 아닌 행동의 결함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에서 언더클래스가 출현한 것은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변화가 아닌 할 마음을 잃어버린 빈곤자, 노상 범죄자, 사기꾼, 정신적 외상(트라우마)를 입은 자들에게 공유된 독특한 언더클레스 문화의 결과이다 [Auletta, p.188].」(p.127~128)

◆「결론을 말하자면 새로운 사회적 논점에 대해 논의하는 데 있어 「언더클래스」라는 언어의 적절사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이 언어는 미국에서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어 왔지만 학술적 논의에서는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배제」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논의나 연구 프로그램으로에 도입되면서 미주에 보급되었다.」(p.136~137)

◆「프랑스에서의 케이스 스터디를 기초로 우리들은 직업의 증대가 불충분한 경우에는 마지널화된 사람들의 계급이나 언더클래스를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것을 밝혔다. 직업이 실제로 증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게 빈곤과 연계된 「질이 나쁜」직업이다. 실제 임금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고 있는 사회의 위기 = 장기실업이나 불안정한 형태의 직업의 증대 – 는 선진공업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통합의 형태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p.152)

◆「파신은 빈곤 발생이 제 가지 표상을 일으킨다고 적고 있다[Fassin,1996b,p.263]. 즉 프랑스의 배제, 미국의 언더클레스(모두 4장에 논의되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마지널화이다. 그는 이러한 개념이 사회적 공간의 세 가지 배치관련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즉 배제는 「내/외」에, 언더클레스는 「고/저」에, 그리고 마지널화는 「중심/주변」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의 배제를 둘러싼 논의를 이어, 몇 몇의 연구자들은 배제와 마지널화와의 유사성을 시사하면서 서구의 라틴아메리카화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배제와 마지널화라는〕두 가지 현상으 ㄴ노동시장의 인포멀화와 임시고용의 확대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두 가지 현상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서구, 북미의 경우에는 「새로운 빈곤층」이라 불리는 인구의 일부분은 우세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어떤 시점에서는 그 일부로서 포섭되어 있었지만(그들은 「내면」에 있었다)지금에는 거기에서 배제되어 있다(그들은 「외부」에 있다). 다른 한편, 라틴아메리카나 기타 발달도상국에서는 도시빈민층은 도시의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처음부터 결코 통합되어 있지 않았던, 농촌에서 예전에 돈벌러 올라온 노동자이다.」(p.183)




■(사)부락해방・인권연구소편20050425『배제되는 젊은이들』해방출판사

◆「「위기라 말해도, 그것은 본인이나 부모의 책임이다.」본서의 내용에 대해 이렇게 받아들이는 방식도 있지 않을까, 라는 염려를 우리들은 가지고 있다.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가지 않고 놀기만 하고, 일도 오래 계속하지 않고 빨리 섹스해서 임신하고 만다. 부모도 방치한다. 부모의 생활도 문제가 있다…그러한 시각과 셋트가 되고 있는 것이 그/그녀들의 놓여진 상황은 「노력하지 않는 자의 자업자득이며 복지급부나 취로지원 등은 세금의 낭비이다」라는 비난이다.
서구에서는 80년대부터 확산된 「언더클래스론」은 그러한 논조를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본인,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고 「복지의존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비판한다. 실업중인 젊은이, 어린 미혼모 등이 그 주요한 타겟이었다. 일본에서도 「노력」한 끝에 생활의 안정을 확보하고 유지해온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사고방식이 뿌리깊게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홈리스에 대한 관점에 그러한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학교에서 열심히 한 자가 성공한다」는 사고방식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지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앞서 제시한 일련의 부정적인 인상이 남겨질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에서 몇 번이고 지적된 논점을 반복하지만, 「개인책임론」은 거둬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두고자 한다. (…)」(p.203)


*이 파일은 문부과학성 과학연구비조성금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기반(B)・과제번호16330111 2004.4~2008.3)의 성과/를 위한 자료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http://www.ritsumei.ac.jp/acd/gr/gsce/p1/2004t.htme

UP:20130204 REV: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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