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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와 여백의 생(生)정치

고이즈미 요시유키(小泉 義之) 20090805 이와나미(岩波)서점,『사상』1024(2009-8): 20-37.
[Japanese]


고이즈미 요시유키(小泉 義之)  20090805 「잉여와 여백의 생(生)정치」『사상』,이와나미(岩波)서점,162p. gsce ph

■내용

・목적
네그리는 자본에 의한 실질적 포섭의 한 가운데에서야 말로 – 현대 선진자본주의 제 국가에서야 말로 –생산적 차원에서 적대성 (=「별도의 과잉」)이 생겨나고, 밑에서부터의 생정치로서 사회화・정치화된다고 한다. 관련된 네그리의 스킴의 타당성을 개호보험제도와 개호노동의 검토를 통해 검증한다.

・개호보험제도의 설계이념
후생성의 인식에서는 가족개호는 사회에「손실」을 초래한다고 한다
관련된「손실」을 축소하기위해서도, 따라서 개호는 사회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개호보험

→(아베(安部)메모)불명:제3에 들어진「임금노동생활과 가정생활의 외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특정의 「사회생활」(21상단)

후생성의 관점이라면 개호는 (아무리 사회화된다 하더라도) 원래 비생산노동이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경제 적 이윤을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후생성은 개호를 가족개호에서 분리시킴으로써「손실」을 저감시키려는, 즉 간접적으로 생산노동에 기여하는 노동(=재생산노동)으로서 재편하려고 하였다. 또 고령자의 연금(=구매력)을 국민경제적으로 유효이용하려고 하여「사회적 연대」와「세대간연대」에 근거한 사회보험방식으로 전문직에 의한 개호를 제도화하려고 하였다.
먼저 이것이 개호보험제도(개호의 사회화)의 정체이다.
또한 관련 노동관은 고전파경제학과 맑스 경제학에 따르고 있다.
그것에 의한다면, 케어 노동이라는 비생산노동을 「부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측의 기쁨등에 호소해서 가치부여하려고 하는 듯한 논의는 강변임에 분명하다.
네그리에 따른다면 이 케어라는 비생산노동을 생산노동으로 이론적으로 정련하고 싶지만, (뒤에 보는 바와같이) 그것은 잘 되지 않는다. 이론적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잘 되지 않는다. 실제 보험과 세 방식의 개호보험제도의 재원을 생각해보면, 개호노동의 보수가 기존의 소득에 기생하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역시 개호노동은 비생산 노동이라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A)〈현대 자본주의는 국가나 군대를 비롯한 비생산부분이 없어서는 성립되지 않는 다〉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주목이 네그리의 노동관을 지탱하고 있다.

・개호보험제도의 여백
→(아베(安部)메모)불명:여백의 함의

2005년 개호보험법개정시「개호예방」의 규정에는 개호의 사회화의 본심이 거리낌없이 드러나고 있다.
즉 그것은 수급자(=고령자)의 사회복귀(생산에 대한 복귀는 물론 아니다)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그들「불활용」이며「폐용」되고 있는 인간이 기업이나 사회생활(가족등)에 「손실」을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22하단-23상단).

토다(刀田)는 폐기물 처리 서비스에 대해 그것은 환경을 양호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비물질적이며 사회적인 생산노동이라 한다.
확실히 그 계약에 규정된 「노동」은 「폐기물의 처리」이다. 그런데 그 「노동력」은 (주변주민과의 협동도 받아내면서)그 이외의/그 이상의 생산물(양호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계약 이상의 잉여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호노동에서 비슷한 추론은 과연 가능한가.
우선 성립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네그리는 그 잉여에 대해서 착취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자 한다.
그러나 네그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잉여가치가 진정으로 「불활용」이며 「폐용」된 피개호자(고령자)로부터 발생하는 효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비물질적 노동
비물질적 노동:가치물형성+가치물생산(즉 가치물형성≠가치물생산)(네그리)
생산된 것은〈사회적인 것〉

→(아베 메모)주16「「사회(적)」인 형용사가 부여된 것의 총칭. 예를 들어, 사회국가, 사회보장, 사회민주주의, 사회인 등의 총칭」이라 되어 있으나 조금 불명확. 마찬가지로「사회화된 생산형태(성)」(네그리『전복의 정치학』)도 불명확.

논점:네그리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노동의 전환을 일으킨다고 보고 있지만(고이즈미의 기술에서는 그렇게읽을 수 있다), 그 인식은 정당한가. 그 선후 관계는? 서비스 노동으로의 전환(실질적 포섭)은 오히려 자본의 측이 준비한 것은 아닌지?

어찌되었던 비물질적 노동은 <사회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 가치물은 과연 가치량으로서 계량되어야 하는 가에 대해 전망이 보이지 않는 다. 즉 누가/어느 정도 기여한 것인가, 가치와 잉여가치는 과연 구별될 수 있는 가가 불명확한 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잉여노동」「임금/이윤」등 일련의 개념은 무효하냐라 한다면, 네그리에 따르면 「한정적인 유요성」은 있다.
왜냐하면 비물질적/사회적 노동자의 다수는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낮은 임금 밖에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이에 부응하는 형태로 경제적 개념을 다시 배열해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론적 곤란함이 있다.
사회적 노동은 세 가지 이유에서 임금에 근거한 연대가 불가능하다(27). 동일한 것을 자본 측에서 다시파악한다면 B)〈사회적 노동은 역시 비생산적이며 기생적인 노동이고, 따라서 높은 임금은 못줘요, 라는 것이 된다. 즉「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것 만으로「노동력」을 공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잉여노동도 잉여가치도 창출해 내지 못하는 것이 된다>. 즉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이득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착취자로부터 배당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네그리는 이 애로를 돌파하려고 한다.
즉 A),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이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것>을(B)의 스팀에서는 임노동이아니라는 의미에서)「무상」으로(재)생산하는 자에 기대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그 다음에, 또 네그리는 찾아헤맨다.
즉 B)로 다시 돌아간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복지국가에 대한 평가이다.
기업=자본이 아닌, 국가=총자본이 사회적 노동자를 포섭하고 이에 보수를 지불한다고(예를 들어) 하면, 그 보수는 각종 연굼과 닮아있다. 장애인 연금은 실제로 그러하다.
이리하여 C)〈복지국가에서 복지사회로의 「진보」를 이렇게 파악할 수 있다면, 고령자를 장애인과 동일하게취급하는 것에 반사적 효과로서 고령자 개호에 대한 사회적 임금이나 보증소득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B)를 초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련된 사회적 노동의 신장(복지국가에 의한 가시적이며 현실적인「섬들」 - 의료・개호 – 의 제도화)는, 리버럴한 국가(리버타리언 국가?_나 사회주의적 국가와 적대하게 될 것이다(주28도 참조).

(아베 메모)→불명:왜 적대하는 가. 리버럴=리버테리안이라 한다면 그것은 알 수 있다. 사회주의적 국가와 적대하는 것은 통제적 경제이기 때문인가?

・여명의 생정치
의료라는 비물질적 노동에 소박한 가치형성 스킴을 적용할 수는 없다.(30하단)
그렇지만 노동과정만을 살펴봄녀다면 의료노동이라는 가치물생산에는 환자의 협력이 불가결하다고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환자도 또 입원생활・환자생활이라는 사회생활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소비자 성형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변호사의 어날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료노동자의 생산물은 역시 「의료」라 생각해야 한다. 즉 읠서비스에 그 대가가 발생한다. 그러는 한에서 환자도 또한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로서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것들을 정리하자면 의료노동이 생산하고 있는 것은
①의료서비스(그 자체)
②환자와의 협동을 바탕으로 한 사회생활
이다. (노동과정은 이중화되어 있다고도 해도 좋다)
여기에서 ②를 확장하여 의료주변 노동자・환자회 등도 하나로 하여 「의료의 사회화・국민화・국가화를「유지하고 추진하고 있다」(31하단)고도,「의료노동은 의료화를 끊임없이 촉진하고 의료의 과잉을 생산한다」(동)고도,「의료 자본은 거기에 포섭되는 인간을 일률적으로 노동력 상품화하는 것이 아닌, 거기에 포섭되는 인간을 사회화・경제화・주체화한다」(32상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것은 의료 뿐만 아니라 개호에서도 적용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네그리가 노리고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러한 라인이다. 즉 자본에 의한 사회의 실질적 포섭이란 관련된 사태이며, 거기에서의 「생산적 차원에서의 적대성」, 마찬가지지만「밑으로부터의 생정치」의 부흥이란C)와같은 움직임이다, 네그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네그리의 이론적 도달점임과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네그리의 「밑으로부터의 생정치」는 임노동의 거부(=임금노동외의 노동에 의한 생활)에 만족해 하며 생활 전체를 관리통제하려는 생권력에 저항하는 멸도의 생정치(의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의료・개호거부라는 절대적 자유, 및 그 실천이야 말로 가치형성하고 사회생활을 생산하려고 하는 사회적 노동(의 가능성)이다.

■목차

■인용

■서평・소개

■언급


UP:20130117 REV:
◇◇「리츠메이칸대학대학원(立命館大学大学院)・첨단종합학술연구과(先端総合学術研究科)」  ◇「철학」  ◇신체×세계:관련서적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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