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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의 노동 – 네오리벌리즘의 권력론』

시부야 노조무(渋谷 望) 20031025 청사사(青土社),293p. 2200
[Japanese]


■시부야 노조무(渋谷 望) 20031025 『혼의 노동 – 네오리벌리즘의 권력론』,청사사(青土社),293p. ISBN:4-7917-6068-9 2310 [amazon][bk1] ※

◆표지
「그대들은 일해야 한다」라는 네오리벌리즘의 워크페어 담론은 젊은이에게 실제로 노동의욕을 환기시키는것을 진심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람이 없고 게다가 저임금 노동을 젊은이들이 솔선하여 수행하는 것 따위를, 누가 진심으로 믿을 것인가.

◆띠
 현대사상의 최전선

 정래해고, 워크쉐어링, 임금하락, 고용불안…….
 자본이 최우선시되고, 개인이 약체화되는 이 경쟁사회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글로벌리제이션, 네오리벌리즘, 공공권, 관리사회, 개호 등, 현대사상의 가장 중요한 캐워드를 축으로 소비사회 권력 게임이 내포하는 다양한 모순을 추출하여 전혀 새로운 노동론을 내세운다.

◆BOOK아사히콤(アサヒコム)평자:미야자키 테츠야(宮崎哲弥)(평론가)
 「감정노동」이 낳은 친밀함이라는 모순(게재2004년 1월 4일)
 http://book.asahi.com/review/index.php?info=d&no=4954


◆목차

 서장 패배의 고고학
 Ⅰ 네오리버리즘
 1 혼의 노동
   시작하며-결절점으로서의 노동 감정노동〈생(生)〉의 노동 감정노동자계급의 출현?
 2 〈참가〉의 봉쇄 – 네오리벌리즘의 권력론(1)
   네오리벌리즘의 주체 – 리스크 관리의 프라이버테이션
   네오리벌리즘을 넘어서 - 커뮤니티의「재발견」
   「노동」카테고리의 소멸 – 사회참가하는 주체 진전된 리버럴리즘

 Ⅱ 글로벌리제이션
 3 소비사회에서의 공포 활용
   글로벌리제이션과 빈곤 회귀 수난자와 방관자 공포의 소비사회론
 4 포스트모던의 숙명론
   정치의 종언으로서의 포스트 모던 리스크와 그 분신 리스크를 받아들여라 예외상태를 받아들여라

 Ⅲ 공공권
 5 반전하는 공공권
   탈주변화와 탈중심화 프라이버테이션 – 반전하는 공공권 커머프러쉬되는 인종주의 내재하는 아웃사이더
 6 세대와 대항적 공공권
   연령에 따른 사회적 차이의 소멸 부상하는「세대간의 공정」담론 기억(상실)의 정치

 Ⅳ 권력
 7 포스트 규율사회와 예방 테크놀로지 – 네오리버럴리즘의 권력론(2)
   포스트 포디즘의 신체관리 (규율훈련)VS(예방) 예방의 폴리틱스 〈포스트 규율사회〉VS〈공공공간〉 통치의 실험장으로서의 일본 - 「내무성 화」에 따른 공공성의 재정의
 8 주권과 통치의 불분명지대 – 네오리버럴리즘의 권력론(3)
   난민화하는 재해피해자 캠프 – 생정치의 실험장 주권권력과 통치권력의 교차

 종장 〈생(生)〉이 노동이 될 때
    포세 라스타만 meets 니체 새로운 권력 게임

 주
 참고문헌
 후기


◆작성자에 의한 인용

●서장 패배의 고고학

  p.8 「본서의 목적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새로운 권력게임의 본질을 밝히는 것에 있다.」

  p.13 「본서에서는 권력 게임의 변용에서, 노동이나 산업 등의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있는 가 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푸코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권력은 아이덴티티나 주체의 구축의 존재양식, 그 자체를 통해 작동한다고 간주한다면, 노동이나 산업구조의 변용은 권력 게임의 존재양식에 커다란 임팩트를 부여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나 산업구조 문제는 현재 문화나 권력을 둘러싼 논의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버리고 있다.」

  p.16 「특히 일본에서는 누구든지 패배자의 포지션으로 위치지어지는 것을 강고하게 부정한다. 그것이 부끄러움인 듯이. 이리하여 패배는 이른바 언설화되지 않은 채 80년대를 경과해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언설화되지 않은 패배감, 무력감은 소비사회의 다행증(多幸症)적이며 축제적인 분위기의 뒷면에 잠재되어 있었지만, 착실히 그 존재는 소비사회의 로직을 위협해왔다.」


●Ⅰ 네오리벌리즘

○1 혼의 노동

・시작하며 – 결절점으로서의 노동
  p.23 「그녀들(노동시장에 진출한 여성)은 한편에서는 가족 내 주부나 딸로서의 포지션을 유지하도록 요청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로서 업무를 제대로 할 것이 요청되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의 아이덴티티는 비결정의 공간에 내던져지고, 본질주의적으로 그것을 고정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졌다. 마찬가지로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탈공업화의 진전과 함께 예전이라면 포디즘적 공업부문에 흡수되었을 젊은이의 대량 실업이 상시화되고 「노동자」로서의 아이덴티티의 포지셔닝에 곤란을 동반하게 되었던 것이다.」

  p.24 「지적한 바대로 노동개념은 생산자와 비생산자 구별을 전제로 하며 비생산자에게 다양한 보조적인 – 무엇보다 재생산 – 을 맡기고 그 역할을 계층화하여 구성한다. 사람들은 이 역할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고 이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것이다. 」

・감정노동
  p.32 「이렇게 노사관계에 고객과의 관계가 개재하기 때문에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자는 산업노동자와 같이 상품화된 것으로서 노동을 자기로부터 쿨하게 분리하는 태도나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경영자와 레디컬하게 대결하는 인센티브가 줄어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생〉의 노동
  p.33 「이 점을 바탕으로, 감정노동의 전자의 측면, 즉 노동자의 자기감정의 컨트롤 요청이 비 서비스,섹터에서도 특히 제조업 산업노동자에게서도 확대되고 있는 점을 여기에서는 검토하고자 한다.」

  p.36~ 「첫째 자주 지적되고 있지만 노동에 이러한 기능적 플렉시빌리티를 도입하는 것은 테일러 주의적 관리 이념인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재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도 노동자는 <감정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미 자신의 노동을 자신의 전인격에서 분리하는 것이 곤란해진다. 이러한 것은 한편으로는 제품에 대한 예전의 장인적인 프라이드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 전인격이 기업으로 포섭될 위험을 동반한다. 두번째로 보다 중요한 포인트로 노동자는 “손님”의 입장에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는, 그 객실 승무원이나 활동보조 노동자와 공통된 딜레마를 경험한다.」

  p.39 「이에 요청되는 것은 개인의 <실존>이나 <생> 그 자체의 차원이라고도 불러야 할 것을 생산에투입하는 것일 것이다.」

・감정노동자 계급의 출현?
  p.41 「예전 복지국가는 노동자 카테고리와 비노동자 카테고리(주부, 피부양자, 실업자 등)을 준별하고 전자를 후자에 대해 우위에 위치짓는 위계질서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하면, 이 「참가형 복지사회」에서는 대가로서 임금을 얻는 행위로서의, 즉 상품으로서의 「노동」의 의미와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하되며 「활동」일반으로 평준화된다.」」

  p.43 「이른바 노동의 감정화는 감정 노동화 및 정치화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2 〈참가〉에 대한 봉쇄 – 네오리버럴리즘의 권력론(1)

・네오리버럴리즘의 주체 – 리스크 관리의 민영화
  p.47~ 「이러한 것은 각각의 단계에 대응하는 아이덴티티 - <공존>, <성인>, <고령자> - 의 경계가 하염없이 애매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p.49 「총괄적으로 보자면, 네오리버럴리즘 사회정책이 창출하려 하는 것은 「라이프 스타일」의 주체이다. 그것은 개인에게 라이프 스타일의 <선택>할 권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요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라이프 프래닝」(생애설계)의 주체이기도 하다」

・네오리버럴리즘을 넘어 – 커뮤니티의 「재발견」
  p.49 「네오리버럴리즘의 헤게모니에 의한 복지국가의 해체와 이와 동반된 아이덴티티의 파편화의 영향은 이렇게 현재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고 있다.」

  p.52 「게다가 기술을 몸에 익히려 노력하지 않는 자는 리스크 관리가 좋지 않은 「게으른자」를 넘어서 「모럴을 결여한 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 <커뮤니티>의 이름으로」

  p.52~ 「80년대 후반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오스트레일리아와 OECD정책의 동일한 실업자 대책 – 오히려 이것은 블레어에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지지만(Higgs 1998)-를 분석하면서 미첼 딘은 이것이 지향하고 있는 실업자 대책이 자기형성, 자기도태라는 윤리적 영역에서 기능한다는 것을 지적한다(Dean 1995).」

・「노동」카테고리의 소멸 – 사회참가하는 주체体
  p.55 「「쾌락」내지는「자기실현」의 장으로서의 노동을 강조하는 어프로치로 인해, 개인과 노동 사이의운명주의적 강고한 심리적 끈이 풀리고, 조합에 대한 결속은 해체된다. 대신 산업구조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가능한 노동력이 창출된다. 」

  p.57 「80년대 일본에서는 ‘사회참가’라는 단어는 ‘자기실현’ 내지 ‘삶의 보람’등의 단어에 접합하여 유연한 노동과, 유연한 복지공급을 동일 평면에서 말하는 것을 가능케 해 왔다.」

  p.59 「「자기실현」이란「사회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에고이즘과는 구별된다.」

  p.60 「다른 한편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과 도움이 되지 않는 ‘무위’의 차이이다. ‘커뮤니티 참가’의 의무라는 주제와 ‘자기실현’이라는 주제는 서로 교차하면서 수동적인 시티즌쉽의 조건에서 ‘활동’을 핵으로 한 그것으로, 시티즌 쉽의 의미의 변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어드번스트 리버럴리즘
  p.65 「즉 사람들이 역경에 시달리더라도 ‘태만’이나 ‘자포자기’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사회참가’하는 것을 촉진하는, 그러한 지(知)나 테크놀로지의 한층더한 개발이 요청되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러한 학문이 점차 ‘실천적’으로 변용된다.」

  p.67~ 「〈커뮤니티〉에 대한 호소에 의해 우리들이 이끌려 가는 것은「노동」이 아닌 「활동」이다. 이 전략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관련된 우리들의 표상을 “탈구축”한다. 이미 본 바와 같이, 그것이 종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자기실현’과, 공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의무’ 내지는 ‘활동’(아렌트)를 동일의 차원으로 흘려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연한 저임금 노동이 ‘활동’으로 불리고 이에 해당하는 것이 ‘선’인 것이다.」


●Ⅱ 글로벌리제이션

○3 소비사회의 공포의 활용

・글로벌제이션과 빈곤의 회귀
  p.78 「미국에서는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라 제조업부문은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의 남성 미숙련 노동의 수요는 감소 일로이다. 다른 한편 경제의 정보화로 새롭게 만들어진 직업은 고도의 숙련 –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제해결능력, 자기반성능력(리플레킹티티) – 를 따라서 고등교육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은 종래의 고용(육체노동)에서도 교외에 생겨난 새로운 고용기회에서도 배제되게 된다.」

・수난자와 방관자
  p.86 「이렇게 의심해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단순히 중립적인 방관자로서가 아닌, 보다 확신범적인 ‘패자’나 ‘쓸모없는 자’를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공포의 소비사회론
  p.88 「소비자의 욕구를 최우선화하는 생산 시스템의 전환이라는, 이 편재과정에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어떻게해서든 유지시키려 한다면, 대량의 실업자를 만들어내고(특히 유럽), 고용을 한층 더 유연화하도록 하여 워킹 푸어를 만들어낸다(미국과 같이)」

  p.90 「즉 소비사회에서는 빈곤자는 정의상, 그 존재가 – 행위가 아닌 – ‘결함’이며 ‘죄악’인 것이다.」

  p.93 「스크리트 갱의 참가가 ‘언더클래스’ 젊은이들에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 결과 빈곤자는 배제에 대한 저항으로서 자신을 자각적으로 무법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안는다. 바우만은 배제된 자가 ‘배제된 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가는 이 과정을 ‘자기성취적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Bauman 2000 p.43)」

  p.94 「예를 들어, 거리에서 자동차 앞 유리를 닦는 것, 구걸을 하는 것 혹은 학교에 나가지 않는 것, 지하철 자동개찰구를 뛰어넘는 것, 이러한 것은 이미 버젓이 범죄행위로 간주되며 위반자에게는 가차없이 수갑이 준비되어 있다.」
    「또는 탈공업시의 경제환경에서 거의 장래의 생계와는 관련없는 교육시스템으로 묶어두려는 산물인 것은 아닐까.」

  p.95~ 「어떤 것이든지 간에 범죄사회학자 이란 테이라(1999)가 영국 젊은이들의 범쥐와의 관련성을 분석하면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비사회(‘시장사회’)의 영향을 전 라이프 코스를 통해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 특히 80년대 이후 태생인 젊은이들이며, 그들이 이 글러벌화된 소비사회=배제사회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 가를 묻는 것이야 말로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p.96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에 요청된 그대로 자신의 생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끊임없는 생활의 재편에 대해 자신의 신체, 정신, 감정을 유연하게 적응시킬 것을 결정한 계급이 존재하며, 다른 한극에서는 빈곤한 가운데 배제되고 공포를 환기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언더클라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이의 관계가 겨우 인도주의적 실천이 메워주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도대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4 포스트모던 숙명론

・정치의 종언으로서의 포스트모던
p.100 「하지만 아노미가 자신의 욕망을 해방시킴으로써 자신의 제어가 곤란하게 된 것이라 한다면 그 반대편 대응물인 ‘숙명’은 자신의 욕망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뒤르템에 따르면 그것은 ‘무엇이든 하기 어려운, 불가피하고 유연성이 없는’ 규제에 의해 제약된다. 그러나 이 행위 유형은 그의 예측대로 소멸하고 ‘장래’의 가능성은 만인에게 열려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p.104 「갬블은「"소란스러운 이야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소란스러운 이야기」로서 포스트 모던의 모순을 지적하지만(Gamble 2000 p.117), 이 모순이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인가를 분석해야 되지 않을까.」

・위험과 그 분신
    p.106 「리스크 사회론에서는 리스크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인에게 리스크 관리를 보다 확실한 것으로 할 에토스가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107 「리스크 사회론에 숙명론의 복귀를 뽑아내는 것은 간단하다. 리스크 사회는 합리적인 리스크계산의 주체를 요청함과 동시에, 그 분신으로서 일절의 리스크 계산을 방기하는, 숙명론적 주체를 불러낸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일상을 연명하기 위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리스크를 받아들이자
  p.107~ 「모든 것을 개인의 반사적인 자기결정에 맡기는 사회는 결국 무엇도 결정할 수 없으며 시장의 압력만이 유일한 현실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까.」

  p.108 「현재, ‘자기결정’ – ‘리스크를 받아들이자’ – 라는 슬로건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향해지는 메시지는 확실히 모순된 더블 바인드인 메시지이다.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가운데 자신에게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라. (…) 네오리버럴 언설이 이 불가능한 메시지로 젊은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부단히 자기를 격려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임기응변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인간일 것이다.」

  p.109 「우리들의 경험으로는 자기책임론은 보다 낮은 긴장도의 숙명론에 보다 친화적이다.」

  p.110 「숙명론이 하비토스로 변화한 자들에게는 숙명에 저항하고 욕망을 욕망하는 것, 혹은 반사적으로 욕망하는 것 조차 곤란하게 한다.」

・예외상태를 받아들여라
  p.115 「생존함과 동시에 죽어 있기도 하는 이러한 생사의 형태는 예외상태가 항상화된 배제의 공간에서 유지되는공동체의 유일한 조건일 지도 모른다. 」

  p.116 「숙명론은 네오리버럴리즘의 액명상의 교의 – 반사적 주체형성 – 에 대한 저항임과 동시에 통치형태로서의 네오리벌리즘이 그것을 통해 낙오자를 통치하는 그러한 가능을 결과로서 병행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Ⅲ 공공권

○5 반전하는 공공권

・탈주변화와 탈중심화
  p.126 「「백인 메이저리티」의 의미를 ‘약자’에 대해 교묘히 반전시킨 파우에리즘의 신인종주의적 언설전략은 ‘포스트 모던의 조건’에 잘 적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들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개인화──반전하는 공공권
  p.127 「70년대부터 현저하게 된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은 공공부문의 개인화[사화/민영화/의 진행을촉진하였다 – 그것이 분화나 정치의 포스트모던의 경향과 한 세트라는 것은 종종 간과되기 쉽다.」

  p.129 「복지국가 패러다임에서 광채를 빛냈던 공적인 것의 가치는 반전되며 이른바 <흑인>=<공적인 것> = <위험/빈곤>이라는 등가성의 연쇄 형성으로 재접합되었다. 이 반전은 복지국가 비판을 개제시킴으로서 ‘백인vs흑인’이라는 집적 대결의 함축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영국의 파웰이 꾸며낸 신인종주의 전략과 흡사하며 기능적으로 등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130 「여기에서「공공권」은 예전의 공공권으로서 개념되지 않으며 또 그렇게 기능하지도 않는다. ‘위험한 개념’을 감금하는 이른바 ‘감시’가 덧붙여진 공공이다 – ‘비지블한’이란 그러한 의미이다. 백인의 미들 클레스들은 그러한 공공권을 잽싸게 버리고 자유롭고 안전한 사적 영역으로 도망쳐온다. (… ) 이에 반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공공권’에 갇혀버리고 감시된다.」

・눈속임되는 인종주의
  p.134 「미국은 이미 파업도 할 수 없으며 조합도 조직할 수 없는 복역노동자들의 제3세계와 같은 초과착취를 공공연하게 행할 수 있는 형벌작업은 예전의 군사산업을 상기시킬 정도로 성장산업이 되고 있다.」

・내재하는 아웃사이더
  p.135 「「신인종주의」나「새로운 감금의 폴리틱」의 로직이 ‘제1세계’ 흑인들에게 새롭게 준비된 포지션은 이미 중심에 대한 주변과 중심이라는 피라미드식 위치가 아니다. 그것은 미교하게도 반전된 지외, <내재된 적>, <내부의 외부>라는 포지션이다. 이 로직은 종래의 이항대립식에 근거한 저항의 다이어그램을 기능부전에 빠뜨렸다.」

○6 세대와 대항적 공공권

  p.142~ 「지배적인 공공권에서는 등한시되고 배경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를 논의로 공적인 공공의 관심사로서 채택하는 것이 처음으로 가능하게 된 것은 이러한 서벌턴적인 대항공공권인 것이다.」

・연령에 따른 사회적 차이의 소멸
  p.144 「연령은, 계급, 젠더, 에스닉티 등과 더불어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카테고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핵심의 하나였다.」

  p.147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의 젊은이 상황은 특히 최근 현저해져 왔다. 정규고용의 소멸과 비정규고용의 증대로 신규졸업자 구인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젊은이들의 신규졸업취직률은 9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저하해 왔다. 그 결과 졸업후 ‘프리타’나 ‘무직자’라는 불안정한 자위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p.149 「특히「청년(젊은이)」카테고리는 60년대 새로운 사회운동이나 카운터 컬쳐의 발화점이며 ‘노동력’ 카테고리 이상으로 사회적 적대성을 구축하고 저항의 원천으로서 간주되었다. 연령 카테고리의 소멸은 이러한 적대성에 근거한 젊은이들의 연대와 저항의 정치를 소멸시킨 것에 공간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151~ 「연령에 근거한 적대성은 계급적 적대성과 더불어 정치적 배출구를 잃고 양자는 국가나 학교 내부의 개인적 대인관계의 대립(‘이지메’)나 또는 ‘부모 반항’(?)등 대상행위적인 원한으로 이전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부상하는 「세대간 공정」담론
  p.157 「세대격차의 불공평 감을 해소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젊은 세대는 능력주의적 네오리버릴리즘에 기댈 수 있지만 이 네오리벌리즘의 교의는 동시에 한층 젊은 세대 내부의 격차를 증폭하고 젊은층 세대 내부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기억(상실)의 정치
  p.162 「(생)권력은〈현재〉라는 지평 내부에 평등 문제를 가두기 때문에 기억 자체를 소실시키려 한다. 일단 기억이 리세트 된 인간 만큼 현재 권력의 요청 – 게다가 그것은 윤리주의적 양상을 노정하고 있으므로 대항하기 어렵다 – 에 반사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자는 없지 않을까.」


●Ⅳ 권력

○7 포스트 규율사회와 예방 테크톨로지 – 네오리벌리즘의 권력론(2)

・포스트 포디즘 신체 관리
  p.169 「이른바 개인은 자기자신으로부터 위험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자기자신조차 본질적으로 안전하며 확실한 장소가 아닌, 리스크의 원천, 또는 리크스 그 자체 – 리스키 셀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규율훈련〉VS〈예방〉
  p.174 「카스텔은 최근 미국과 프랑스 의료나 소셜 워크의 움직임을 보면서 구체적인 개인을 대상으로 한 개입 전략(규율훈련)에서 인구를 대상으로 한 개입으로, 그 중심이 천천히기는 하지만 이행하고 지금은 결국 그 선을 넘었다고 말한다.」

・예방 폴리틱스
  p.183 「카스텔이 「감시」라는 단어로 문제화하려는 것은 공존의 장을 경유하지 않고 끝내려는 ‘새로운 형태의 감시’이다. 이 감시는 이미 개인을 ‘개인화’하고 ‘주체화’하고 ‘교정’하는 것에는 어떤 흥미로 나타내지 않는다. 그 관심은 이미 리스크를 탐지하는 것pre-detection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본 바대로 규율훈련의 소멸은 좋던 나쁘던 권능을 부여받아온 매개자 – ‘유기적 지식인’(그람시)라 부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 의 소멸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매개의 공간을 공공공간으로 부를 수 있다면 예방 테크놀로지가 지향하는 것은 리스크라는 이름으로 공공공간을 소멸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포스트 규율사회〉VS〈공공공간〉
  p.186 「일단 예방 테크놀로지로 인해 <매개적인 것> 자체의 우회의 챤스가 열려질 것을 안다면 타자와 접촉하여 교섭, 절충(네고시에이션)을 실험하는 것은, 코스트 면에서도 또 리스크 면에서도 빨리 생략해야 하는 것이 된다. 예전의 ‘시민사회’는 매장되어 사라진다(Hardt 1995)

・통치의 실험장으로서의 일본 – ‘내무성화’에 의한 공공성의 재정의
  p.190 「부처간 헤게모니가 최근에 와서 크게 이동하였다는 것은 변덕도 우연도 아니다. 경제 글로벌화 속에서 전후 호송선단식 = 기업주의적 국민통합은 기능부전에 빠지고 기업은 정리해고나 고용 중지로 기업주의의 중핵인 정규사원층을 쥐어짜며 이를 대체하는 것으로 파트타이머나 파견 등 유연한 노동을 활용하는 전략을 채용했다. 이 결과 현재 저소득 불안정 취로층이나 장기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그들의 사회=사회에 대한 귀속의식이나 충성심 – 그리고 이를 통한 국민통합-의 물질적 기반은 소멸되고 있다.(…)여기에 그들의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것 보다는 폭력적으로 ‘통치’할 필요성이 생긴다. 내무성형 통치의 부활은 이러한 것의 표현이다.」

○8 주권과 통치의 불분명 지대──네오리버럴리즘의 권력론(3)

・난민화하는 재해피해자
  p.202 「그들에게 전형적인, 다수의 ‘고독사’에 공통된 특징은 ‘살아있어도 별 수 없다’라는 체념 감정이다. 그 때문에 그것은 끝없는 자살에 가깝다. 누카타(額田)는 이것을 ‘완만한 자살’이라 부른다.」

・캠프──성정치의 실험장
  p.208~ 「일본에서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증하는 것은 법적인 시민권이라기 보다는 노동시장의 지위 즉 기업사회의 그 인간의 지위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어떤 사람이 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경우, 즉 노동시장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잃고 배제되는 것은 ‘홈리스’화의 위험에 처해지는 것이다 – 특히 배제의 완충재인 가족이나 친족이 없는 경우. 그리고 일단 홈리스가 된 경우 홈리스라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의 박탈로 직결된다.」

・주권권력과 통치권력의 교차
  p.215 「강제수용소, 난민 캠프, 가설주택, 홈리스, 기민, 그리고 성장하는 ‘제4세계’. 이러한 것에 공통된 것은 그 주민을, 항상화한 예외상태 속에 생과 죽음 사이에 영속적으로 대기시키고 그들을 비인간적/동물화 하는 것으로 연명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글로벌화하는 네오리버럴리즘적 사회편성이 안고 있는 사회적 배제라는 모순의 개방으로서 점차 그 효력을 전면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장 〈생〉이 노동이 될 때

・포시
  p.219~ 「힙합에서 포시는 탈공업도시=포스트모던 도시의 엄중한 환경과 맞아떨어져, 살아 남은 측면을 가질 뿐 아니라 공동적인 실천을 통해 풍부한 창조활동 – 스타일의 생산-을 행한다. 제조업에서의 일은 소멸되고 대신 창출된 고용은 저임금의 ‘서비스’노동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강요된 저임금 노동을 거부함과 동시에 한정된 자원을 유용하고 협동적이며 창조적인 ‘생산’을 행하였던 것이다.」

  p.220 「사회전체가 생산점이 된다는 것은 <노동>과 <놀이>의 구별이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스타맨 meets 니체
  p.223 「자기가치화의 원천은 자기를 처음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권력 게임
  p.231 「네오리버럴리즘에서는 <태만>은 죄이다 – 그것이 포스트 공업사회의 현실인 항상적 실업에 의한 것임에도.」

  p.232 「그들<근면>한 메이저리티에 안심을 부여하고 그 격차를 최종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야 말로근면을 미덕으로 하는 노동윤리이지 않을까. 근면한 주체로서의 자기긍정은 <태만>에 대한 도덕적 공격으로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p.233 「〈태만〉=〈놀이〉는 악임과 동시에 가치의 원천이다.」

  p.234 「하지만 정말 매력적이며 보람이 있는 노동이라면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정당화도 필요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p.235 「또한 동일하게 일본에서도 최근 ‘프리타’나 ‘무직’ 젊은층이 범죄예비군으로서 코드화되고 무가치한 것, 더 나아가서는 위험한 것으로 멸시되고 있다는 것과도 병행을 이루고 있다.」


*作成:하시구치 쇼지(橋口昌治)
UP:20130630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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