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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의 종말기-호흡기 착용한지 17년째]

하시모토 미사오 20081215
후생노동성 제2회종말기의료에 관한 간담회/보고
Japanese Page



--translated by 鄭 喜慶 (chong hee kyong)

혼자서 생활하는 루게릭 환자 입니다. 24시간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활동보조를 사용하고 있으며 방문간호, 방문진료, 개호인파견제도등을 활용해 가면서 생명과 생활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숨을 쉬기 위해서 인공호흡기, 담을 제거하기 위해서 흡인기가 항상 옆에 있습니다.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 제일 큰 노동으로 400자를 1주일간 걸려서 입력하고 있습니다.
NPO법인 루게릭/MND 서포트센터 사쿠라회, 재택개호지원 사쿠라모임의 이사장으로서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경에 있는 네리마구(練馬区)역 가까이에 위치한 아파트를 얻어서 4층에 살고 있습니다. 루게릭이라고 진단을 받은 지는 23년이 되었습니다.
루게릭이라고 하는 병은 [예후가 나쁘며, 3년-5년 후엔 사망]이라고 의학책에 써있는 것을 보고 저는 쇼크를 받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병원에는 유명한 배우가 입원하고 있었으며, 여명이 반년 남았다고 보도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그 배우는 사망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루게릭이라고 진단 받은 3년 만에 어머니를, 4년 만에는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저의 여명이 5년이라고 믿고 있던 부모님의 너무 이른 죽음 이였습니다.
몸의 마비 순서는 상치-하지-음식물넘기기-호흡등의 순서대로 장애가 진행되고 있습니다.호흡장애가 시작된 것은 진단받은 7년 후였으며, 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끔 의식장애도 있었습니다.
고상한 사상이나 삶을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의사가 저의 상태를 방치했다면,,,,,,,,
2개월 후에가 종말기였습니다. 39세의 이른 가을 이였습니다. 그 때는 의사와 의료사회복지사가 협력해 주었으며, 가족들도 원해서 기관절개를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개월 후의 인공호흡기사용개시때는 가족의 동의는 얻지 못했고 의사에게 제가 직접 부탁을 했습니다.
당직의사가 호흡기료법의 경험자로서 소생뱅크를 누르면서 저의 의사를 확인을 했습니다. 병원의 의료사회복지사가 일본 루게릭협회 이사였으며, 제가 살고 있는 의료복지보건의 기능들이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여기에서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역에서 왕진 진료를 해주는 의사가 루게릭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지원자이기도 했던 것도 생존할 수 있는 커다란 이유입니다.

루게릭이라는 것을 알고 부터 [아픔]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픔]을 알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존재의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극복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통증에는 진통제를 괴로움에는 수면을 잠을 잘 못자면 수면제를 먹는 사람입니다.
합리적입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발상이였습니다. 때론 힘든 것은 사람을 빈곤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통이 심할때는 조금강한 약품을 늘리게 되고 결국은 의학책에 나와 있는 대로 죽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가정의 의학]도 아마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10년이내에 사망이라고 써 있습니다. 의학 책에는 현재도 그렇게 같이 써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죽어가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죽음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17년전에 죽었다면 20년 후에도 살아 있다면 역사적으로는 커다란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루게릭환자로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독거여서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의가 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종말기의료의 논의에 접 할때 마다 생각한것입니다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 사람의 생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단어는 신이 전하는 것이지 사람이 대신 나의 이야기 해서는 않됩니다.



UP:20091113 REV:
橋本 みさお  ◇全文掲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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