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rchives [Japanese Page]
죽음의 존엄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먼저 살아 있는 것을

橋本 操(일본ALS협회부회장) 2009/11/27
『中日新聞』『東京新聞』2009-11-27夕刊,「이사람을 인터뷰」
http://www.chunichi.co.jp/
[Japanese Page]

Last Update:20091214

인공호흡을 착용하고 휠체어로 가스미가세끼(일본 후생성이 있는 곳)로부터 덴마크까지. 전신의 근육이 점점 움직여 지지 않은 난치병인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 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일본 루게릭협회후회장의 하시모또 시사오(橋本操)(56)이다. 하시모또씨는 환자나 가족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정치 가나 관료들을 만나면서 자기 주장을 해왔다. 최중증의 난치병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는 ALS의 몸으로도 충분히 살아가기 쉬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伊藤弘喜)

Q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21살때 처음으로 왼쪽손이 마비가 와서 건초염(힘줄을 싸고 있는 막에 생기는 염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어깨와 다리가 움직여 지지 않았고, 발성과 음식 을 넘기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7년후에는 호흡장애까지 왔기 때문에 기관을 절개하여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대화는 헬퍼가 아이우에오를 읽어주면 그 중에 필요한 단어에서 눈을 깜빡이는 형식으로 한문장 한문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식사는 야채쥬스나 액체상태의 영양 보조식품등을 코로 연결된 관을 통해서 섭취하고 있습니다. 무표정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지 못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를 보시거든 가볍게 웃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루게릭진단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현재의 제가 있는 것은 당시의 주치의였던 사또우 선생님(국립정신병원 신경센터 国府台병원 명예병원장)과 일본 루게릭협회 초대사무국장인 마쯔오까씨 덕분이였습 니다. 당시 저는 루게릭이라고 하는 진단보다는 하나 뿐인 딸아이를 보살피지 못한다는 것이 무서웠었습니다. 그것을 알게된 사또선생님은[지금 제일 좋은 약은 딸이시 네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처한 환경을 잘 이해해 주신거지요. 또한 마쯔오까씨는 [괜찮아요. 당신이라면 잘 할수 있어요]라고 주문을 외울수 있을 정도로 반 복해서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긍정적이고 따스한 서포트를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두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천천히 친절하게 조금이라고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루게릭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집 그것도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가는 것은 힘들지 않으세요?
인공호흡기는 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응급실에 실려들어간 구급환자와는 달리, 생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하나의 기구일뿐입니다.
발병했을때 딸아이는 5살이였고 남편은 심야까지 일만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저의 개호를 해 줄 수있는 상황이 아니였기 때문에 타인개호를 받 으면서 집에서 생활하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기 까지는 친정의 형제들이 도와주었습니다.
기존의 제도로는 부족한 개호를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 체우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 학생들을 능숙한 개호인으로 키워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을 제 가 운영하고 있는 방문개호사업소에 등록하게 하여 다른 환자에게 파견하면서는 수입도 생기게 되었습니다.수입이 있으면 자립은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방문간호, 방문진료, 개호인파견제도등의 시스템을 잘 활용해가면서 저녁에는 학생 10명정도가 저를 도와 주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항상 제주위에는 활동보조인이 있습니다.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 자신이 주부라는 의식과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냉장고나 지갑속을 누가 본다고 해도 별로 신경쓰 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말싸움하는 것은 어렵지만 개호인을 중간에 둔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반드시 합니다.
휠체어로 근처의 슈퍼나 백화점에서도 쇼핑을 합니다. 애견을 데리고 다니면서 말입니다. 바빠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SMAP콘서트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Q 환자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라도 열정적으로 방문을 하시네요.
약 15년전부터 전국의 환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환자들과 만나고 싶어하지만 타 지방에서는 환자가 이동할 수 있는 사회환경이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현하기가 어렵습니다. 환자분들을 만나러 다녀보면 저처럼 생활환경이 잘 되어있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 숫자인지 늘 절실히 느낍니다. 집에 가면 가 족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서 병실의 하얀벽이나 천정을 보면서 생활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Q 하시모또씨의 홈페이지의 이름이 [투쟁하자 ALS]인 것 처럼 많은 운동을 해오셨네요.
이것은「환자들이여、투쟁」이라고 하는 애지테이션(agitation:선동)입니다.
2002년 의료행위로서 의료직이나 환자의 가족에게만 인정되었던 단(가레)흡입을 헬퍼가 할 수 있도록하기 위한 서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단의 흡입은 단순한 작업이 지만 횟수가 많을 때에는 몇 분만에 한번씩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저녁에 숙면을 취할 수 없을 정도로 단 흡입을 해왔습니다.
전국에서 17만영의 서명을 했습니다. [가족들이 도저히 쉴수가 없으니.. 어떻게 좀 해줘라]라는 비명과 같은 메세지를 첨부했습니다. 모든것을 확인해가면서 국가와 교섭활동을 실시하기도 하면서 03년에 법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Q 존엄사반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존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공호흡을 착용하기만하면 살아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착용할 수 없는 환자 들이 많이 있습니다. 루게릭협회환자의 70%가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가족들의 간접적인 메세지인 [이제 그만]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여 자식이나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자립할 지식도 기회도 받지 못하고[죽을권리]를 말하기 전에 살아가고 싶 어도 살아갈 수 없는 환자의 살아갈 권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인공 호흡기는 빠지기도 쉽습니다. 가끔 사고로 호흡기가 빠져서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허무하고 힘든지....저 도 자주 호흡기가 빠집니다. 호흡기가 빠지면 2분이 체 지나기 전에 얼굴은 빨개지고 심장이 마구 뜁니다.

Q 어려운 상황에서도 굉장히 밝고 유모어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친정은 생선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2월에는 이지스군함이 침몰했던 어선과 같은 장소에 다녀오고 나서 오빠들이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선이 침몰하는 사건은 자주 있다고 말입니다. 바닷가 근처에서 살다 보면 시체가 바다위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생선을 잡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 죽음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일상적인 일 일수도 있습니다. 저도 주치의와 식사를 해가면서 종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절을 좋아합니다. 수령 천년이 지난 벗꽃나무를 천년을 뛰어 넘은 현재 제가 바라볼 수 있는 로망. 몇대의 사람들이 이 나무의 밑에 모여서 울고 웃고, 때론 병 에 걸렸던 때를 생각하면[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가자]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에 입원하셨는데요. 활동을 좀 줄이시는 것은 어떠신지
9월에 16년만에 입원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이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바이러스성장염있습니다만 마신 커피가 아마도 너무 진했던 것같습니다.
최근에는 모든 환자들을 위해서 라고 하는 기준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에서 생활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개호보험의 자기부담이 면제되어야 한 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서 장기료양을 할 수 있는 병원을 확보하고도 싶습니다. 이렇게 사실 과제는 많이 있습 니다만,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않됩니다. 일단은 죽을때 까지 계속해서 일하고 달리고 싶은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울리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것입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요. [이 순간은 당신의 시간. 필사적으로 살아가셔야 합니다] 라고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오늘은 불행할지라도 내일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프로필
하시모또 미사오 1953년 치바현에서 태어나다. 일본음악학교 유치원교원양성학교를 졸업했다. 85년에 루게릭으로 진단 받고 93년에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하여 재 택생활을 시작했다. 99년에는 루게릭협회 부회장을 2003년부터 5월까지 회장을 엮임했다.
04년에는 환자가족, 간호사, 헬퍼등과 함께 NPO법인「ALS/MND서포트센터 사쿠라회」를 설립. 장애인자립지원법의 중증방문개호종업자자격을 취득할 수 잇는 연수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현재까지 900명이 이 연수를 통해 수료했다. 07년 부터는 NPO법인「재택개호지원사쿠라회」이사장。00년、ALS/MND국제동맹 회의(덴마크)에서 호흡기를 착용한 환자로는 처음으로 참가했다. 06년ALS/MND국제동맹인도상。공동편저로「살아가는 힘-신경난치병ALS환자들로부터의 메세 지」(岩波書店)。

인터뷰를 마치고
「자 한잔하세요.]라고 하시모또씨는 늘 첫 마디를 합니다. 인터뷰는 동경의 자택 맨숀에셔, 제4회에 걸처서 저녁시간에 했습니다.
대부분은 하시모또씨의 침대옆 식탁에서, 놀러온 친구나 일을 마친 헬퍼가 찌개를 끓여서 먹는 모임을 시작하고 와인을 마시는 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하시모또씨도 헬퍼의 통역을 가운데 두고 즐겁게 대화에 낍니다. 따스하게 웃어가면서는 함께 대화하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해 보입니다.
몸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라고 잡담을 즐기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하시모또씨의 일상인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ALS환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있는 풍경입니다.


UP:20091214 REV:
하시모또 미사오/操ALS난치병/신경난치병/특정질환 2009안락사・존엄사안락사・존엄사 2009Archives

TOP HOME(http://www.arsv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