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즈나 피터 싱어 등 현대의 윤리학은 우리들의 생을 긍정하고 있는가? 거기에 살 가치가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는 숨겨진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닌가? 장애학의 관점에서 윤리학을 재검토, 무조건적으로 생을 긍정하는 윤리를 구상한다.(출판사 소개)
■편집 담당자에 의한 저자소개
저자는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오사카부립대학(大阪府立大学))씨, 다테이와 신야(立岩真也,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씨 밑에서 실력을 연마한 기예의 윤리학자. 자신이 신체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장애인운동에 관계하면서, 살아가기 힘든 자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비장애인의 윤리'를 철저히 되묻고 있다(사카모토(坂本))
■목차
서장 〈인간〉을 묻는다는 것의 가능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5
제1장 장애학의 관점 15
1 장애학이란 무엇인가――장애의 의학모델과 사회모델 16
2 일본 장애인운동의 역사 32
3 우생사상과 장애인차별 50
「[…]이상으로 기술한 것에 대해, 올 3월에 간행된 아베 아키라(安部彰)『연대의 인사ーー로티의 희망의 사상』(生活書院)이 있다. '가까운 타자에 대한 공감'(의 점차적인 확장)이라는 (로티의) 노선을 검토하고, 흄(David Hume)을 다시 읽으며, '타자의 고난(受苦)의 경험'이 대치된다. 거기에 답을 찾아낼 수 있는가, 읽어 보길 바란다. '궁극의 선택'이라는 문제설정('구명 보트 문제' 라고도 불리는) 자체를 전형적인 '예제(例題)'로 제시해 버리고 있는 (생명)윤리학 등의 발상 자체가 거꾸로 전도된 것이라는 등의 정당한 지적은 올 6월에 간행된 노자키 야스노부『생을 긍정한 윤리에』에 있다. 함께 읽어보시길. 」
장애학을 분석의 단면으로서 윤리학과 철학을 따져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런 접근은 의외로 많지 않다. 무엇보다 다테이와 신야의 사회학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 보다 철학에 가까운 것 일 것이다. 일본 장애인운동을 음미한 뒤 우생사상, 센, BI, 피터 싱어 비판, 푸코, 데리다를 사고하면서 마지막에는 저자가 말하는 '생의 무조건적인 긍정'이라는 윤리적 명령에 이른다. 생의 무조건 긍정이라는 철학이라는 제창되면서 이 책은 끝이 나지만, 그 내실에 대한 검토는 차기작 이후로 남겨졌다고 할 것이다. 그 앞을 향해 더욱 매진해 가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생의 무조건 긍정'이 지닌 윤리적인 '명령'은 지극히 강한 주장일 것이다. 이 언저리는 꽤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칸트의 정언명령에 비견되는 이 명령은 현실문제에 대한 지침을 주지 않고, 단지 타자가 다가오듯이 신앙과 같은 차원에서 일컬어지는 것이다 라는, 저자의 '생의 무조건 긍정'이라는 주장은 그것이 명령으로서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임펙트를 가지는 셈이어서, 그 지점에서 퇴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괴롭겠지만, 그 지점에서 한 발짝도 물러 나지 않고 빼지 않고 서서 버티는 것이 윤리일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인 '평등'은 오히려 불평등한 것이 아닌가? '특별'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하든 필요한 배려는 있다. 이와 같은 의문에 노자키 야스노부는 명확히 대답하고 있다.
노자키는 베이직 인컴이란 '복지적 급부를 선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즉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것' 이다(노자키 2011:110) 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분명 의식주 등에 대한 니즈(요구)는 보편적인 것이다. 누구라도 굶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더위나 추위를 조절하면서 생활 할 권리가 있다. 단, 니즈는 어디까지 개별적인 것이다. 우리들이 '니즈를 충족하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승인할 수 있어도,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니즈에 관해서는 개별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틀림없다(110-111페이지).
…복지서비스에 있어서 보편주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복지(well-being)라는 것이 사람 개개인에 의해, 사람에 따라 어떤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좋은가는 각각 다르다고 한다면, 복지서비스는 당연하게 선별주의여야 한다. 개개인의 차이를 조사하는 것을 스티그마화 해 버리는 우리들의 사회야 말로 다시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힘을 빌려 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112페이지).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선을 그을 것인가' 이며, 선을 긋느 것 그 자체의 타당성은 아니다. 선을 그은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차별을 할 것인가, 필요한 배려를 제공할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검토되어야만 한다(p.2)
'요즘은 가벼운 소설(라노베)이 좋아서 『끝나지 않는 여름』이라든가,
뼈대가 굵은 평론이나 철학이나 사상은 아예 읽고 있지 않았으므로,
머리가 좀처럼 이쪽에 향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굉장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존의 리뷰에서는 철학서가 아니다라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철학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명학은 철학이며, 게다가 삶의 태도이며, 학문이기도 하다.
철학이 왜 묻는 것인지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해서 질문을 하는,
그것과 동일하게, 생의 무조건의 긍정을 먼저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본서가 철학서인 것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라고, 어려울 것 같은 것을 말해 보거나 한다.
단지, 다테이와(立岩)씨인 것 같은 기술방식이 여기 저기 있어, 어렵네요.'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의 무조건 긍정' 이라는 입장이 정의이며, 이것이야말로 윤리적 명령이라고 말하며, 1 모든 생은 무조건적으로 긍정된다. 2 생에는 긍정되어야 할 생과 부정되어야 할 생이 있다. 3 모든 생은 무조건적으로 부정된다는 입장을 상정해서, 공리주의자는 '목숨의 질'을 논거로 2를 정당화하지만, 1부터 3까지 입장의 차이는 '선긋기의 장소'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다 라고 간파한다. 적어도 2를 지지하는 자는 니힐리즘적인 입장의 3을 거부하면서, 1이라는 입장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피해, 2를 정당화 하고 있지만, 이 입장에서는 롤즈, 싱어 등의 현대 윤리학도 결론은 가능한 것으로부터 찾아내고 있는 것 뿐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일본의 장애인운동이나 의료모델, 사회모델의 해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