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 나오코(宮地 尚子) 20071219 『환형섬=트라우마의 지정학』,미스즈 서방(みすず),228p. ISBN-10: 4622073390 ISBN-13: 978-4622073390 \2940 [amazon]/[kinokuniya] ※ beteru m ma t06 v04
■내용
・내용소개
전쟁부터 아동학대에 이르기까지, 트라우마를 초래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이러한 사건들은 그렇지만 언어화되어 왔다. 그러나 말로 표현될 수 없음에 틀림없을 트라우마를 전달가능한 언어로 한다는, 이 모순은, 발화자도, 듣는 사람도 동요시킨다. 「왜, 당신은 (혹은 나는) 그 문제에대해 말할 수 없는가」「더 비참한 사람도 많지 않은가」로 시작된 추궁은 끝이 없으며 서로간 감정을 동요시키고,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에서 생각해보고 싶다.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가, 공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피해당사자, 지원자, 대변자, 가족이나 유족, 전문가, 연구가, 방관자 등등은 각각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전서 『트라우마의 의료인류학』을 잇는 본서에서 저자는 「환형섬」을 모델로 가해자도 포함하여 트라우마를 둘러싼 관계자의 포지셔널리티와 그 역동을 체계적으로 그렸다. <내해(内海)><외해(外海)〉〈경사면(斜面)〉〈능선(尾根)〉〈수위(水位)〉〈바람(風)〉등 용어를 구사하면서 트라우마를 둘러싼 전체상과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한 첫 시도이다. 클라이언트와 날들을 함께 하는 의사이며, 마이너리티 문제에 관여하는 연구자인 저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트라우마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서는 실천과 이론을 위한 도표가 될 것이다.
・「MARC」데이터에서
「환형섬」을 모델로 피해 당사자부터 연구자, 가해자까지 트라우마를 둘러싼 관계자의 포지셔널리티와 역동을 체계적으로 그린다. 트라우마 전체상과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한 실천과 윤리의 도표가 될 만한 한 권의 책.
■목차
1 트라우마에 대해 말한다는 것 – 환형섬이라는 모델
시작하며/서바이벌 맵/발화자가 있는 섬, 환형섬/원추형 섬과의 비교
2 <내해>에 가라앉는 피해자들
범죄피해의 트라우마와 법적 구제/ 환형섬에서 움직이는 힘 - <중력>과 <바람>/ 환형섬의 특징 - <수위>/ 사회운동과 환형섬
3 환형섬의 생성과정 – 성적 괴롭힘 재판에서
일본 최초의 성적 괴롭힘 재판/ 피해의 경과/ 높은 <수위>/ 환형의 형성/ 시대배경과 <수위><파도>/ 지원자와의 간극/ <바람> - 일반론/ <바람> - 쾌청한 경우/ <섬>
4 복수의 환형섬 – 성적 괴롭힘 재판에서 2
별개의 섬 그림자/ 또 하나의 섬 그림자/ 몇 개의 환형섬/ 달변인 발화자를 낳는 조건/ 달변의 상대성
5 복수의 이슈화와 복합적 아이덴티티
환형섬과 아이덴티티/중층차별이나 복합차별/여러 개의 환형섬을 그린다는 것/심각함의 비교/ 복합적 아이덴티티
6 탈 아이덴티티와 아이덴티피케이션
탈 아이덴티티 론/ 「일부압도성」과 「일부 수용불가능성」
7 포지셔널리티의 질문 던지기
포지셔널리티를 둘러싼 논의/ <내측 경사면>에서 <외측 경사면>으로의 질문 던지기/상이한 이슈화와 복수의 환형섬/ 중립이나 보편성이 가지는 편견/ 포지셔닐리티의 질문 던지기는 <외측 경사면>을 향하나 <외해>는 향하지 않는다/ 포지셔닐리티의 질문던지기는 <외측 경사면>의 사람을 <내해>로 밀어낼 수 있다/ 복합차별이나 중층차별/ 가시적인 카테고리나 집단귀속에 의한 포지셔닐리의 질문 던지기의 한계/ 「정당함」이 반드시 문제인 것은 아니다/ 「구제할 길이 없는 무지」와「구제할 길이 없는 유지」/ 아리스 포커의 「투기적 동일화」
8 가해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해자의 위치/가해자는 사라지고 거기에는 없다/가해자는 그 장에 있다/꼭대기에서만 보이는 상처/우물 바닥/외상적 관계/ 가해자의 속죄와 피해자의 쓸쓸함
9 연구자의 위치와 당사자 연구
연구자의 위치/ 활약・귀향의 장・논문작성/당사자연구
10 환형섬과 지의 역할
연구자・전문가・지식인의 역할/ 학문영역에 따른 차이/역할의 악용이나 박해/악용할 수 없는 지는 없다/ 새로운 지식인 상/숨겨진 당사자 연구 혹은 추상화의 효용/마지막으로
후기
참고문헌
■인용
본 서에서 다루는 것은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는 것의 가능성, 그리고 말하는 자의 포지셔닐리티의 문제이다. p.3
말하면 할 수록 「입이 얼어붙는다」라는 생각에 휩싸인다. 주위의 비판이 신경쓰이고, 말을 삼간다. …하지만 그것은 트라우마 그것의 망각으로 이어진다. 살아남은 자, 말할 능력을 가진 자, 지원자나 관심을 가지는 자, 연구자나 전문가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은, 일어난 사건이 불가시화되고 당사자 존재가 기억속에 묻혀 버리는 흐름을 가속화한다. 트라우마의 기억을 사회에서 말살시켜버리는 것을 더 쉽게 한다.
p.4-5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려 한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독특한 지형을 초래한다. 본고에서는 그 지형을 「환형섬」이라 파악하고, 그 곳에서 발생하는 역동을 묘사하고자 한다. 물론 이 공간이란, 비유적인 의미의 공간이다. 「환형섬」도 비유이다. 그러나 물리적 공간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할 때, 그것은, 심적인 거리를 둠으로써도 인간관계를 끊는 것으로도 가능하나,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짐으로서 얻는 효과는 작지 않다. p.6
・<풍력>, <바람>, 블랙홀, <수위(水位)>
<중력>이란 트라우마가 가지는 계속적인 영향력, 피해를 당한 개인에게 초래되는 장기적인 트라우마 반응이나 증상, 그것이다.
…이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습벽행위, 자해행위나 자살기도(베셀. A. 반데아. 콜크 외 편/니시자와 사토시(西澤哲)감역『트라우마테크 스트레스』성신서방(誠信書房), 2001). 피해자는 <내측 경사면>을 기어올라 바깥 쪽을 향하려 하나, 소모된 체력을 더 소모할 뿐이며, 그 곳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다. <외측 경사면>에 있는 사람에게도 <중력>은 작용한다. 트라우마를 받은 사람과 접촉하고 트라우마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증상(대리외상)을 초래한다. …아직 가벼울 때 빨리 도망쳐 나가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피해자와 똑같은 정도의 상처를 받고, <능선>을 넘어 <내측 경사면>에 방황하게 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p.28
한편 <바람>이란, 트라우마를 받은 사람과 주위 간에 일어나는 대인 관계의 혼란이나 갈등 등의 역동을 의미한다. …<바람>에는 예를 들어 피해자 동료 사이의, 장애나 증상이나 트라우마의 「심각함의 비교」가 있다. p.28
서바이벌 길트(생존자 죄의식)은, 대인관계라는 의미에서는 <바람>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상대가 이미 그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및, 피해자 개인의 마음에 새겨진 깊이를 생각한다면, 대인 수준을 넘어선 트라우마의 보편적 반응이며, <중력>이라 파악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차라리 <바람>이나 <중력>과는 별도의, 중심이 블랙홀을 향하는 구심력, 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는 편이 적절할 수도 있다. p.29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의 부인이나 무이해의 정도를 의미한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높이기 쉽고 책망을 받거나 의심을 받는 것 없이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제대로 받아들어 주거나 지원해 줄 수 있는 경우는 <수위>가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수위>가 낮으면, <내해>는 좁게 되며, <경사면>의 먼젹도 넓어진다. <수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회의 에스토, 주변 사람들의 감수능력, 응답능력이다. p.32
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력>이나 <바람> 등 내부 혹은 외부를 향한 힘에 맞서서 당사자나 비상자가 섬 위로 올라서서 발언을 계속하는 것이다. p.34
방심하면 언제라도 <수위>는 상승한다. <중력>이나 <바람>에 휩쓸려 안쪽의 사람이 <내해>로, 바깥족의 사람이 <외해>로 내쫓기게 되며, 섬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것은 가해자의 승리가 된다. p.37
・운동
하루노는 재판 종결 후, 재판을 함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용기가 없다고 버려진 피해자의 존재를 알았을 때 충격을 받고, p.47
자신이 재판을 일으켜서 「내 뒤를 이어라」고 무언 속에 모든 여성장애인을 강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p.48
내부의 분열이나 분단, 비교나 버림 등, 「내부 다툼」이라 불리는 현상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 「있어서는 안되는 것」, 그 운동의 결점이라고 파악하는 방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나 가해자의 공격이나 압력이 당사자나 지원자 사이의 갈등으로 전화되고,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표출되는 게 자주 있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p.59
・발언
무엇인가 자신에게 절실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히고자 할 때, 그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은 누가 「동료」인가, 누가 「아군」인가, 누가 (잠재적)「적」인가, 누가 자신보다 더 비참하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당사자인가를, 어딘가에서 측량하게 될 것이다. 의식화의 정도는 다양하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목소리를 낼 때, 누군가에게 목소리가 닿게끔 하려 할 때, 자신 주변 사람을, 그 이슈 쪽으로 끌어당겨 「동료」인가, 「아군」인가, 「적」인가를 다시 배치하는 행위는,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p.95
「외부인」이라 하더라도 「아군」이라는 위치에 있다는 것, 그것이 <외측 경사면>에 서 있다는 것이며, 지원자의 이러한 특징을, 지원자 자신도 당사자도 인식함으로써 이러한 불행한 것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p.96
・포지셔널리티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서 발언하고 있는 가를 묻는 아이덴티티의 정치와 더불어, 포스트 콜리니얼적인 상황에서 자주 문제가 되며 격렬한 감정이 들어간 논쟁이 되는 것이, 어떤 문제를, 누가, 어떤 위치에서 누구를 향하여 발언하는 가, 라는 포지셔널리티의 문제이다. p.127
포지셔널리티에 대해 토론을 할 때 자신을 추궁당하는 측, 즉 <외부 경사면>으로 상정하는가, 추궁하는 측, 즉 <내부 경사면>으로 상정하는 가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은 크게 상이해 진다. p.129
당신은 나와 똑같이 <내부 경사면>에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외부 경사면>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보는 방식에 따라서는 <외해>에서 방관하고 있을 뿐일 지도 모른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들을 억압하고 힘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p.133
아이덴티티란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파악방식으로도 가능하나, 뒤집어 보면, 무엇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라는 방식도 있다. 왜 우리들은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여성의 일상생활을 알지 못하는 가. 알려고도 하지 않는가. 포지셔널리티의 문제는 그러한 자성을 촉구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므로, 무지 그것이 죄인 것은 아니다. 다만 지식인의 비대칭성은 구조적 폭력을 초래한다. 발하는 인간은 적어도 자신이 무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며, 알지 못하고 말해서는 안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일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포지셔널리티가 추궁되는 발화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유지(有知)」이거나 「어쩔 도리가 없는 과지(過知)」라고도 불러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p.145
・베테르의 집
일단은 해방이다. 우라카와 베테르의 집『베테르의 집의「당사자연구」』(의학서원, 2005년) p.182
에는 학문의 원초적인 즐거움과 같은 것이 넘치고 있다. 「대체 내가 어떤 법칙이 지배되고 있는 가」그것을 알고 싶어서 「정신장애」나 「살아가는 고충」을 안고 있는 당사자들은 「모험심」을 두근두근거리면서, 눈을 빛내면서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문제와 사람간의, 분리된 작업」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병명을 붙이다」라는 이름다시 짓기 작업, 「고통의 패턴, 프로세스, 구조의 해명」, 실증, 검증과 연구는 진척되어 간다. 그것은 「환각이나 망상 등 불쾌한 증상에 예속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고통의 주인공이 되는」것이다. 「「묻는다」라는 행위를 획득하는 것」이 어느 정도 엠파워먼트를 초래하는 것일까, 역으로 말하자면 「전문적 지」가 얼마나 폐해를 초래하고 전문가의 퍼터널리즘이 얼마나 당사자의 힘을 빼앗아 왓는가가 여기에는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처음의 해방감이나 고양감 뒤에는, 오랜 혼란과 질식이라는 시기가 다가올 지 모른다. 특히 「전문가에게 대항한 연구」를 지향하고, 자기 자신이 전문가가 될 것이라 결심한 당사자는 학문이라는 구조 그 자체에 대한 굴복이나 억압성, 학문의 「장」이 가지는 배타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활약」할 것인가, 어디에 최종적으로 몸을 둘 것인가, 등 어려운 선택에 자기 자신이 분열 될 것 같이 되어 버릴 수 있다. p.183
・지의 역할
(1)<바다(海)>만 보였던 곳에 환형섬을 띄우는 계기를 초래한다, (2) 이슈화를 위한 개념이나 용어를 만들어내고, 고리를 만들기 쉽게 한다 (3) <내해>의 크기와 깊이를 특정하고 측정한다, (4) <파도칠 때>의 징후를 간취하고 독해하여 <내해>를 작게 한다 (5) <내측 경사면>의 땅을 기어가는 사람들의 정보를 밖으로 끄집어 내어 널리 퍼뜨린다 (6) <내측 경사면>을 기어가는 사람들에게 상공이나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전달한다 (7) 기존의 관점과는 상이한 관점으로 환형섬을 그려내 본다, (8) 섬의 토대를 지지한다 (9) <수위>를 낮춘다
・마지막으로
환형섬은 본래 말할 수 없을 트라우마를 말하려 할 때, 어떠한 것이 발생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생겨났다. …환형섬은, 트라우마 경험이 가진 심각함이나 도망칠 수 없음에 대해서도 묘사하려 했다. …환형섬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 말살당한 사람을 상정하려 한다. p.213
목소리를 내지 않는 당사자는 어디에 있는 지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것에 상상을 발휘할 때, 거기에는 보조선이 필요하게 된다. 자칫하면 상상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폭력으로 될 수 있다. <내해>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나, 그 증언을 통해 보조선을 그을 수 있다. …발화하는 당사자의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 내면에 항상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감수해야 할 침묵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자.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렇더라도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는 것,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그러한 수용적인 자세나 듣는 방식, 자세를 체득해 나가자. p.214
이러한 것만 확인할 수 있다면, 이미 당사자인가 그렇지 않은 가 구별 따위 상관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또한 더 나아간다면 당사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을 상상하는 것,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을 추모하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내해>에 가장 가깝고 깊게 다가가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