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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에서 말하고, 전달되고 이어지는 것」

渡辺 克典 2011/03/11
鶴田幸恵編『보고서 사회운동에서 말하는 것/전달되는 것/이어지는 것 – 간사이(関西)재일・부락문제와 관련된 트랜스젠더<도이 이츠키(土肥いつき)>와의 대화』<간사이(関西)의 사회운동을 생각하는 심포지움>실행위원회, 28p. pp. 23-27
[Japanese]


  본 심포지움의 개최취지는 사회운동에서「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전달되는 것」, 또한 사람들이나 조직이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사회운동을 생각할 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여기에서는 사회운동에서「말하고」「전달되고」「이어지는 것」이 가지는 몇 가지 의미를 파악한 뒤에, 이 심포지움을 돌이켜 보고자 합니다. 또 경칭은 모두「씨(氏)」로 통일하겠습니다.

1.심포지움에 대해 말하기 전에 - 「사회운동」의 규정에 대해서

  먼저 사회학에서 사회운동 연구로부터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사회학에서는 사회운동은 「사회변동」의 구성요소로서 파악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회변동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제도나 조직의 구조가 크게 변혁되어,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변동은 사회운동 만으로 발생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환경의 변호와 같이 인간의 의도를 벗어난 요인으로 발생되기도 합니다. 사회학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의도적으로) 발생되는 경우입니다. 사회변동은 정부나 행정기관에 의한「위로부터의 변동」으로도 발생될 수 있습니다. 또 시민에 의해 발생되는「밑으로부터의 변동」도 있습니다. 사회운동은 특히 후자를 발생시킨다고 생각되는 집합적 활동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사용됩니다.
사회변동의 구성요소로서 사회운동을 파악하는 경우, 사회운동은 그 활동내용이 아닌, 그 후의 제도변혁에 대한 영향에 있어서 분석되게 됩니다. 이러한 분석에 있어서, 사회운동 연구는 몇 가지 공통되는 요인에 착목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변동「전」의 사회제도가 잘 운영되지 않았을 때 그 반동으로 사회운동에 발생한다고 파악하는 것입니다. 즉 변동으로 새롭게 수립된 「새로운 체제」에 대한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문제점에 착목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회운동에서 주장되는 「낡은 체제에 대한 비판」「새로운 체제의 주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 라는 점에서도 분석이 향해집니다. 이것은 구체제에 어떠한 폐해가 있으며, 새로운 체제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는 가를 둘러싼 주장(언설)을 둘러싼 분석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운동을 수행하는 집단=조직에 착목하여 운동조직을 지탱하는 인적・물적인 자원의 흐름으로 사회운동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세가지 분석 방법은 (1) 사회운동을 활성화시키는(또는 억압하는)경제적 변화나 정부내의 분열등 경제・정치적인 사회현황을 분석하는 「정치적 기회구조」(2) 사회운동이 내거는 목표나 활동의 대립축을 둘러싼 구조 형성(프레밍) 과정, (3) 사회운동의 활동을 지탱하는 (또는 쇠퇴시키는) 자원의 구조 분석(자원동원)으로 모델화됩니다(McAdam, McCarthy & Zald 1996, Tarrow 1998=2006). 이 모델을 염두에 둘 경우, 심포지움의「말하고」「전달되는 것」은(2)의 프레킹 과정과 관련된 논의이며 「이어지다」는(3)의 자원동원과 연결되는 논의라는 것이라 생각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파악하는 방식 만이 사회운동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파악 방식 만으로는「말하다」「전달되다」「이어지다」는 어디까지나 사회변동을 초래하는 하나의 요소만으로 추출되고 말고 「말하는」주체의 부재라는 문제가 남게 되버립니다.(같은 논의로서, Dubet 1994=2011등).이것이 본 심포지움의 제2의 특징인 아이덴티티를 둘러싼 문제입니다.
  사회운동과 아이덴티티를 정리하기 위해서 20세기 사회운동의 특징을 대략 돌아보고자 합니다. 월러스틴 등은 20세기 사회운동을 (1) 노동운동 (2) 민족(국민)운동, (3) 새로운 사회운동, 이렇게 세가지 측면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Arrighi, Hopkins & Wallerstein 1989=1998, Wallerstein 1991=1993). 노동운동이란 맑스주의로 대표되는 바와 같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축으로 한 노동자에 의한 활동이며,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으로 대표되는 활동입니다. 다음 민족운동이란 Nation(민족/국민)의 독립통치를 요구하는 활동이며 국민국가(Nation State)형성을 향한 국민형성(Nation-building)운동을 지칭합니다. 이 두 가지 활동은 20세기 초두에 기원을 가지는 것에 대해, 1960년대 이후(특히 「1968」로 대표되는 시기)부터 착목된 것이 여성, 흑인, 장애인 등 지금까지 마이너리티로 억압되어온 사람들이 그 주체를 맡습니다. 이 때 중요하게 되는 것은 마이너리티라 여겨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이너리티이다」라는 것을 운동의 정당성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둘러싼 「카테고리화」)(자신이 타자로부터 어떻게 카테고리화되는 가,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카테고리화하는 가)가 정치의 무대위로 뛰어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 가를 둘러싼 동정(=아이덴티티)가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덴티티와의 관계에 있어서「말하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며(재귀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또한 타자를 향해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말하기」는, 개인이 독립된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각각 사회에 존재하는 카테고리(및 그것에 수반하는 「편견」이나 「차별」)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타자로부터 카테고리화를 받는 것과 동시에, 사회 안으로 자기의 위치지움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소개를 골라 자기를 「말하는 것|것입니다.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것」이란 자기자신을 재귀적으로 되돌아 보는 것이나, 타자에 「전달되」도록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동정된 아이덴티티에 근거하여 타자와 「이어지는 것」입니다.(이러한 논의 대해서는 가타키리(片桐)2000,아사노(浅野)2001,사이바라(西原)2010 등).
그렇다면 이상과 같이 정리를 근거로 (1) 프레밍 과정이나 자원동원 (2) 아이덴티티의 말하기에 착목하여 심포지움을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2.심포지움에서 이야기된 것/이야기되지 않았던 것

먼저 본 심포지움의 특징은 <간사이(関西)>의 사회운동에 착목하는 점에 있었습니다. 앞서 사회운동연구의 문맥에서 말하자면 <간사이>를 규정하는 것이라 한다면「<간사이>의 경제・정치적 상황」에서 규정짓는 것이 정치기회구조론이 됩니다. 그러나 본 심포지움은 「말하다」「전달되다」「이어지다」를 테마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정치적인 문제관심은 뒤로 빠지고 <간사이>는 주로 실천으로서의 「웃음」이나「즐거움」이라<간토(関東)>와의 대비 속에서 언급된 것이 세 분의 공통된 견해였습니다. 정부・경제적 요인에 대해서는 섹슈얼리티나 장애라는 문제에 대한 사회운동은 국가(복지국가)의 변혁을 지향하느 ㄴ것이 많으며, 지역색이 드러나기 힘든 점에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사회운동을 <간사이>, <간토>라는 차원으로 생각할 때 경제・정치저거 측면보다도 사람들과의 이어짐을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소통의 장면(사회학에서는 상호행위라 부릅니다)가 초점이 되는 것이 확인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 꼼꼼히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제・정치적인 측면을 배후에 놓으면서 심포지움에서는 「웃음」이나「즐거움」이<간사이>의 사회운동의 지속될 수 있는 측면에 강조되었습니다. 이 배경에는 섹슈얼 마이너리티인 것/장애인 것의 「힘듦」이 있습니다. 섹슈얼한 문제나 장애를 둘러싼 문제는 그 요인이나 대처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서 파악하기 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어떠한 의미에서의 「전략」적인 것으로 「웃음」이나 「즐거움」에 대해 논의되었습니다. 앞서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웃음」이나「즐거움」은 사람들의 이어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프레밍 과정으로서도 위치지워집니다. <간사이>의 사회운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점을 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포지움에서 전략으로서의 「웃음」이나「즐거움」이 가진 위험성이 또 하나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이 위험성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거론되었던 것이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것」이 초래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말하는」주체와 사회운동의 양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게 됩니다.
먼저,「말하는」주체에 대해서는 장애 수용과 해리(解離)라는 측면이 논의되었습니다. 마이너리티에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소재로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카테고리가 부속되기 때문에, 특히 사회운동에서는 같은 장애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곤란을 안게 되게 됩니다. 우에노(上野)씨는 이후 장애인 운동의 과제로서 장애수용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는 것」을 과제의 하나로서 들었습니다. 또 키시(岸)씨는 운동의 실천으로서 「웃음」과 함께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것은 마이너리티로서의 곤경에 대한 하나의 대처전략(=해리)인 것을 들고 있습니다. 수용과 해리라는 전혀 다른 단어를 사용하면서, 양자는 동전의 앞뒷면 관계에 있습니다. 수용은 자신의 속성을 한번 벗어내고(해리하고)이루어지는 것이며 또 해리는 한 번 벗어낸 자신의 속성을 다시 거두어들이기 위한(수용하기 위한)대처작업이기도 합니다. 양자의 견해는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것」의 실천적 과제를 상이한 관계에서 파악하였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회장에서의 질의와 이에 대한 응답 중에 「웃음」과 함께 사회운동을 실천하는 것에도 문제점이 떠올랐습니다. 회장에서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하는 동일한 커뮤니티와 같은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마이너리티가 「웃음」과 함께 사회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마이너리티가「웃음」과 함께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메이저리티에게 위기감을 얇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점이 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전략으로서의 「웃음」이 초래한 문제점은 <간사이> 사회운동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서 간과될 수 없는 측면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문제는「웃음」과 함께 사회운동을 수행한다는 점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과 아이덴티티를 둘러싼 현대적 과제와도 연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점과 관련된 논점에 대해 「심포지움에서 이야기되지 못한 것」으로 약간만을 기술해두고자 합니다.
마이너리티에 의한 사회운동 뿐만 아니라 종래의 노동운동이나 민족운동에서도, 사회운동에서는 자신들과적대하는「놈들(them)」이 설정되었습니다. 노동운동에서는 「자본가」이며, 민족운동에서는 「이민족」이나「비국민」이「그놈들」로서 설정되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우리들(us)」로 위치지어 사회운동은 추진되어 왔습니다. 마이너리티에 의한 사회운동은 (대의적인) 메이저리티에 그 창끝을 겨눕니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에 의한 사회운동은 「마이너리티(우리들)대메이저리티(그놈들)」뿐만아니라 마이너리티 동지들의 분쟁도 발생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장애인의 생존권 문제(물론, 이른바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자기결정과 생명존중)의 문제도 관련됩니다)을 들 수 있습니다.
「보다 좋은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사회운동에 있어서, 왜 이러한 것이 발생되고 마는 것일까요. 그 하나의 이유로는, 이러한 사회운동이 마이너리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나 민족운동에서 「우리들」이라 일컬어지는 노동자나 민족은, 노동환경, 출신, 문화 등으로 타율적으로 결정된 측면이 강했습니다. 직업선택의(일단의) 자유나 국제이동이 쉽지 않은 것은 노동・민족운동이 지금까지의 기세를 잃어버린 하나의 요인이기도 할 것입니다.(단지 최근에는 민족운동의 리바이벌이 보입니다) 이와 비교해서 「마이너리티인 것」을 떠받치는 토대는 취약한 것이 됩니다. 노동운동에서는 동일한 (직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는)노동환경, 민족운동에서는 방위선(전쟁국가)나 보장범위(복지국가)와 같은 민족국가라는 토대가 있는 데에 반해, 섹슈얼 마이너리티나 장애인은 사회운동의 기초가 되는 집단현성의 장이 부족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운동이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모인 시설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마이너리티로서의 사회운동은, 동일한 장에 놓여진 지금까지의 「우리들」에 근거한 사회운동보다 범위가 작은 마이너리티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해도 좋을 지도 모릅니다. 이 때 범위의 설정으로 마이너리티 동지들의 다툼 등도 발생해 버린다고 생각됩니다.
이상 관심에 대응하기 위해 심포지움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논점으로서 「말하는 것」과 「이어지는 것」을 매개로 한 「전달되는 것」에 관한 논점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너리티에 의한 사회운동은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것」으로 「이어지며」또 「이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과 「이어짐」을 매개하는 「전달되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사태인 것일까요. 방금 예를 염두해 둔다면, 사회운동은 동일할 것 같은 활동 사이에섲조차 충돌을 발생시킬 수 있는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되는」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포지움에 매력을 느낀점이 있다면 <간사이>의 사회운동 다움으로서 「웃음」으로서 성립되는 (전달되는) 장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가를 고찰해 보느 ㄴ것도 현대사회 사회운동을 생각하는 하나의 분석 기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심포지움으로 오는 도중에 나고야에서 세키가바라(関ヶ原)를 넘어 도쿄에, 그리고 나라(奈良)로, 이런 신칸센 루트를 사용했습니다.세키가바라의 산등산등을 보면서,「산 웃다(山笑う)」라는 표현을 생각해냈습니다. 「산 웃다(山笑う)」란, 하이꾸(俳句)의 계절어로「봄(春)」을 맞아, 봄에 초목의 새싹이 피는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심포지움을 계기로 사회운동에서 「말하다」「전달되다」「이어지다」를 둘러싼 논의가 다양한 장소에서 싹을 틔우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참고문헌

Arrighi, Giovanni, Terence K. Hopkins and 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89, Antisystemic Movements, Verso.(=1998,太田仁樹訳『反システム運動』大村書店.)
아사노 토모히코(浅野智彦),2001,『자기에 대한 이야기론적 접근 – 가족요법에서 사회학으로』케이소(勁草)서방
Dubet, François, 1994, Sociologie de l'expérience, Seuil.(=2011, 山下雅之監訳『経験の社会学』新泉社.)
가타키리 마사타카(片桐雅隆),2000,『자기와 「말하기」의 사회학 – 구축주의적 전개』세계사상사
McAdam, Doug, John D. McCarthy and Mayer N. Zald eds., 1996, Comparative Perspectives on Social Movements: Political Opportunities, Mobilizing Structures, and Cultural Framings, Cambridge University Press.
니시하라 카즈히사(西原和久),2010,『간주관성의 사회학이론 – 국가를 넘어선 사회의 가능성(1)』신선사(新泉社)
Tarrow, Sydney, 1994→1998, Power in Movement: Social Movements and Contentious Politics, 2nd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2006,大畑裕嗣監訳『社会運動の力――集合行為の社会学』彩流社.)
Wallerstein, Immanuel Maurice, 1991,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Polity Press.(1993,『脱=社会科学――一九世紀パラダイムの限界』藤原書店.)

◆감사의 글

본 연구는 과학연구비조성금(연구과제번호:21730410)의 조성을 받은 것입니다



UP: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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