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조건 긍정에 대한 철학적 고찰 - 장애인의 삶에 근거하여
노자키 야스노부
last update:20110831
호칭 및 이름: 박사 (학술)
노자키 야스노부
학위수여일시: 헤이세이 19년 3월 31일
논문명: 삶의 무조건 긍정에 대한 철학적 고찰 - 장애인의 삶에 근거하여
논문심사위원:
주심 모리오카 마사히로
(森岡正博)
부심 나카무라 오사무 (中村治)
부심 하기와라 슌지 (萩原俊治)
부심 호소미 가즈유키 (細見和之)
논문요지
본 논문은 장애인이 사회에서 산다 는 것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장애인이 산다 는 것에 대하여, 주로 사상의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현대사회 안에서 장애인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은 <무조건적>으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필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단적으로 능력이 낮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다양한 이유에 의해 그 생활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시선에 대항하는 이론의 구축은, 장애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방치되고 그 존재를 부정당했던 사람들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장애에 대하여 끊임없이 사고를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학술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삶 그 자체, 즉 생존과 생활, 양 측면이 질문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 제도를 사고하려면 경제학이, 장애를 문화의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류학이나 역사학 또는 사회학이, 또 사는 의미를 묻는 것에는 철학적, 심리학적인 고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그러한 학(學)을 시야에 포함시키면서 여기에 학제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사상적 고찰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삶을 긍정하는 사상적인 이론 구축을 지향하는 것이다.
제1장에서는 「삶의 긍정」이라는 주제가 철학적으로 어떻게 논의되어 왔는지, 그 한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하면서 서술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단지 사는 것」의 사상사를 되짚는다. 철학에서는 고대부터 「잘 사는 것」에 대한 사색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잘 사는 것의 실현」도、「단지 사는 것」이 보장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러한 사상사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마르크스(K. Marx), 아렌트(H. Arendt), 그리고 아감벤(G. Agamben), 이렇게 3명의 철학자의 주장을 음미한다.
제2장에서는 「사는 것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 주로 심리학적 이론, 무엇보다 프랭클(V.Frankl)의 인간학을 검토한다. 사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 그 자체는 매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는 것에 의미가 없다」라는 씨니컬한 니힐리즘이야말로 스스로의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을 저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이번에는 「사는 의미」를 웅변하여 말해버리는 태도도 다른 의미에서 인생 그 자체를 경시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누가 「타자의 살아가는 의미」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음미가 필요하다. 또한 「밤과 이슬」에서 회교도라고 명명된 사람들에 대한 프랭클의 서술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회교도의 삶도 긍정적으로 나타내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에서 「유보없는 삶의 긍정」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낸다. 「유보없는 삶의 긍정]이란 산다는 것을 무조건으로 긍정하는 것, 즉 타인으로부터의 생의 의미부여를 전면 거부하는 삶의 양식이다.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자신의 의사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어떠한 삶이라도 그 삶이 무조건적으로 긍정될 수 있는 선택지를 사회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도 연결된다.
제3장에서는 생명윤리학에서 인격론(person theory)과의 대결을 시도한다. 「유보없는 삶의 긍정」 개념과 인간론의 큰 차이는 생존의 자명성에 근거를 부여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인간론은 생존의 자명성에 근거를 부여하려 한다. 그리고 이성이 있는 생명에는 생존의 자명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러한 근거를 부여하는 이론에는 커다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싱어(P. Singer)의 이론이나 그가 근거하는 선호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론 비판을 행한다. 선호공리주의의 윤리비판에는 「직관적 수준」과 「비판적 수준」의 두 층이 있고 직관적 수준에서 딜레마가 생길 때, 예를 들어 두 명의 인간 중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하는 가와 같은 경우 「비판적 수준」의 비판이 필요하게 된다. 이 때 공리주의자는 고려해야 할 효용이 누구의 효용인가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싱어는 「비판적 수준」에 대해서 비판할 때 그 존재자가 「의식을 가지는 가」, 「감각능력을 가지는가」에 주목하며 자기의식이나 감각이라는 것을 어떤 생명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생명」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을 제창하는 것이다. 하지만 싱어의 윤리학은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누구를 살릴 것인가, 누구를 죽여야 할 것인가 와 같은 문제설정에서 싱어는 관계자의 개인적 선호의 다발을 음미하지만, 그 개인적 선호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예를 들어 당사자가 사회적인 차별을 받고 있을 때,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선호를 형성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과연 그러한 선호는 진정 당사자에게 바람직한 것일까. 즉 선호 또는 희망의 충족만이 개인의 행위의 윤리적 정당성을 담보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부정의를 묻는 시야 그 자체를 잃는 것이다.
제4장에서는 「유보없는 삶의 긍정」의 실현이 사실은 정의론의 문제라는 것을 보인다. 이 때 종래의 현대 자유주의가 근거를 부여하는 주의(主義), 정당화주의적 정의론이라는 것을 비판하고 거기에 대해 비근거부여 정의론을 구축한다. 먼저 자유주의적 재분배파의 논의 진영조차 정당화주의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롤즈(J.Rawls)와 도르킨(R.Dworkin)의 이론이 기초하는 주의적 정의론이라는 것을 보이고 그들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정당화주의는 원초상태에서 구성되는 성원의 「타자」들을 윤리적으로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즉 「타자」들은 정의 밖에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본론에서 주장되는 것이 비근거부여적 정의론이다. 여기서 응용되는 것이 포퍼(K.Popper) 등에 의해 주창된 「반증가능성」이론에 의한 「비판적 합리주의」이다. 그것에 의해 점진적인 사회개량을 도모해 나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 사회에서 부정의를 제거해 가면서 최종적으로는 부정의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부정의를 하나씩 없애 나가야 할 법 제도를 작성, 개량해 나가는 입장이다. 즉 부정의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반증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필자가 정립하는 정의의 내용이란 「모든 인간이 충분히 살아가는 것이란 무조건 긍정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 대하여 거기에 반하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해 설명의 수준에서 반증을 반복해 가는 것이다. 사회계약에 근거하여 정당화를 지향하는 정의론에서, 「타자」의 언명이나 존재 그 자체를 반증으로 이해하고 정의를 구축해 나가는 이론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경계선의 정의론」이라고 명명한다. 즉 「경계선의 정의론」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사회로부터 이론을 시작한다. 그리고 정의를 「구축한다」는 것이 아닌 「타자」로부터 「반증」을 계속 받아들이면서 부정의를 「제거한다」는 모습으로 정의를 구상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사회계약에 근거한 롤즈 등의 정의론에 의하면 해당하는 원초상태나 윤리적 개인상에서 빠진 「타자」는 배제되고 정의는 배제의 장치가 되고 만다. 「경계선」의 정의론은 「타자」의 출현 가능성을 정의론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본 논문의 특징은 「유보없는 삶의 긍정」 또는 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삶의 무조건적 긍정」을 「정의」라고 제시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실제 그것이 실행 가능하다 던가, 그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받아 들여질 수 있다 라는 주장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의 「법」으로서 실행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등의 주장도 아니다. 어떤 한가지 정합적인 논리체계로서 그러한 정의의 정립도 가능하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에서 그친다. 그렇지만 「누구의 어떠한 상태의 삶이라도 우선은 살아가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한 근본적인 감각이 있는 부분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삶의 무조건적 긍정」을 정의로서 요구하는 사회를 구상해 나가려는 것이다.
장애인의 삶을 긍정하는 것은 어떠한 삶이라 할지라도 유보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좋다」라고 단언하는 것과 똑같다. 노동할 수 없어도, 스스로의 용모가 「보기 흉하다」고 느끼고 있어도, 인공호흡기를 이용하고 있어도, 자살욕구가 있어도, 그렇더라도 「살아가는 것이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가 시도되는 것이다.
「삶의 무조건적 긍정」이란 어떤 사람의 어떠한 상태의 삶이라도 「살아 있어서 좋다」라는 테제이다. 누군가 누구의 생을 긍정할 것인가 라는 것이 아닌 삶은 실제로 있는 것, 있어 버리고 마는 것으로서 보편적으로 긍정되어야 한다고 본 논문은 주장한다.
중도의 장애인, 치매성고령자, 파킨스 질환자, ALS 환자, 암환자, 등등, 모두 살아 있어서 좋다. 그 사람들이 충분하게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 쪽에서 변해야 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삶의 무조건적 긍정」이다. 본 논문은 어떠한 삶이라 할지라도 「사는 것이 좋다」라는 관점에 서서 사회철학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하나의 관점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학위논문 심사결과의 요지
노자키 야스노부의 박사과정심사요청논문 「삶의 무조건적인 긍정」에 대한 철학적 고찰 -장애인의 삶에 근거하여」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생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기 위한 철학적인 이론구축을 지향한 것이다.
특필할만한 것은 본 논문이 일관적으로 장애인의 관점에서 고찰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회 안에서 걸핏하면 거추장스럽고 비능률적이라고 여겨져 왔던 존재에서 보았을 때 앞으로 철학사상이 어떠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는가를 확인하고, 장애인의 시각에서의 새로운 정의론을 제창하려고 한 본 논문은 현대철학 및 생명윤리학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철학∙윤리학 영역의 박사논문의 심사 판단기준으로는 문제의식 및 문제설정이 명확할 것, 선행연구의 조사 및 문헌학적인 폭넓은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을 것, 입론 및 논증에 독자성이 있을 것이 요구된다.
먼저 문제의식 및 문제설정에 대한 것인데,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본 논문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생명의 존재가치」에 대한 일관된 철학적 고찰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종래 간과되기 쉬웠던 논점을 분석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논문 내에서도 반복 서술되고 있는 바대로 이 사회에서는 장애인이나 장애아가 죽어버린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가치관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지만, 비장애인 중심의 사상에서는 이러한 점이 자주 간과되기 십상이다.
그 뿐 아니라 이러한 점을 정당화하는 철학 사상조차 존재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생명의 무조건적 긍정 사상을 재구축하려 하는 저자의 문제의식 및 문제설정은 명확하며 선명하다.
이어 선행연구 및 문헌학적인 폭넓은 검토에 대한 것인데, 장애인의 관점에서 생명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한 선행연구는 과거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철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고통이나 고난에 대해 고찰해 왔지만, 여기에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관점이 도입된 것은 거의 최근의 것이다. 현대 생명윤리학에서는 일본
푸른잔디회(青い芝会)의 사상적 언설이나 그것을 계승하는 입장에 있는
다테이와 신야(立岩真也)등의 장애학을 참조 축으로 하면서, 영어권의 싱어 등의 공리주의적 생명윤리학을 음미하는 작업이 중시되고 있지만, 저자도 이러한 관련 문헌을 정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학설을 입론하고 있다. 게다가 저자는 생명의 의미를 둘러싼 프랭클의 논의나 반증가능성을 둘러싼 포퍼의 의견에도 욕심을 내어 다루며 문헌학적인 폭넓은 검토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세번째로, 입론 및 논증의 독자성인데,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술한다.
저자는 먼저 프랭클과 싱어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프랭클에 대해서는 사는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학의 중요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의미 추구의 기반이 되는 「살고 있는 것 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프랭클의 사색이 불충분한 것이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 싱어에 대해서는, 「살 가치가 있는 생명」에 관한 선호,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축되고 있다는 점을 싱어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인간의 생명 가치에 위 아래를 부여하는 싱어의 이론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어서 적절하게 과학이론이 반증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사회정책의 이론 또한 그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 독자적인 반증가능성에 개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 사회정책이 당초 상정하지 않은 외부자의 목소리가 출현할 때, 그것을 외부에서의 「반증」으로 이해하고, 그 반증에 대한 실천적 대응 및 사회정책의 정합적 재구축이 체제 측에 「의무」로서 부과되어야 한다는 정의론이다. 저자는 이러한 정의론의 발생을 「경계선의 정의론」이라 부르고 있다.
경계선의 정의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대체로 롤즈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계약적 정의론에서 정의는 정의가 추구되어야 할 사회의 구성원을 이론적으로 확정한 다음 조건 없는 입장교환을 통해 공정한 사회정의의 원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이론적 문제점은 구성원의 확정에 의해 거기에서 다시 배제되어 버리는 인간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 혹은 그러한 외부자를 정의의 구조 내에 들어오게 하려면 반드시 온정주의적 가치부여라는 조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또한 외부로 쫓겨나는 당사자의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경계선의 정의론」이란 이러한 외부로 쫓겨나는 존재, 비가시화되기 쉬운 존재의 관점에서 그들이 정의의 외부로 배제되는 일 없이 비가시화되지 않는 새로운 정의론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필자가 그러한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현대 사회의 생활보호 하에서 충분한 의료나 복지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장애인들이 현존한다는 사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자 사회는 그러한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 한다. 여기에는 권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롤즈 류의 사회계약적 정의론으로는 이 권력 작용을 뒤엎기 힘들다.
필요한 것은 이 권력 작용에 저항할 수 있는 정의론이다 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 때문에 경계선 상의 존재, 혹은 외부로 쫓겨난 존재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을 때, 그들의 「존재」그 자체를 메이저리티 사회의 사회정책에 대한 일종의 「반증」으로 이해해 가는 것을 메이저리티 사회의 책무로서 부과하고자 하는 정의론을 필자는 굳이 구축하려 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경계선의 정의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독자성을 가진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한다」라는 언동을 메이저리티 사회 측의 이른바 금지된 것으로서 요구하여 결국 마이너리티 측에서의 불만이 정의의 과제로서 논점화되는 정의론이 되고 있다는 것. 두번째는, 정의의 원리 측정에 참여하는 자의 멤버쉽을 굳이 확정하지 않고 개방시켜 정의의 원리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재구축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끊임없이 남을 수 있는 정의론이라는 것. 세번째로 마이너리티 루프를 외부에서 만드는 방향이 아닌, 마이너리티의 목소리가 결국 매이저리티 사회에 계속 침입하는 정의론, 그 의미에서 분리주의적이지 않은 정의론이 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상의 점을 종합하기 위해 포퍼의 반증가능성 이론을 활용하여 보강하고 있다는 점 또한 저자의 독자성이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와 정의론의 관련은 최근 주목을 계속 받아 왔지만, 저자의 논리는 향후 이러한 분야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의 입론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의론의 이론을 모색하는 맹아단계이며, 완성형태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이론적 실험은 과정박사논문으로서 충분하다는 평가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저자의 입론은 어떠한 인간이라도 무조건적으로 그 생이 긍정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수렴되어 가지만, 그 과정에서 필자의 입론에는 몇 가지의 난점과 만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필자의 입장이라면 인공임신중절은 절대 긍정되지 않는다. 필자는 원리적으로 긍정할 수 없다는 차원과, 현실문제에서는 금지하지 않는다는 차원으로 분리한다는 해결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문제는 그러한 것에 의해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재해 시 트리아지(역자주: triage. 부상자 중 치료 우선 선별)와 같이 의료에서도 생명의 선별은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필자의 입장이라면 이것도 또한 긍정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된다. 또 필자는 존엄사를 긍정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 말기 환자는 언제까지라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라는 난문이 생겨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의 이론은 현시점에서 이러한 난문을 해결시킬 만한 장치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현대의 철학∙윤리학 전체에 제기할 수 있는 초난제이며, 필자 한사람에게만 지워야 할 문제인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포함하면서도 필자의 논문은 과정 박사논문에 요구되는 입론 및 독자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이라 판단된다.
이상을 종합하여 본 위원회는 필자의 논문은 과정박사논문으로서 요구되는 수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번역:
임덕영 *갱신:
이욱